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꿈같은 미국 이민

한국 출발 미국 도착

by 서쪽나라 동쪽사람

언제인지 기억도 가물 가물해졌지만 미국 이민을 준비한 지 약 4년 만에 미국 대사관에서 준 황금빛 노란 봉투를 들고 미국에 입성한 지도 어느덧 2년이 흘렀다. 미국에 잘 적응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난 한국에서 살고 있는 김 아무개이고 지금 미국에 잠시 살고 있는 것 같으며 당장 내일이라도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왜 그럴까?

아직 미국에 적응하지 못했고 고향의 그리움 때문 일 테지만 그렇다고 힘든 티를 내면 안 되는 가장이기에 오늘도 바쁘게 하루를 보내게 된다.


나는 왜 이역만리 타지에 와서 속칭 개고생을 하고 있을까?


운은 좋았다. 평범한 회사를 다니는 한 가정의 남편이자 부모로서 비록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족하지 않은 그런 삶을 살고 있던 나에게 뜻밖의 일이 찾아왔다. 그건 다름 아닌 한 업체의 영주권 후원이었다. 나를 후원해 주기로 한 업체와 모종의 계약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나를 믿고 투자를 해 준다니 매우 고마울 따름이었다. 사실 이때만 해도 고맙긴 했지만 영주권 취득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설령 영주권이 나온다 하더라도 반드시 미국으로 이민을 갈 것이라고는 당시에 결정하지 못했었다. 어차피 받고 안 가도 되는 거기에 밑져야 본전으로 우선 영주권 후원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코로나 시점에 영주권 프로세스가 진행되다 보니 애초 계획한 기간의 2배인 4년 만에 대사관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모든 프로세스가 마무리되었다.


미국에서 난 어떤 삶을 살아갈까?


많은 이들은 출국이 가까워 올수록 두렵고 무섭다고 하지만 영주권도 있고 미국 회사에 취업도 된 나는 무서울 게 없었다. 그래도 막상 떠날 날이 다가오니 조금은 두렵기도 했지만 미국 삶에 대한 막연한 설렘으로 기분이 좋기도 하였다. 출국 전날 모든 짐을 본가와 처가 그리고 주변 분들에게 떠나보내고 인천공항 근처 호텔에서 일박을 하는 우리의 모습은 이때만 해도 여행을 가는 그런 기분이었다. 미주 노선은 무료 수화물이 인당 2개인지라 총 6개의 박스에 우리의 밑천을 꽉꽉 채워서 비행기에 올랐다. 매우 긴 여행을 떠나는 가족에게 고작 6박스의 짐과 3개의 기내 수화물뿐이라니... 그중에 한 박스 반 정도는 아이의 장난감으로 가득했다. 지금 돌아보니 이게 가능한 일인가 하지만 그때는 10원이라도 절약해야만 했던 시절이었기에 가능한 있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