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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S Nov 12. 2022

브롬톤 자전거로 떠나는  100km 1박 2일 캠핑여행

내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

마음이 답답했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러하듯 을의 입장에서 나의 합리적인 판단은 갑의 입장에서는 도전이었고 반항으로 비쳤다. 그리고 대부분의 을이 그러하듯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내 의견을 추가로 피력하기보다는 얼른 갑이 원하는 대로 처리하고 내 안식을 찾기로 하였다.



그렇게 나는 2박 3일의 휴가를 받고 캠핑장비와 브롬톤 접이식 자전거를 차에 싣고 포항으로 향했다. 내가 포항으로 떠난 이유는 브롬톤과 캠핑장비를 가지고 포항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경북 울진으로 떠나 동해안 종주 브롬톤 캠핑(이하 브롬핑)을 하기 위함이었다.



울진 노지 캠핑장, 안장에 매달린 비닐봉지에는 편의점에서 구매한 소중한 식량이다.

사실 즉흥적으로 떠난 여행이라 아무 생각이 없었다. 울진에 도착하니 벌써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다행히 울진 버스터미널에서 바다 쪽으로 이동하자마자 좋은 노지 캠핑장이 보인다. 오늘 밤은 여기서 조용히 깔끔하게 묵고 가기로 한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라면을 사서 뷰 좋은 곳에 자리를 폈다.



캠핑 사이트를 설치하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사진상 좌측 상단에 계신 아저씨께서 이 작은 자전거로 혼자 왔냐면서 칭찬을 해주셨다. 오랜만에 듣는 칭찬이다. 아저씨께서도 혼자 오셨고 커피 한잔을 권하셔서 커피 한잔과 아저씨의 파란만장한 자전거 해외여행 스토리를 재밌게 들었다. 일본 대마도, 규슈 등 자전거로 여행을 하셨고 나도 저렇게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튼 멋진 아저씨였다.  



울진에서 장사해수욕장까지 100km. 무계획으로 왔지만 INTJ인 나는 텐트 속에서 다음날 자전거 코스와 중간 휴식 및 재보급 지점, 등을 판단하고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편의점 빵과 커피를 마시면서 코스를 눈에 익히고 오늘의 날씨 등을 점검했다. 굿 오늘은 아주 자전거 여행하기에 좋은 날씨였다. 그렇게 100km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사실 1박 2일 여행이지만 100km 자전거 탄 날은 하루다.)



동해안 자전거 길, 이때 엉덩이가 반으로 갈라지는 기분이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나를 둘러싸고 있는 어깨 위 무거운 짐들은 잠시 제쳐두기로 했다. 물론 대신 내 자전거가 상당히 무거워졌다. 하지만 그 기분을 아는 사람이 많을지 모르겠다. 자전거 페달 소리와 내 숨소리를 들으며 동해안의 시원한 바람을 가르는 그 기분을 말이다. 비록 오르막길에서 2단 밖에 없는 내 브롬톤은 나를 자주 멈추게 하고 좌절시켰지만 내 머릿속은 어느 때보다 가볍고 편안해지고 있었다.



자동차가 아닌 자전거로 여행하게 되면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여행이 입체적이 된다. 자전거 여행을 통해 온전히 나에게 더 집중하게 된다. 자전거 타며 돌이켜보니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와 답답한 마음을 그냥 훌훌 털어 보냈어도 됐었는데 나는 왜 그걸 마음속에 쥐고 스스로를 괴롭혔을까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참 스스로 옹졸했다.



그리고 내가 마주치는 사소한 일을 무심코 지나치지 않고 감사하게 된다.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 보면 기온보다 더 덥게 느껴져서 물을 많이 마시게 된다. 작은 바닷가 마을을 지날 때면 편의점도 찾기 어려워서 중간 보급이 참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럴 때면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계시는 정자나 마루를 공략하면 좋다. 또래는 몰라도 어르신들에게는 제법 통하는 인상이다. 그렇게 감사히 물을 구하고 찬물에 세수 한번 한 후에 "아니 총각은 이 고생을 왜 하는 거야"라며 정겨운 덕담을 들으며 또다시 발길을 옮긴다.

 


손과 다리가 아주 까맣게 탔다.


주변 사람들은 나의 이런 여행을 보고 이렇게 묻곤 한다.

"아니 근데 혼자 가서 뭐해?" "혼자 가면 심심하지 않아?"

나의 답변은 "응 심심하고 사실할 거 없어. 그런데 다녀오면 마음이 편해져"이다.



최근 사회적 이슈 중 상당수가 사람들의 정신건강 문제이다. 뉴스를 보게 되면 공황장애, 우울증, PTSD, 등 과거에는 굉장히 생소했을 정신건강 전문용어들이 우리들의 일상 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주변을 조금만 둘러봐도 적지 않은 지인들이 위 문제로 치료를 받고 있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들은 끊임없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사랑과 애정뿐 아니라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마찰, 갈등, 우울감과 스트레스를 겪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우리도 모른 채 가벼운 것들이 쌓여 불현듯 우울증, 공황장애와 같은 정신건강 문제가 우리들의 문을 두드린다.



나는 다행히도 마음이 지치고 버거울 때면 자전거 여행, 백패킹과 같이 혼자 할 수 있는 취미를 혼자 즐기는 편이다. 물론 가까운 친구 한 명과 동행하는 것 또한 즐기지만 나는 종종 온전히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과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보내는 편이다.  그래서 자전거 여행과 같이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나의 언행을 복기(바둑 대국이 종료된 이후 다시 두면서 과거의 수를 돌아보는 것)하며 마음을 추스른다.



어쩌면 이것이 나에게 감정 배출구가 아닐까란 생각을 한다. 타인에 의해 받은 상처를 다시 타인에게 의존하고 전달하기보다는 스스로 배출하기를 선택했다.



나는 오늘도 건강하고 온전한 내 삶을 위해서 배낭에 짐을  넣고 페달을 굴린다.

 


현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서로에게 상처주기를 멈추고 배려하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행을 마칩니다.



100km 자전거 완주 후 장사 역에서 포항역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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