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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로 Mar 28. 2024

정을 떼다

그러고도 한참을 오지 않았다.

"이렇게 끝나는 건가"하고 생각이 고장 난 라디오처럼 오락가락한다.

"설마, 아니겠지"라고 생각을 고쳐보지만, 이것도 잠시.

며칠이 또 흘렸다.

이른 아침.

출근길.

주차장에서 낯익은 몸짓 하나를 봤다.

느릿하고 유연한 몸짓으로 주차된 차량밑을 낮은 포복 하듯 지나가는 것을 봤다.

어두운 곳을 지나지만 낯익은 모습이라 번에 알아챘다.

"냥아"하고 불렸다.

역시 미동도 없이 제 갈길만 간다.

"이런, 인정머리 없게"

서운하다

그래도 내 목소리를 알아볼 건데 털끝 하나 반기지 않는다.

나는 미련을 버리고 돌아서 걸었다.

그래도 돌아서면서 녀석에게 한마디 던졌다.

"냥아, 밥 먹으러 와."하고.

나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버튼을 누르고 걸어 나온 길을 아쉬움에 돌아보았다.

긴 액자처럼 열린 문에 차가운 시멘트 벽이 놓여있고 삭막했다.

그때 시커먼 형체가 스르륵 나타나더니 나를 보고 다소곳이 앉았다.

녀석이었다.

"오, 녀석이 날 배웅하는 건가?"

"그렇지 내가 널 챙겨준 게 하루이틀이 아닌데 날 모를 리 없지."

순간 녀석을 의심했던 것이 미안해졌다.

그리고 따뜻하고 야릇한 감정이 언 가슴을 녹이 듯했다.

서로 아무 말없이 바라보고 서 있었다.

난 녀석이 강아지처럼 내게 달려오길 내심 바라며 서 있었다.

내 욕심이란 걸 알지만 그래도 바랬다.

맘속으로 성공의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띵!"

나의 간절한 바람을 엘리베이터가 깨버렸다.

평소보다 빨리 열린 문이 원망스럽다.

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기며 녀석에게 눈으로  입으로 말했다.

"냥아, 이따 봐."

내가 돌아서서 걸어도 녀석은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계속해서 앉아 있었다.

나만 바라보고.

엘리베어터 문이 닫혔다.

에 내 가슴이 끼인 듯 답답하게 아파온다.

그래도 날 위로한다.

"오겠지. 올 거야. 그렇게 말을 했는데....."

그날 녀석은 오지 않았다

그러고도 한 참을 녀석을 볼 수 없었다.

이제 녀석은 게서 정을 떼려고 하는 것 같다.

유리창에 맺힌 빗방울이 힘없이 흘러내리 듯 내 가슴에도 한 줄기가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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