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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삼 Nov 29. 2015

21/27 in Europe #01

Day 1 in London - 1

#01
Day 1 in London - 1




코피를 한 바가지 쏟고 나서야 도착한 런던. 드디어 유럽이다!



여권을  발급받은 이후 1년 간 홍콩과 일본을 다녀오고 나서 서양에 오니 감회가 새로웠다. 물론 몸뚱이는 아직 공항 안이었기 때문에 여기가 런던인지 인천인지 분간은 안 갔지만 온통 영어로 되어 있는 공항 내부를 보니 떨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홍콩과 일본은 자국어가 따로 있는 곳이다 보니 한자가 쓰여있고, 그 아래 작게 영어로 쓰여 있는 게 다였는데 런던은 영어를 쓰지 않던가. 그래서 그냥 온통 안내 표지판이  영어뿐이다.



하루를 꼬박 못 씻었더니 머리에서도 냄새가 나는 것 같고, 얼굴도 갑갑했다. 일단 양치랑 세수만이라도 하자 싶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화장실부터 찾았다. 화장실에 들어가 비행기에서 해결하지 못했던 볼 일을 시원하게 보고,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기 위해 뒤집어 쓰고 있던 후드를 벗자 세상에나. 어쩜 이렇게 못생긴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 걸까 싶었다. 머리는 잔뜩 떡져 있고 눈 밑은 꺼멓다. 도저히 이러고 나갈 수 없을 것 같아서 안경을 썼다.  그다음엔 벙거지 모자를 쓰기 위해 백팩을 뒤졌는데, 이상하다. 모자가 없다…? 심지어 스냅백도 없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갖고 있던 가방을 모두 뒤졌으나 모자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내가 비행기에서 제일 늦게  내린 데다가 너무 미적거리며 움직여서 거의 40분이 지난 상태였는데, 다시 기내로 돌아가 상황 설명을 하고 찾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피곤해졌다. 어떡하지? 돌아가서 찾아? 그냥 가? 고민이 됐다. 그냥 가기엔 모자가 2개고. 그럼 난 돌아다니면서 쓸 모자가 없다. 그렇다고 돌아가자니 심신도 피로하고 귀찮다. 얼마 안 하는 모자니까 그냥 버릴까. 사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내 발은 이미 출구를 향해 가고 있었다. 스냅백에 대한 미련은 없었는데 벙거지 모자가 조금 마음에 걸렸다. 유럽 가서 쓰려고 새로 산 모자였는데.  배송받고 예뻐서 덩실덩실 춤까지 추게 한 아인데.



그러나 심신의 피로가 미련을 이겼다. 결국 모자 두 개를 캐세이에 기부하고 출입국 심사대로 향했다. 아, 모르겠다. 지금은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서 홍콩에서 미리 찾아 둔 히드로 공항 내 샤워실에 가서 씻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얼른 머리도 감고, 옷도 갈아 입고 싶다. 그러려면 일단 내 앞에 놓인 첫 번째 관문은 입국 심사였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영국 입국 심사라 갑자기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알아본 바로는 호텔 바우처도 보여 달라고 하고, 갖고 있는 현금도 보여줘야 하고, 다음 여행지로 가는 티켓도 보여줘야 한다던데. 난 영어도 잘 못하는데 질문이 길어지면 어떡하지?



잔뜩 겁먹은 채로 입국 심사 카드를 적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가이드라인이 너무 어지럽게 쳐져 있어서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를 몰라 당황해 하자 직원이 친절이 번호까지 알려줬다. 때, 땡큐… 를 외치고 입국 심사관 앞에 섰다. 그리고 입국 카드를 내밀자 인자하게 생긴 할아버지(할아버지 아니셨을까…?)가 입을 열었다.





“학생이니?”

“아, 네.”

“영국엔 3일 있네?”

“맞아요.”

“다음은 파리로 가니?”





어? 어떻게  알았지?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보통 다들 런던 인으로 해서 파리로 넘어가거나 브뤼셀로 가거나 하니까 그냥 던진 말이었겠지 싶기도 했다. 파리로  가니?라는 말에 파리로 가는 유로스타 티켓을 보여줘야 하나 싶어서 보조 가방을 뒤져 이티켓을 꺼내려 하자 안 꺼내도 된다는 제스처를 한다.





“안 보여줘도 괜찮아. 즐거운 여행해.”





그리고 내 여권에 도장을 쾅쾅. 끝이었다. 내 영국 입국 심사는 정말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끝났다. 왜지? 내가 인터넷으로 알아봤을 땐 다들 정말 질문 세례가 장난 아니었는데. 난 뭐 이리 간단해?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게 내 유럽 여행의 미래를 보여주는 복선이 아니었을까 싶다. 왜냐면 난 이 이후로도 유러피언들과 긴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하! 포리너 친구가 다 무엇이란 말인가!



어이가 없을 정도로 간단한 입국 심사를 거쳐 회전초밥을 연상케 하는 컨베이어 벨트로 향했다. 내 캐리어가 나오길 하염 없이 기다리는데 이상하게 캐리어가 나올 생각을 않는다. 내가 제일 꼴찌로 나왔는데, 왜 20분을 기다려도 캐리어가 안 보이는 걸까. 설마 분실물 보관함으로 빠진 건 아니겠지. 일단 공항에 나오자마자 와이파이부터 켜서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생존 신고를 했다. 카톡을 하며 무료함을 달래는데 캐리어는 40분을 꼬박 기다려서야 찾을 수 있었다.



캐리어를 끌고 입국장을 빠져 나오니 비로소 보이는 낯선 공항. 인천이 아닌 곳. 하지만 고난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캐리어를 끌고 나와 무료 샤워실이 있다는 터미널 4를  찾아다녔다. 내가 내린 곳은 터미널 3였고, 터미널 4로 향하는 이정표를 보고 움직였다. 터미널 4와 5가 가는 방향은 같았는데, 길을 따라 쭉 가면 지하철역만 나왔다. 쓰여있기는 히드로 익스프레스라고 쓰여 있는데 내 느낌상 그냥 지하철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다. 나는 영국의 지하철이 서브웨이나 메트로가 아닌 ‘언더그라운드’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이런 정보를 하나도 안 알아보고 간 게 잘못이긴 했지만 나는 메트로일 줄 알았다. 그런데 영국은 언더그라운드일 줄이야. 물론 이 사실은 아주 나중에 알게 된다.



어쨌든 나는 그 히드로 익스프레스가 돈 내고 타는 직행 열차 같은 건 줄 알아서 다시 터미널 3을 가리키는 이정표로 돌아갔다. 그렇게 1시간을 빙글빙글 돌았을까. 원래 자체 성격이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물어보질 않는다. 이건 한국에서도 마찬 가지였기 때문에 내가 외국에 나왔다고 해서 나아질 성향은 아니었다. 결국 샤워실을 2순위로 미루고 유심칩부터 사기로 했다. 나오자마자 유심칩을 파는 자판기를 발견하긴 했는데, 내가 사려고 했던 쓰리는 보이지 않았다. 공항에서 파는 걸 보긴 했는데 왠지 저긴 비쌀 거 같고. 나는 분명 오기 전에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쓰리 매장이 있다는 정보를 알고 있었고, 거기만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히드로 공항은 복잡했고, 나는 생각 이상으로 멍청했다.



결국 인포메이션 같은 곳에 가서 물어봤다.





“유심카드를 사고 싶어요. 어디에서 살 수 있어요?”

“심카드요? 위로 올라가면 살 수 있어요. 이리로 쭉 가면 돼요.”





조심스럽게 물어보자(유럽 와서 처음 누군가에게 물어봤다.) 친절하게 알려준다. 새삼 느낀 거지만 영어는 정말 1도 못하는데 알아듣기는 눈치로 다 알아들은 게 너무 신기했다. 직원이 알려준 길을 따라 쭉 가봤지만 쓰리는 찾을 수 없었다. 유심칩이라도 얼른 사서 샤워실의 위치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었지만, 도대체 웨얼이즈 심카드…?



아. 못 찾겠다. 심카드 찾는 것을 포기했다. 그냥 물어물어 샤워실을 먼저 가야겠다. 결국 돌고 돌아, 히드로 익스프레스가 터미널 4, 5로 가는 직행 열차인 것을 알았고 사실 이것 마저도 잘못 탈  뻔했는데 직원의 친절로 터미널 5로 가는 열차를 탈  뻔하다가 4로 가는 열차로 잘 타고 이동을 할 수 있었다. 터미널 4에 도착하자마자 샤워실로 직행했다. 정말 다행히 샤워실은 금방 찾았다. 드디어 씻는다, 드디어!



무료 샤워실 내부는 생각보다 넓었다. 장애인 화장실 겸용인  듯했다.  한쪽 면엔 변기가 있고 반대쪽엔 샤워기와 세면대가 있었다. 일단 샴푸와 바디워시 등 샤워 도구를 꺼낸 다음엔 입고 있던 옷을 전부 탈의했다.  다 씻고, 씻은 김에 캐리어와 보조 가방 짐 정리를 싹 끝내고 나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공항 내 카페로 가서 샌드위치 하나와 커피 하나를 시켰다.






▲샌드위치가 너무 영국스러웠다. 맛이 없었다



유럽에 와서 처음으로 무언가를 사본 역사적인 순간. 샌드위치와 커피를 앞에 두고 감격에 겨워 사진 한 방 쾅, 찍고 SNS에 생존 신고를 올리고 나니 어느덧 시간은 오전 9시 30분. 런던에 도착한 지 3시간  30분째. 이 말은 즉 내가 공항에 갇힌 시간도 4시간을 향해 가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나 도대체 런던 구경은 언제 해볼 수 있는 걸까…?







+)


이 다음부터 본격 숙소 찾기 및 런던  첫날의 이야기를 쓸 건데, 이번 글이 좀 짧기도 하고(심지어 런던이긴 하지만 아직도 공항.)  허전한 것 같아서 올 때 먹었던 기내식 사진도 같이 올려본다.









여누 세 끼 찍었던 날. 순서대로 점심-저녁-아침 순. 떠나기 전 인천공항에서도 제육 김밥 세트 먹고 왔는데, 기내식 진짜 다 챙겨 먹었다. 캐세이는 아침이 진짜 짱짱인 것 같다. 저녁엔 하겐다즈도 줘서 짱 좋음! 저  아무것도 아닌 모닝빵에 버터 발라 먹는 게 얼마나 맛있었는지. 지금도 생각난다. 또 먹고 싶다. 저 버터 바른 빵... 기내식 나름 괜찮았는데, 난 왜 홍콩 가서  아무것도 못 먹었을까...?








2015.11.29


드디어 올리는 유럽 여행기 2편.

그러나 나는 아직도 공항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느 세월에 런던에서 로마까지 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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