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을 걷다 보면
산길을 걷다 보면
글: 세이스강(이윤재) 시각장애인, 시인 & 수필가
산을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말문이 막힌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벼랑 끝이 가까워질수록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필요도 할 수도 없다. 그저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에 감탄하며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될 뿐이다.
그 순간 산은 더 이상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나의 일부가 되어 나를 감싸 안아준다.
산행을 하다 보면 처음에는 목적지만 보인다. 정상에 오르겠다는 목표 끝까지 가겠다는 의지가 온몸을 지배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수록 생각이 달라진다. 정상에 도착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주변을 둘러보게 되고 길가에 핀 작은 들꽃에도 눈길이 간다. 바람이 스치는 소리 나뭇잎 사이로 내려앉는 햇살 이 모든 것이 함께 어우러져 산행을 완성한다.
인생 또한 그러하다. 처음에는 목표만을 바라보며 달려간다. 좋은 성적과 안정된 직장 그리고 성공적인 커리어와 넉넉한 삶 하지만 길을 걸어가다 보면 삶이 단순한 목적지로 향하는 직선이 아님을 알게 된다. 때론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장애물 앞에서 주저앉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들이 우리를 더 깊이 있게 만들고 삶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해 준다.
나 또한 그러했다. 사십 대 중반 예상치 못한 질병으로 인해 한순간에 세상이 흔들렸다. 뇌출혈로 인해 시력을 잃었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절망했다. 더 이상 산을 오를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가장 힘들게 했다. 산을 오르며 숨을 고르고 자연 속에서 마음을 다잡았던 그 시간들이 내 삶에서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시간은 다시 길을 열어주었다. 삶이란 단순히 보이는 것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여전히 숨 쉴 수 있는 것 걸을 수 있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해야 할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산을 찾았다. 예전처럼 빠르게 오를 순 없어도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자연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했다.
지금은 시와 수필을 통해 내 삶을 기록하며 드론을 날리며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본다. 내 손끝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누군가에게 작은 울림이 되길 바라며 오늘도 글을 쓴다.
산길을 걷다 보면 때때로 숨이 차고 벼랑 끝에 선 듯한 순간을 맞이한다. 그러나 그 순간이야말로 우리를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이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더 깊이 성장하고 지혜와 사랑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의 삶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빛나는 길이 된다.
이처럼 인생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때론 가파르고 힘든 길이지만 결국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더 깊은 평온을 찾고 더 넓은 세상을 마주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고 걸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나누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