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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한편

내 신랑은 팔순 같아

by 세이스강 이윤재

내 신랑은 팔순 같아 / 세이스강(이윤재)

아, 네 살 연상인 내 신랑은 팔순 같다네
신랑은 갑진년 용띠로 태어나
오랜 공직생활에서 은퇴한
젊은이 애송이라니까요
하지만 그 봉건적이고 고리타분한 신랑 때문에
참, 요즘 따라 머리카락이 하얗게 새는 걸
막을 수가 없어요

아침 일찍 일어나 찬바람 맞으며 산책을 나가고
TV 앞에서 하루 종일 뉴스를 보고 있으면
그 모습이 참으로 귀엽답니다
하지만, 신랑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치 19세기 봉건 사회의 어르신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요?

"여보, 오늘 저녁은 된장찌개랑 갈비찜 좀 해 줘!"
하는 신랑의 명령에 저는 애교 넘치게 대답하죠
"네, 신랑님~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속으론 '참, 나는 언제쯤 신부님으로 대우받을 수 있을까?'
하며 미소 짓지요

그리고 신랑은 또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여보, 집안일은 여자가 해야지
남자는 바깥일을 하는 거야."
그런 신랑의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속으로 '그래서 당신은 공직에서 은퇴했잖아?
이제 집안일도 같이 해요!'라고 생각하곤 해요

그래도 가끔은 신랑의 애교 넘치는 모습에
웃음이 나곤 해요
신랑이 "여보, 나 당신 사랑해"라고 말할 때면
그 봉건적인 모습도 잠시 잊히고 오십 대 부엌대기는
다시 젊은 시절의 풋풋한 사랑이 떠오르거든요

이렇게 팔순의 신랑과 함께하는 일상
참으로 다채롭고 재미있답니다
고리타분한 신랑이지만 그 속에 숨겨진 애정과
따뜻함을 느끼며 오늘도 함께 나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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