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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희 Dec 31. 2023

글로벌 모바일 서비스 1년, PO의 회고

2023년 한 해를 정리하며

한 해를 정리하며.


2023년 1월 2일. 한국에서 글로벌 서비스를 만들고 있는 팀의 PO로 입사했습니다. 가진 경력이 많지 않았지만 제 잠재력과 가능성, 기존 구성원들과의 케미를 종합적으로 평가받아서 덜컥 가장 높은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제품 스쿼드의 PO가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잠을 설칠 정도로 기대되는 밤들도 있었습니다. 제가 있는 시공간 만이 완전히 다른 시간 개념 안에 있는 것처럼 순식간에 1년이 지나간 것만 같아요. 그래서 오늘은 내년의 제가 한 해 더 잘해 먹을 수 있도록(?) 한 해의 회고를 진행해보려 합니다.


연말이기 때문에 회고에 적격인 시기인 것 같다고 느끼면서도 아직 제품의 12월 릴리즈 예정 기능이 개발 중이라 수렴 후 회고할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앞선 1년의 경험과 추억을 돌이켜 생각하면 남은 기능도 잘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글을 써 봅니다. 

선물에 담겼던 대표님의 코멘트


The Power of a Personal Retrospective

(Source: The Power of a Personal Retrospective)  


What am I most proud of this year? | 올해 가장 자랑스러운 일은?


여러 순간들이 떠오르는데 역시 PO는 연말 결산 때 담당 제품의 매출이 뛰는 게 가장 자랑스러운 일 아닐까 합니다. 2022년 매출 감소세였던 제품을 마케팅 등 외부 서포트 없이 연간 10% 이상 성장 시켰거든요. Activation이나 연 평균 Day 1, 7, 14 리텐션 상승폭은 그보다 더 폭발적이었고요.


처음에는 막막했습니다. 온보딩 기간 동안 담당 제품의 3개년 매출 분석을 했는데, 2년 전부터 점차 성장세가 완화되다가 작년부터 성장 부진 - 매출 감소 현상을 겪고 있었습니다. 조직 전체 매출의 75%를 담당하는 제품이기에 단순히 제품이 역성장 중이라고 말하기 어려웠어요. 조직 전체의 매출도 크게 감소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의 조직은 투자금 없이 자체 매출로만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다시 성장세로 돌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컸습니다. 관련 도메인 경력이 적은 데다가 담당 제품은 영미권 Design 서비스 시장을 타깃하고 있었거든요. 네. 여러분들이 곧바로 떠올리셨을 Canva, Adobe 등의 쟁쟁한 기업들이 뛰어노는 바로 그 시장이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성장세가 급격히 완화되는 요인을 외재적, 내재적 요인으로 분리하여 고민해 보기로 했어요.


외부 요인은 과열된 디자인 시장과 우리 제품의 카피캣들이 우후죽순 등장하고 있는 점, 타제품들과의 차별점이 크지 않다는 것 등이 있겠다고 보았습니다. 후발주자인 카피캣들, 선두주자인 글로벌 대기업  디자인 서비스들과는 다른 value proposition을 가져가기 위해 인접 시장으로 확대하는 시도를 해보았어요. 그중 몇 가지 시도는 기능 릴리즈 및 개선 직후부터 미친듯한 매출 점프업을 본 경험이 있고요. 그 외에는 제품의 핵심 퍼널을 건드리는 작업들을 많이 했습니다. 


내부 요인으로는 로드맵이 없어 1년 치 계획, 더 짧게는 당장의 4개월치 계획을 어떤 근거로 판단할지 모르는 팀의 분위기를 고치고 싶었어요. 백로그 align이 어려운 1 pager와 유저스토리는 더 손봐야 하는 상황으로 생각했고요.  PO의 인수테스트를 아쉽게 활용하던 기존의 방식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의사결정자의 부재, 대표님으로부터 위임받지 못한 업무들의 병목,  PO에 대한 조직 이해도가 낮다는 것은 옵션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제 권한화 하기 위해서는 물론 제 기량을 모두에게 인정받는 것도 급선무였죠. 


외부 요인과 내부 요인을 모두 해결하려는 여러 노력들의 1년 치가 쌓이니 결과가 좋은 것일 테죠. 전 세계적인 불경기에 필수재가 아닌 디자인 시장에서 매출 10% 이상을 성장시켰다는 데에서 큰 뿌듯함이 있었습니다. 미국 디자인 앱 카테고리에서 top grossing app 10위권에 랭킹되는 경험도 해보았어요. 디자인 시장이 활성화되는 특정 기간에는 최대 매출, 최대 구독자 수를 달성해서 성과급도 짭짤히 받았습니다 (ㅋㅋㅋ)


입사 직후 세운 목표치에 비하면 다소 부족한 숫자이지만 그래도 만족스럽습니다. 혼자서 다 한 것은 물론 아니고 팀의 공감과 협조가 없었더라면 달성하기 어려운 성과였을 거예요. 지금도 떠오르는 얼굴들이 많네요. 제가 자랑스럽다기보다는 우리 팀이 자랑스러웠던 결과입니다. 

특히나 늘 큰 깨달음을 주는 디자인팀과 함께한 워크샵


What did I say I was going to do but never did? | 하겠다고 해놓고 안 한 일은?


PO의 본업 그 자체에 치인다는 이유로 등한시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영어공부. 글로벌 서비스인 만큼 많은 협력사나 외주사들이 해외 업체입니다. 함께 일해야 했던 마케팅팀에도 영어가 편한 분들이 많았고, 제가 담당하는 스쿼드의 Product Designer도 한국인이 아닙니다. 한국어에 익숙지 않은 분들이 많을 것으로 보여서, 작년 연말에 큰 마음을 먹고 비즈니스 영어 교재들을 여럿 결제했습니다. 


그런데 이직 전에 두세 번 정도 펴보고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는 한 번도 펼쳐보지 않았습니다. 우선 업무 관련 야근들이 많았기에 퇴근하면 지치기 일색이었고, 주말에도 대부분 평일에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을 해내야 했어요. 제 개인적인 퍼포먼스가 좋지 않은 것인지 절대적인 업무 강도가 강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참 많이 한 한 해였습니다. 그 고민들 사이에서 영어공부는 우선순위가 점차 밀리기 시작했고요. 


다행히 함께 일하시는 분들은 한국어와 영어를 혼용하실 수 있거나 한국어를 이미 잘하시는 분들이 많았고, 동시에 GPT의 proofreading에 힘입어서 비즈니스 메일도 크게 문제는 없었어요. 미국에서 학교를 나오신 동료 PO 분이나, 영미권 생활 경험이 두둑한 대표님들보다야 상황 맥락을 파악하는 게 한 발짝 늦어지긴 했지만 일을 못 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뒤로 미룬 것이겠죠.


내년에는 미국에 상주하는 리서치 펌과 함께 user research 프로젝트를 해 볼 생각이 있습니다. 아직 어떤 주제로 해내는 것이 비용 대비 효과가 좋을지를 검토하는 중이라 주제는 명확하지 않지만, 어쨌거나 그들과의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화상 미팅도 필수적일 테니 영어가 더욱 받쳐줘야겠지요. 


물론 해외에도 다시 나가고 싶어요. 미국이나 호주에 여행차, 리모트 근무차 훌쩍 떠나볼까도 고민이 됩니다. 


Where did I put my focus that did not serve me? | 내가 집중했지만 내게 도움이 되지 않았던 일은?


웹 TF를 덜컥 담당한 일입니다. 팀에 합류하고 얼마 되지 않은 2월입니다. 입사 2달 차였어요. 이제 막 온보딩이 끝나 주력 업무가 하나 둘 생기던 시점에 TF 참여 요청이 왔던 거죠. 프로젝트를 리딩할 역량이 있는 웹 서비스 유경험자가 없어 MVP가 1년여의 시간 동안 완성되지 못하고 있는 프로젝트였는데요. 입사 후에는 어떻게든 나를 증명해야겠다는 생각에 그 TF프로젝트를 덥석 승낙했습니다. 


웹 TF는 제게 익숙하고 편안한 웹이 조직의 어려움으로 인식되어서 아무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는 상황이라니. 마치 해결사가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도피처로는 딱이었다고 회고합니다. 모바일 스쿼드에서는 머리를 쥐어짜야 하는 것들이 TF에서는 명쾌하고 명확하니  힐링되는 기분까지도 들었습니다. 모바일 스쿼드라는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세이프존으로 도망치기 위해 잔머리를 굴리던 그때의 제 어리석음이 기억납니다. 


TF 합류 후 한 달이 지나자 모바일 스쿼드의 PO로 수행해야 하는 여러 루틴과 새로운 프로젝트, 외부 요구사항들도 점차 커져갔어요. 이제 완전한 풀타임 PO로 여겨져 업무들이 넘어오게 되었죠. 그때부터 웹 TF의 PO이자 스크럼마스터를 병행하는 것이 힘에 부치기 시작했습니다. 소속 스쿼드가 명확했던 저를 제외한 다른 메이커들은 TF에 풀타임 업무를 배정 받으시면서 점차 제가 병목이 되기 시작했어요.


반면 BM과 운영 계획, 정책에 대한 의사결정은 내부 사정으로 점차 지연되었고요. 결정 나기까지 기다릴 수 없다고 본 저는 출시를 위한 모든 것을 마치 ceo인 양 결정하고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걸 해내보겠다는 마음으로 이일 저일 가리지 않고 무리했던 5월의 어느 날, 서비스의 방향성과 제 팔꿈치를 바꿨습니다. 팔꿈치 관절에 염증이 생기고 근육들이 굳기 시작했어요. 잠과 영양 부족으로 면역력 질환이 시작되었고요. 그 후폭풍은 연말에도 저를 조금 괴롭히고 있습니다. (물론 병원비로 인한 통장 잔고도..) 


시니어 개발자가 합류해 스크럼마스터와 개발 리드 역할을 해내시면서 TF는 정식 스쿼드화 되어가기 시작합니다. 제가 퍼실리테이팅 해오던 시간들이 인계되었고 TF 내에서 제 역할을 해내기 어려워 하셨던 메이커들에 대한 멘토링도 더 심화되었고요. 저는 TF의 기획과 정책의 주요 의사결정만 관여하는 방향으로 업무 범위를 줄여나가면서 모바일 스쿼드에 더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지난 11월 서비스는 성황리에 론칭되었습니다. 론칭 한 달 전부터 저는 웹 TF에서의 PO를 마무리했습니다. 기획과 정책 의사결정이 완비되어서 개발만 되면 되니 마무리하고 본래의 스쿼드 업무를 위해 모바일로 넘어가게 된 것이죠. 론칭 박수를 치던 시간에도 모바일 스쿼드의 정규 미팅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게는 용두사미처럼 느껴지는 데다가 참 아쉬운 프로젝트가 아닐 수 없습니다. PO로 얼마나 헌신했는지를 묻는다면 아주 힘들었고, 발버둥 치듯 일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 퍼포먼스가 좋았다거나 성공한 프로젝트라고 답할 수 없습니다. 모바일 스쿼드에서는 1년 암흑기 이후 처음으로 지표가 들썩이는 시점에 제가 모바일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했습니다. 제가 지금보다 조금만 더 모바일을 들여다보면 지금보다 몇 배 더 잘 될 거라는 확신이 메이커분들에게는 있었던 모양이에요. 감사하고 죄송한 일입니다. 


제 역할은 용두사미였고, 결과는 MVP 론칭 준비완료입니다. PO로써의 성과는 아쉽지만 적어내기 어렵습니다.


What do I want more of in my life? | 삶에서 더 하고 싶은 일은?


성취의 자극이 높은 일을 더 하고 싶어요. 2023년을 되돌아보면 개인적으로는 도메인에 대한 고민이 깊었던 한 해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 전에 담당했던 서비스들은 전문 지식과 산업군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하는 생산성 제품들(로봇, B2B, 프랜차이즈 등)이었기 때문에 산업군을 공부하는 데에 재미를 붙였습니다. 학자가 꿈은 아니지만 학구열은 있는 편이라 그 지식을 습득하는 데에서 업무 몰입도와 성취감이 컸습니다. 습득한 지식을 서비스로 실현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좋았고, 지식의 조합을 서비스의 단위로 묶어 이리저리 테스트하고 성과를 내는 게 재미있었어요. 


지금 도메인은 B2C 디자인 생산성에 관합니다. 물론 전문 디자인 스킬이나 지식들이 있지만, 그걸 요하는 대상들을 다루지 않다 보니 지식의 반영보다는 경험 그 자체를 설계합니다. 업계 트렌드나 법, 규율, 새로운 패러다임을 잘 다룰 수 있도록 하기보다 개인의 취향을 구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서비스이니 전문가적 지식보다 개인을 이해하는 데에 더 오랜 시간을 사용합니다. 


특정 산업군에 대한 전문가적 지식을 쌓는 데에서 성이 풀리는 제게 이 경험이 얼마나 성취감으로 돌아오는지 어렵습니다. 성취하기 어려운 영역이라는 문제가 아니라, 제가 느끼는 성취의 자극이 다소 적은 일인 것 같아서요. 2024년 1월 1일이 되면 이 서비스의 2년 차 PO가 됩니다. 성취의 자극이 높은 일이 필요한 지금, 어떻게 하면 그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네요. 


What do I want less of in my life? | 삶에서 덜 하고 싶은 일은?


올해 물리적인 시간의 한계를 참 많이 느낄 정도로 바쁜 시기를 보내왔는데요. PO가 저인지, 제가 PO인지, 인간 백희란 누구인지를 고민하고 몰두하는 시간이 모자랐다고 느낍니다. 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하잖아요. 완전히 일에 치중된 삶을 살다 보니 이런 일도 겪네요. 


PO로 힘에 부치던 어느 날은 그저 업무에서의 힘이 모자랐을 뿐인데, 인간 백희의 삶이 가치 있지 않고 애써 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일과 개인적 삶의 분리를 어떻게 해낼 수 있을지 고민하려고 했지만 지쳐 잠들고 다시 다음날 PO의 삶을 살았어요. 제 삶을 더 살고 PO의 삶은 그중 주요한 축이 되어야 하는 것인데 저를 설명하는 것이 일을 설명하는 것으로 바뀌는 한 해였습니다. 


지속가능하게 일하기 위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나로 서고, PO로도 서는 방법을 알아야 하는데 잘 보이지 않습니다. 운동과 여가, 좋아하는 사람과의 시간 모든 것을 가져보았지만 출근하는 길이 무거웠어요. 이제 조금 쉬세요 라는 동료들의 우려의 말도 종종 받았고요.

자리에 남겨 주시는 선물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한 때


이런 상황은 이제 덜 겪고, 인간 백희를 찾고 싶습니다. 024년, 저는 인간 백희를 종종 찾아보려고 해요. 일과 삶이 균형 잡히지 않고 한쪽이 과하게 역전되는 일을 지양하고 싶습니다. 그 길을 찾아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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