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하라 미유 (水原 美優)

#30

by 삼류작자


조금은 눈에 띄게 배가 불러온 정숙은 툇마루에 걸터앉아 있었다.

여름 기운이 묻은 바람이 마당을 가로질러 지나갔다.

동백나무의 두꺼운 잎이 바람에 스치며 낮게 흔들렸다.

렌조가 다가와 그녀 옆에 조금 거리를 두고 앉았다.

툇마루가 아주 미세하게 울렸다.

정숙은 자신이 만들고 몇 번을 옮겨달다가

결국은 그가 매달아 둔 새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렌조는 그 시선을 따라 새장을 한 번 보고,

괜히 입을 열었다.


“……きれいな家は、作ってやったんだけどな。”

(… 예쁜 집은, 만들어 주긴 했는데.)

잠깐 말을 멈췄다가,


“バカな鳥どもが、まだ入らねぇ。”

(멍청한 새들이 아직 안 들어오네.)

말을 던져놓고는 스스로도 어색했는지 괜히 하늘을 한 번 올려다봤다.

구름은 느릿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낮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니이루므…… 내이루므……”


혀에 걸리는 소리였다.

말이 끝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공중에서 흐트러졌다.

렌조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잠시 숨을 고른 뒤,

헛기침을 한 번 했다.

툇마루 바닥에 손을 뻗어 미리 준비해 둔 것들을 정숙 쪽으로 조심스레 밀어 놓았다.

그리고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채,

짧게 불렀다.


“おい。”

(이봐.)

정숙이 고개를 돌리자

그제야 조금 더 또렷하게 한 번 더 말했다.


“おい.”

(어이.)

렌조는 눈짓으로 툇마루 위에 놓인 것들을 가리켰다.


주민증.

여권.

운전면허증.

그리고, 언젠가는 그녀가 혼자 밖으로 나갔을 때 장을 보든, 옷을 사든,

혹은 그냥 맛있는 것을 사 먹든 하기를 바라며 따로 챙겨 둔 현금이 든 봉투 하나.


정숙은 아무 말 없이 그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면허증이었다.

알 수 없는 글자들 사이에 낯선 이름,

그리고 그 아래 박혀 있는 자신의 얼굴.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사진 속 얼굴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그 옆에서 렌조는 아직 할 말이 남아 있는 사람처럼 괜히 하늘을 한 번 올려다봤다.

다시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니 이르므… 미즈하라 미유.”

어설프게 연습한 한국말을 툭 던지듯 말했다.


“내 이르므 미즈하라 렌조.”

잠깐의 공백.

그는 갑자기 입으로 소리를 냈다.


“딴딴따딴— 딴딴따딴.”


혼인신고서가 등 봉투를 내밀고는 어설픈 결혼식 행진곡 흉내였다.

정숙은 멀뚱히 그를 바라보다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몰랐지만

처음 보는 남자의 모습에 싱긋 웃음이 나왔다.

렌조는 그 시선을 애써 외면하듯 정숙의 손을 잡아끌었다.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내 아무 설명 없이 그녀의 손가락에 끼웠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같은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두 손을 나란히 놓고,

잠깐 그대로 있었다.

렌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숙도 마찬가지였다.

툇마루 위로, 여름 오후의 빛만 조용히 내려앉았다.




**파트 1 ‘그녀’ 이후 다른 인물의 이야기로 이어져 파트 2로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브런치 연재가 30화까지라는 점을 미처 알지 못한 채 글을 업로드했다.
첫번째 인물 '그녀'이야기는 이제 절반 정도 진행된 상태이고, 고민 끝에 브런치북을 새로 열어 ‘파트 2 그녀’로 이어가기로 했다.

각 회차의 분량이 들쭉날쭉한 점도 이유가 되었겠지만, 개인적으로 오래 묵혀 두었던 영화 시놉시스를 기반으로 글을 쓰다 보니 기본적으로 한 씬을 한 회차로 구성해 연재하고 있다.
몇 개의 씬을 묶은 회차도 있으나, 전반적으로는 씬 단위로 이어지는 연재라고 보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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