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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Nov 25. 2024

내 마지막 취업 활동은 이렇게 끝이 났다

또 다른 문이 열리겠지

2월 중순 계약기간이 만료된 후 다시 백수로, 아니 가정주부로 돌아왔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경단녀라고 해야 하는 걸까?


직장인 시절에는 그냥 '회사원'이라고 명명하면 끝이었는데, 회사를 나오니 신분이나 직업을 밝힐 때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백수라 하기엔 살림을 맡고 있으니 애매하고, 가정주부라 하기엔 살림 실력이 엉망이라 민망하다. 경단녀는 신분이나 직업이 아니다. 그냥 내 상황에 대한 설명 일뿐.


무정형의 인간쯤으로 정의해 두면 되려나? 뭐 좋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니까.


2년 전에 정규직을 때려치우고 나와 버린 건 여전히 후회하지 않는다. 그 당시의 나는 미쳐버리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였으니까. 어떻게든 정신머리를 붙잡고 큰 사건 사고 없이 버텨준 나 자신이 기특할 지경이었다.


다만 이후 계약직 일을 하면서 딱 내가 원하는 정도의 삶의 균형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이어갈 수 없다는 것은 속상했다.


세상 일은 내가 바라는 대로 흘러가진 않는다, 오히려 바라지 않는 쪽으로 방향이 틀어진다.


어차피 벌어진 일, 받아들이기로 했다. 유일한 위안은 실업급여 수급 조건이 충족되어 당분간 경제적 쿠션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실업급여를 수령하려면 적극적인 구직 활동이 수반되어야 한다. 당연하다. 국가에서 월 200만 원 가까운 돈을 지원하는데 심사가 까다롭지 않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솔직히 다시 채용될 자신은 없었기에 이력서에 많은 품을 들이진 않았다. 기이력서를 약간 수정해서 채용사이트에 올렸다.


처음에는 중구난방 경력을 가진 데다 나이마저 먹어버린 경단녀에게 누가 관심이나 가질까? 싶었지만, 의외로 많은 곳에서 제의가 쏟아지자,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이력서를 좀 더 보기 좋고 깔끔하게 만들었고, 혹 필요할지 몰라 영문 버전까지 작성해 두었다.(ChatGPT야 고마워!)


확실히 이전보다 많은 곳에서 연락이 왔고, 면접까지 진행한 곳도 있었다. 나 아직도 경쟁력이 있는 사람인가? 자신감이 불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다 떨어졌다.


그리고 오늘 불합격 메일을 하나 더 받았다. 진짜 마지막 지원이라고 생각했던 곳이었다.


불황 탓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깜냥이 아닌 것이다. 그 이유는 내 이력서에  다 나와 있으니까. 상처받는 대신, '나이 먹은 중구난방 경력자'라는 자기 객관화가 필요한 것이다.


실업급여 덕분에 구직 활동을 하며 잠시 설레는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회사원' 신분은 완전히 떠나보내려 한다. 미련 없이. 인생은 아직 길고, 분명 또 다른 문이 열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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