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 이면에 감춰진 추악한 진실과 실상
표지 사진: 바그다드 거리에 버려진 이라크군 탱크에 국제평화단체 회원들과 이라크 어린이들이 평화를 기원하는 그림을 그려 놓았다. / 출처: <조선일보> 조○○ 기자
이라크 전쟁은 국제 질서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전쟁으로 국력을 지나치게 소모한 미국은 더 이상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서아시아 정책과 에너지 정책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과 같은 함정에 다시 빠져들지 않기 위해 서아시아 지역에 대한 직접 군사개입을 자제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리비아 사태나 시리아 내전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심지어 이라크 내전이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이라크에 재차 지상군을 파견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은 자국 내 석유자원을 적극 개발하고 석유 수입 다변화를 통해 서아시아 의존도를 낮추려고 고심하고 있다. 2011년 이라크 철군 이후 미국은 높은 생산원가(배럴당 평균 60달러 이상)에도 불구하고 자국 내 셰일 가스(shale gas)나 캐나다産 오일 샌드(oil sand)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2009년 하루 495만 배럴까지 떨어졌던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최근 셰일 오일 개발에 힘입어 2012년 하루 1,112만 배럴로 석유 생산량 세계 2위(1위 사우디아라비아 1,173만 배럴, 3위 러시아 1,040만 배럴)로 올라섰고, 주요 석유 수입국은 캐나다(Canada), 멕시코(Mexico), 베네수엘라 등 북중미 국가들로 바뀌었다.
2012년 미국의 연간 석유 수입량 중 서아시아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22퍼센트에 불과하다.(출처: U.S. 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 The World Oil Production, 2013) 더구나 최근 미국산 셰일 가스나 캐나다산 오일 샌드 개발이 더욱 활기를 띠면서 미국의 서아시아 석유 의존도는 앞으로 더욱 낮아질 전망이다.
전쟁은 세계 경제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애초 미국의 바람과는 달리 전쟁으로 국제 유가가 치솟아 지금까지 고유가 시대가 이어지고 있다. 전쟁 직전 배럴당 22달러였던 국제 유가는 2014년 9월 현재 배럴당 100달러에 육박하고 있다(두바이유 기준). 1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고유가는 세계 경제 회복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 경제가 고유가와 전쟁으로 몸살을 앓는 사이 중국은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통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이제 중국은 신장된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치, 군사 대국화에 나서고 있다. 세계는 앞으로 미국과 중국 간에 새로운 냉전이 시작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사담 정권의 몰락을 지켜본 북한과 이란은 핵무기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군의 어마어마한 대공세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테러리즘(Islamic Terrorism)은 여전히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2013년 4월과 5월 미국 보스턴과 영국 런던에서는 충격적인 테러가 연달아 발생했다. 그리고 나이지리아(Nigeria)에서 보코 하람(Boko Haram)이 저지르는 엽기적인 테러 행각으로 이슬람 극단주의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와 경계심은 한층 더 심화되고 있다.
이라크 전쟁은 끝났어도 세계는 전쟁 전보다 더 불안하고 위험해졌다.
미국은 상황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악화되자 그들이 자초한 수많은 문제들을 방기한 채 이라크에서 무책임하게 철수해 버렸다. 미군은 떠났지만 이라크는 여전히 전쟁을 치르고 있다.
미국이 전쟁을 통해 이룩한 성과라고는 이라크에서 극악무도한 독재정권을 몰아낸 것이 전부다. 애초 미국은 사담 정권 축출과 민주주의 정착을 대의명분으로 내세웠으니 그것도 절반의 성공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라크에 민주주의가 성공적으로 뿌리내리게 될지는 아직도 미지수다.
그러나 미국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라크 전쟁은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 민주화 열풍의 씨를 뿌렸다. 나폴레옹 전쟁으로 유럽에 자유주의가 전파됐던 것처럼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아랍 민중의 각성을 불러일으켰고, 2010년 12월 튀니지(Tunisia)를 필두로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를 휩쓴 재스민 혁명(Jasmine Revolution)이 일어났다. 이라크 전쟁이 남긴 유일한 긍정적인 유산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튀니지와 이집트(Egypt)에서 그랬던 것처럼 사담 정권이 이라크 민중의 힘으로 붕괴됐다면 이상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2012년 종식된 리비아(Libya) 사태나 지금도 진행 중인 시리아(Syria) 내전을 놓고 볼 때 민중봉기에 의한 사담 정권 붕괴는 실현 가능성이 희박했다.
설사 그것이 실현됐다 하더라도 내전은 불가피했을 것이며, 전쟁보다 더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을 공산이 크다. 필연적으로 외세의 개입도 뒤따랐을 것이다. 민족, 종파 간의 갈등은 이라크에서 언젠가는 터질 시한폭탄 같은 문제였다. 미국의 침공은 단지 뇌관을 건드려 시한폭탄을 좀 더 빨리 터뜨린 것에 불과하다.
사실 이라크가 외세의 침입을 불러들인 측면도 있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라크 전쟁은 포악하고 탐욕스러운 승냥이가 욕심이 지나쳐 사자의 몫(Lion's Share)까지 넘보다가 성난 사자에게 호되게 당한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사담이 지배하는 이라크는 극악무도한 폭정을 펼쳐 자국민 200만 명을 잔인하게 학살하고 주변국들을 침탈하던 깡패국가(Rogue State)였다. 솔직히 사담 정권은 하루빨리 무너졌어야 하는 사악한 체제였다.
사람들은 전쟁의 교훈으로 유비무환(有備無患)을 자주 거론하지만, 이라크 전쟁의 교훈은 적국에 침략의 빌미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근래 북한의 무모하고 파괴적인 대내외 국가정책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이라크 전쟁의 교훈을 머릿속에 떠올리게 된다. 이래저래 이라크 전쟁을 바라보는 내 심정은 착잡하기만 하다.
비록 한 달여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는 이라크 전쟁을 직접 체험했다. 이라크에 다녀온 이후 TV에서 이라크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우고 TV 앞으로 다가서곤 했다. 이라크는 내게 소중한 의미가 있는 특별한 나라였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었다.
2011년 12월 15일 미국 오마바(Barack Hussein Obama II, 1961~현재, 제44대 대통령) 대통령은 철군 발표를 하면서 "미군은 이라크에서 세계 평화와 민주주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으며 대단한 성과를 올렸다. 이 모든 것은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라고 평가했다.
백악관에 들어앉아 보고서와 TV를 통해 전쟁을 지켜본 미국 대통령에게는 이라크 전쟁이 대단한 성과요 숭고한 희생이자 헌신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바그다드에서 내가 목격한 전쟁은 그저 고통스럽고 처참할 뿐이었다. 아침 출근길마다 길가에 쓰레기처럼 널려 있던 시체들, 굶주림에 지쳐 쓰레기통을 뒤져 음식 찌꺼기를 주워 먹던 아이들, 불발탄이 터져 손발이 잘린 채 병원에 실려 온 부상자들, 이런 참혹한 모습들이 내가 기억하는 이라크 전쟁의 실상이다.
출구 없는 미궁에 빠진 것처럼 도무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던 이라크 사태는 최근 더욱 악화되어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2014년 6월 중순 시리아 내전을 틈타 세를 크게 불린 순니파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 Islamic State)가 주도하는 반군세력이 이라크 서북부를 대부분 장악하고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남하하여 이제는 수도 바그다드마저 위협하고 있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이란, 사우디아라비아(Saudi Arabia) 등 주변국과 더불어 미국, 러시아(Russia)까지 이라크에 개입하면서 이라크 사태는 순니-쉬아 간 종파 내전에서 서아시아 전역을 아우르는 국제전으로 확전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태가 계속해서 악화일로로 치닫는다면 최악의 경우 서아시아 전체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참담한 파국을 맞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만약 불길한 예측이 그대로 실현된다면 서아시아 지역이 지닌 지정학적·지리경제학적 중요성에 비춰 볼 때 국제정세와 세계경제에 미칠 파장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에 이를 전망이다.
아직 이라크 사태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라크 내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이 사태의 최대 피해자인 이라크인들이 흘려야 할 피와 눈물의 양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아직도 이라크에서 총성은 그치지 않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이라크 전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살육과 파괴를 과연 그 누가 나서 종식할 것인가? 전쟁이 야기한 난장판은 또 어떻게 수습하고 이라크를 재건할 것인가? 아무리 고심해도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암담한 현실이 한없이 슬프고 안타깝기만 하다.
<완 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