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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로

그가 죽었다.

난 그가 오래 못 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죽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앙심을 품은 마녀처럼 그 시간에 주술을 걸듯 확신했다.

의학적 시간이 정한 죽음이지만 신이 정한 운명이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그의 죽음이,

한 생명의 죽음이 먼지처럼 여겨지는 것은 그를 알고 지낸 인연에 대한 경솔함이지만, 그런데도 그때 난 그렇게 경솔했다.

이별은 박힌 가시처럼 박힐 때만 아프다.

건드리지 않으면 아픔을 모른다.

배고프면 먹고 잠이 오면 자고 하는 동물적 본능 같은 당연한 이치처럼 여겼다.

나이가 먹고 세상 이치를 좀 알아서였을까.

나고 죽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단지 그가 나보다 조금 빠른 것이라고 여긴 것일까.

아님,

내가 그 보다 하루 더 살 수 있다는 거지 같은 뻣뻣한 조롱일까.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을 것 같다.

알 수 없는 실타래처럼 엮인 인간사의 감정들을.

아마, 그것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그 감정에 내가 확신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가 건드린 나의 얄팍한 자존심.

치졸한 열등감이 조미료처럼 뿌려진 나의 심술이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악마의 심술 보다 더 잔인한 인간의 심술.

싫다.

역겹고 시궁창처럼 더러운 나의 심술.

유치하다.

왜 그랬을까?

섭섭해서였을까?

인정받지 못해서였을까?

아마 그도 나에게 서운했을까!

이제, 그 섭섭함도 서운함도 그 어떤 앙금도 풀 수 없다.

그때 그의 영정 앞에 술 한잔 놓지 못했다.

핑계가 족쇄가 되어 그냥 눌러앉았다.

미안함이 명치 위 가슴팍에서 거렁거렁 거리는 가래처럼 가슴에 걸려서 숨을 쉴 수 없다.

좁쌀만 한 인간적 도리도 못한 것이 괴롭다.

핸드폰 주소록에 저장된 그의 이름이 내 가슴에 박힌 가시였다.

순간 섬광 같은 후회가 관자놀이를 때리고 종이로 밴 것 같은 시린 아픔이 심장에 전해졌다.

잊히고 무뎌졌다고 여겨진 그가 바람 든 무처럼 그렇게 내 맘에 멍들어 있었다.

그래서 시리고 아픈 것일까!

술 한 잔 놔두고 허허 웃고 털어버렸으면 좋았을걸.

실은 털어 버릴 것도 없는 일이다.

지금 그가 있었으면 안주 삼아 술 한잔 기울일 아주 사소한 것인데....

왜였을까?

그래도 다 좋다.

내 기억엔 이런 몹쓸 감정보단 추억이 더 많아서 좋다.

그도 나와 같은 감정을 갖고 갔을 것이다.

그런데도 미안하다.

너무 미안해서 어릴 쩍 남은 소시지 하나 내가 더 먹은 것도 아픈 이유가 돼버렸다.

그가 없는 지금에서.

남겨진 내가 더 아프다.

슬픈 게 아픈 게 아니고 아파서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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