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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필 Aug 01. 2022

<미드나잇 인 파리> 시간과 공간보다 중요한 것

#9 우디 앨런, 미드나잇 인 파리(2011)

※ 이 글을 포함한 모든 글은 알게 모르게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약혼 관계인 (오웬 윌슨)과 이네즈(레이첼 맥아담스)이네즈의 부모님의 출장을 따라 파리로 여행을 오게 된다. 길과 이네즈는 사소한 부분에서는 잘 맞지만 중요한 부분에서 맞지 않는 커플이다. 편하게 말하자면 이네즈는 현실에 살고 길은 낭만에 산다. 이네즈의 가족 그리고 그녀의 친구들과 불편한 여행을 하던 어느 날, 길은 혼자 밤길을 걷다가 자정을 리는 시계 소리와 함께 등장한 차에 올라타게 된다. 길은 그 차를 타고 1920년대의 파리로 가게 된다. 과거의 파리에서 스콧 피츠제럴드, 어니스트 헤밍웨이, 거트루드 스타인 등 평소 동경해오던 예술가들을 만나게 되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파리라는 공간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길과 이네즈(레이첼 맥아담스)그리고 폴 부부

우디 앨런스러운 영화다. 위트와 상상력만으로도 영화를 유려하게 풀어낸다. 아름답고 화려한 파리의 모습에 눈길이 한 번 가고, 재기 발랄한 설정과 통통 튀는 캐릭터들에 마음이 한 번 더 간다. 핍진성 따위는 과감하게 포기하지만 이야기는 거슬리는 부분 없이 매끄럽게 이어진다. 파리에 대한, 예술에 대한, 시대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채워진 환상 속에서 누리는 짧은 여행 같은 영화다.



현재의 부정으로써의 과거

이네즈의 친구인 폴은 "과거에 대한 수는 고통스러운 현재에 대한 부정"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현재에 대해 불만족하기에 과거를 미화하고, 예전이 좋았다며 추억팔이나 하기 일쑤다. 진정 과거는 아름다운가. 과거에도 아름다운 순간은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과거는 현실만큼 진창이었을 거다. 다만 기억이 편집한 과거가 아름다울 뿐이고 이는 현실의 고통에 대한 훌륭한 방어기제다.

2010년대에 사는 길은 1920년대의 파리를, 1920년대에 사는 아드리아나(마리옹 꼬띠아르)는 벨 에포크 시대의 파리를, 벨 에포크 시대의 고갱과 드가는 르네상스 시대의 파리를 동경한다. 영화 후반부 길과 아드리아나의 대화를 보면 언뜻 우리는 과거의 영광만을 바라고 현재를 부정하는 것으로 비친다. 어느 시대에 살던 화려했던 과거를 동경하니, 과거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현재에 만족하며 살자는 의미를 전하려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길과 아드리아나의 선택이 갈림으로써 영화는 한층 더 깊은 얘기를 전한다.


벨 에포크 시대에 머무르자는 아드리아나의 제안에도 결국 길은 현재로 돌아가고 아드리아나는 과거에 남는다.

돌아간 자와 머무는 자. 둘의 선택은 달라 보이지만 사실 둘의 다른 선택은 같은 이유에서 이루어진다.

아드리아나(마리옹 꼬띠아르)와 길(오웬 윌슨)


주체적인 삶을 산다는 것

길은 현재의 시간으로 돌아오지만 현재의 삶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과거에서 돌아온 길은 이네즈에게 이별을 고하면서, '미국 베버리힐즈'로 상징되는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삶을  뒤로하고 '파리'에 남게 된다. 돈 되는 스크립트를 쓰는 것보다 돈은 안되지만 쓰고 싶은 소설을 쓰는 일이나,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세느 강 주변을 걷는 은 그 효용이나 가치를 떠나 그에게는 중요한 일이다.


아드리아나의 경우 의상 공부를 하러 파리로 왔지만 여러 예술가들의 뮤즈로써의 역할만을 하고 있었다. 1920년대의 파리 속 그녀의 캐릭터는 수동적이고 어딘가에 갇힌 느낌이다. 아드리아나가 벨 에포크 시대의 화려함에 매료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아드리아나를 벨 에포크 시대에 머물도록 한 것은 드가와 고갱이 발레의상 만드는 일을 소개해준다는 희망적인 말이었을 것이다. 아드리아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 나갈 수 있는 곳이 과거이기에 그녀는 과거에 남기로 결심했다. 말하자면 길과 아드리아나는 가장 나다운 나로 살 수 있는 장소를 선택한 것이다.

Paris in the rain


우리가 과거를 추억하는 것도 어쩌면 현재의 주체성 상실에 기인한 것이다. 젊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도전하고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던 시절에 대한 동경, 정체된 오늘에서 바라보는 과거는 주체적이며 역동적이고 그것이 현재의 우리가 동경하는 것이다.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진정으로 말하고자 했던 것은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현재에 집중하자는 말보단, 주체적으로 삶을 살며 더 나다운 나를 꿈꿀 수 있는 상황 속으로 나를 밀어 넣으라는 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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