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주리)이 아빠의 불륜을 알게 되었다. 불륜 상대인, 다른 딸(윤아)의 엄마는 설상가상으로 임신까지 했단다. 불륜남녀의 두 딸이 집안일을 해결하려전전긍긍하는 동안, 윤아의 엄마는 철없는 소리나 늘어놓고 주리의 아빠는 도망 다니기 바쁘다. 결국 주리의 엄마도 이 사실을 알아버리고, 아이는 태어나 버리고, 두 집안의 일은 점점 꼬여만 간다.
성숙한 아이들, 미숙한 어른들
<미성년>의 어른들, 정확히는 남자 어른들은 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주리(김혜준)의 아빠인 대원(김윤석)은 임신한 내연녀 미희(김소진)와 아내 영주(염정아)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주리와 윤아(박세진)를 마주치고는 한심하게 도망친다. 윤아의 아빠 박서방(이희준)은 딸의 이름도 잘 기억하지 못하면서 때때로 돈이나 빌리러 찾아오는 인물이다. 역시 남자인 담임 선생님 김선생(김희원)도 편견의 시선으로 실언을 했다가아이들에게 빈축이나 사기 일쑤다.
어른이 어른 구실을 못하는 상황에서 영화는 미성년자인 주리와 윤아의 시선을 따라 움직인다. 관객 역시 그들의 시선에 따라 이 한심한 어른들을 살펴보게 되는데, 이런 시선은 꽤나 진부하게 느껴진다.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 어른들을 비판하는 작법은 여러 작품에서 숱하게 시도되었다.
<미성년>은 이 부분에 있어 그간에 시도보다 더 나은 지점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특히나 아쉬운 점은 남성캐릭터들을 기능적 소비다. (적확한 현실 고증일 수 있지만)영화의 남성 캐릭터들이 지나치게 단선적으로 찌질하다.인물의 입체성이 영화의 깊이에 주는 영향을 고려해 보았을 때 이분법적이고 평면적인 인물 설계는아쉬운부분이다.
하지만 <미성년>이이런 부분에 대해서 비판만 받기보단 주목해봐야 할 다른 지점을 가지고 있다.
성숙한 그 이름, 엄마
바람난 사실을 엄마가 알고 있다고 아빠에게 전하러 가는 주리에게, 영주(염정아)는 맨발로 뛰어가 도시락을 전한다. 엄마는 남편은 외도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주리가 엄마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듯, 이야기하지 않는다. 매일 아무도 먹지 않는 아침밥을 차리는 영주는, 그저 성당에 가서 기도할 뿐이다.집안의 무게는 지탱하는 건 온전히 영주의 몫이다.
"영화 내내 보여주는 염정아의 얼굴을 놀랍다. 어쩜 표정만으로 감정을, 아니 그간 살아온 세월을 관객에게 전해줄 수 있는가"
다른엄마 미희(김소진)는 어떠한가. 아이 같이 딸에게 어리광을 부린다.현실감각 없이 대원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 대원을 비난하는 딸에게그 남자는"그런 사람이 아니"라며 토라진다. (뭐가 그런 사람이 아닌가? 대원은 그런 사람이다.)
그렇다면 미희는 어리숙한가. 아니다. 19살에 윤아를 낳고 혼자 가정을 일궜던 미희다. 미희의 이력만 들어봐도 삶의 굳은살이 얼마나 그녀를 단단케 했을지 짐작 간다. 대원에 대한 믿음은 "여자로서 아주 불행"히 살아온 미희가 잠시 젖은 환상일뿐이다.
영주가 미희의 가게로 찾아온 날, 미희가 영주를 포함한 손님들을 대하는 모습은 미희의 세월이 얼마나 고단했고 그 세월을 견뎌온 미희가 얼마나 강인할지를 예상케 한다.
소녀에서 엄마로
대원, 김선생, 박서방 등 이 영화의 남자 캐릭터는 너무 못났다. 미성년자인 주리와 윤아보다 미성숙한 성년들이다. 하지만 윤아와 주리도 미성숙하긴 마찬가지다. 갓난 동생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을 개선하려 하지만 점점 악화시키는 그 미성년들 역시 아직 미숙하다
우리와 같이 그들은 모두 미성숙하다. 미성숙한 우리들 사이를 든든하게 버티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엄마들이다.
두 소녀가 싸우고 화해하며 현실의 무게들을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일종의 성장 영화 같이 보인다.두 가정이 얽히는 과정에서 주리와 윤아는 너무나 많은 것을 겪었고 너무도 많이 성장했다. 영화 종반부두 소녀의 앵글에 어쩐지 영주와 미희가 겹쳐 보인다.
둘은 계속 단단해질 것이다. 어쩌면 언젠가 엄마가 될 것이고 또 누군가의 곁에서 강인하게 버텨낼 것이다. 아름다운 영화인지 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참 아름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