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스방 Apr 27. 2024

10년을 바라보고 길을 걷다.

어느 날 TV 뉴스에서 뉴욕 증권거래소를 비롯하여 대형 증권사와 은행들이 즐비한 월가를 배경으로 세계의 경제 동향을 전하며 월가의 명물인 ‘돌진하는 황소상’이 클로즈업되었다. 

월가라는 이름이 생긴 것은 오래전 뉴욕을 뉴암스테르담이라고 부르며 이민해 온 네덜란드인들이 인디언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쌓은 성벽(wall)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나는 몇 년 전  금융회사의 탐욕에 대한 저항으로 월가에서 벌어졌던 성난 시민들의 단체행동이 떠올라 뉴스 화면에 비친 황소를 본 순간  황소가 몹시 성난 모습으로 월가의 벽을 뚫고 나올 듯이 보였다. 

그 당시 시민들이 ‘월가를 점령하라’라며 구호를 외치며 대형 은행의 횡포에 맞서 ‘은행 계좌 옮기는 날(Bank Transfer Day)’을 정해서 지역의 소형 은행이나 신협으로 은행 계좌를 옮기는 운동이 일어났다.     

 

이처럼 월가 시위대의 목소리가 행동으로 옮겨진 것은 대형 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에서 서비스 상품이었던 직불카드에 수수료를 물리겠다는 방침을 정한 데 대해 소비자들이 거세게 반발하며 시작됐다. 

사회적 불평등을 호소하는 월가 시위대의 주장에 많은 은행 고객들이 동조하면서 대형 은행의 개인계좌 폐쇄가 이어진 반면 미국의 신협들은 신규 계좌가 늘어났다. 

결국은 뱅크오브아메리카가 직불카드 수수료 부과 입장을 철회하면서 성난 민심이 수 그러 들었지만 탐욕에 젖은 대형 은행을 상대로 금융소비자 운동이 승리했던 유쾌한 결과였다.     


이러한 금융소비자 운동의 중심에서 시민들 스스로 은행을 만들어 민주적인 방식으로 운영을 하는 것이 신협이다. 미국의 신협은 한국의 신협보다 규모 면에서도 엄청나게 크고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미국 입국 심사 시 공항 세관에서 한국의 대기업에서 일한다고 하면 모를 수 있지만 신협(Credit Union)에서 일한다고 하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미국에서의 신협의 명성과 인지도는 매우 높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의 신협은 전 세계 금융위기의 원인이 됐던 파생상품을 취급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안전한 금융기관'이라는 인식으로 미국인들에게 신뢰감을 주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대통령이 거주하는 백악관에도 신협이 있어서 대통령과 행정 직원들 뿐만 아니라 퇴직한 직원들을 위해 뉴욕에 지점을 내고 금융거래의 편리성을 제공하고 있다. 


우주 공간에 있는 우주인도 신협의 조합원인데 미항공우주국(NASA)에도 신협이 있다. 

이외에도 유엔(UN), 중앙정보부(CIA), 미연방수사국(FBI) 등 정부 기관에도 신협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MIT대학교, 하버드대학교, 유니버설스튜디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도 학교와 은행 속에 신협이 있으며 기업으로는 코카콜라, 맥도널드 등 수많은 기업에도 신협이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신협을 모델로 삼아 6.25 전쟁 이후 전쟁의 상흔으로 피폐된 삶을 민초들이 스스로 일으켜 세우려고 1960년 부산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내가 지금 몸담고 있는 신협은 성당의 신자들이 자조, 자립, 협동하는 신협 정신으로 서로를 돕기 위해 시작했으며 이후에 성당 신자뿐만 아니라 지역주민에게도 참여를 확대했다.      

그러나 내가 실업자 신세를 면하고 신협의 업무전반을 살피는 실무책임자로 채용되었던 때에는 부실한 재무구조로 경영상의 어려움이 많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야 했다. 


먼저 직원들에게 한해 한해 목표를 실행해 나가면서 장단기적인 목표와 비전을 제시했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미래를 통찰해 보자는 생각으로 10년 후의 직장의 모습을 그려보며 장단기 계획을 수립했다. 

급격하게 다가오는 환경변화에 대한 대응과 사업전략을 중심으로 경영 프로세스와 조합원 중심의 마케팅 시스템 구축의 주요 전략을 그 속에 담았다.


'초우량 신협을 만들자'라는 명확한 비전을 만들고 조합원 제일주의를 통해 건실하게 경쟁에서 앞서가며 꿈과 희망이 있는 신협이란 경영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서 경영 목표에 따른 효율적인 업무 관리를 통한 관계마케팅을 구체화한다는 전략목표를 전개했다.      

그에 따라 초우량 신협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분야를 네 가지로 나누었다. 

첫 번째, 지속적인 경영단위 구축을 위해 수익적 관점에서 대출업무 확대와 경비 효율성을 높여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대출 형태의 다양성을 통해 중산층과 소상공인을 주요 대상으로 대출 마케팅을 실시했다.   

   

두 번째, 조합원 관점에서 기존 조합원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새로운 조합원을 늘려나가는 조합원 네트워크 확대해 나갔다. 이를 위해 참 조합원 및 우수 조합원 제도를 정착시키고 조합원으로 구성된 산악동호회와 두손모아봉사단을 창단했다. 

그리고 테마여행을 통해 조합원과의 관계를 다지고 대형 여행사와 제휴한 여행적금 상품을 통해 조합원에게 편익을 제공했다. 

일반 시중은행에서는 고객에게 봉사활동을 권유할 수 없지만 신협은 조합원이 고객이며 주인이기에 두손모아봉사단을 만들 수 있었다. 

조합원들은 봉사활동을 통해 보람을 얻고 신협은 지역사회에서 든든한 공신력을 다져나갈 수 있었다.   

   

세 번째, 내부 프로세스를 개선해서 새로운 영업방식을 만들어갔다. 

그전까지는 직원 개인의 경험과 역량에 의존했던 업무 형태를 조합원의 필요를 파악해서 정보에 근거한 영업형태로 바꾸고 표준화된 업무 매뉴얼로 균형 있는 성과관리를 체계화했다. 


네 번째, 환경변화에 대한 지속적인 성장 발전을 위해 전문인력 양성에 역점을 두었다. 

이를 위해 투명한 성과측정과 보상으로 직원의 업무역량을 높이고 직원의 만족도를 점진적으로 높여 나갔다. 

이와 함께 비전을 실현해 나가는 인적조직의 가치체계를 신뢰와 긍지 그리고 즐거움에 두고 일터의 3가지 중점요소로 만들었다.      

이를 위해 임원과 직원 간에 정직하고 성실한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존중과 존경을 받으며 능력에 따른 공정한 대우를 받는다는 공감대를 만들어갔다. 


여기에 더해서 직원들은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즐거움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이러한 내부 프로세스의 정비와 함께 외부 환경변화에 대한 대응을 준비했다. 

경제성장으로 고소득자가 늘어나고 금융기관들이 여유자금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신협의 열악한 금융상품을 정비하고 시중은행의 소매금융 확대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금융상품의 개발은 우리 같은 단위 신협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어서 우선 소매금융의 영역을 공고히 하기 위한 충성도 높은 조합원을 확보하기 위한 활동에 들어갔다.  

    

그 당시 금융권의 다양한 상품의 출현과 금리정책을 통한 과다한 경쟁으로 상호부조의 신협 정신이 퇴색해져 가고 조합원들의 금융 욕구에 대한 인식변화가 시작되면서 신협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이에 따라 조합원 중심의 밀착경영과 책임경영 풍토를 만들고 내실경영과 안정적인 수익 창출로 조합원들에게 한발 한발 신뢰를 확보해 나가야만 했다. 


또한 은행과 달리 예금이자의 소득세에 대한 비과세 혜택은 신협을 거래하는 기본적인 강점이라 여기고 일반은행에서는 하기 쉽지 않은 거래 고객과 함께 나누는 인적교류인 테마여행 등 감성 마케팅을 실시했다. 

두 대의 버스로 시작한 조합원 테마여행은 해를 거듭하면서 인기가 더해져 열 대의 버스가 동원되었다.      

이러한 현장 중심의 조합원 밀착경영으로 조합원들이 신협에 대한 충성고객 성향이 높아져 갔고 삼 사 년이 지나며 경영 및 사업평가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감독기관의 경영평가에서 우수 신협으로 선정되고 나 또한 우수 실무책임자로 표창을 받게 되었다. 

그동안 재무구조의 취약성을 극복하고 신협의 근간인 조합원 중심의 밀착경영을 통한 노력의 결실이 점진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새로 얻은 내 직장의 부실했던 재무구조를 10년에 이르는 시간을 착실하게 실천하여 우량한 재무구조로 탈바꿈하는 큰 변화를 가져왔다. 

나는 이러한 변화를 바탕으로 함께 잘 사는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 동네 곳곳에 다양한 구성원들의 삶에 귀 기울이고 이익을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휴먼금융을 실천하고 있다.      


조합원들과 함께 테마여행을 떠나는 버스에서 나는 마이크를 잡고 약장수처럼 떠들어 대면서 조합원들에게 즐거운 선택을 권유한다. 

음식점에 가서 김치찌개든 된장찌개든 먹고 싶은 것을 고르듯이 국민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 등 여러 시중은행 중에 신협도 차림표에 넣고 금융거래도 선택해서 입맛에 맞으면 저절로 발걸음이 옮겨지는 단골집처럼 단골이 되어 줄 것을 부탁한다. 

진솔한 마음이 전해졌던지 이제는 단골이 되는 조합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아프리카 속담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처럼 

내 직장 신협의 이용자이며 주인인 조합원들과 100년의 동행을 꿈꾸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은 크든 작든 서로 돕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