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인문학
보철물이 잘 맞지 않아서 다시 제작을 보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다시 제작을 보냈는데 또 문제가 생겼다. 그 보철물이 재내원 약속 시간까지 도착하지 않은 것이다. 환자는 다시 긴 시간을 대기실에서 기다려야 했다. 도착한 보철물을 맞추기 위해 진료실에 들어갈 때 환자가 컴플레인을 심하게 하면 어쩌나, 다시 만든 보철물이 또 안 맞으면 어쩌나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환자를 맞았다. 환자는 골프복을 입고 있었다. 나는 반갑게 맞았다.
“어, 골프 치고 오셨나 봐요? 저는 어제 라운드 나갔었는데요.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샤워 안 하고, 옷도 안 갈아입고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셨나 보다. 그나저나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 네, 원장님은 골프 잘 치시겠네. 치과의사분들 잘 치시는 분들 많던데.”
“전 늦게 시작해서 이제 백돌이 면했습니다. 열심히 연습하고 있습니다.”
“원장님, 저는 골프를 치고 나서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제가 처음 시작했을 때는...”
환자는 수 분간 요약된 골프 인생을 말해주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맞춰본 보철물은 또 맞지 않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환자는 아무런 컴플레인도 하지 않고 다음 약속을 잡고 갔다.
심리학자 팀 엠스윌러(Tim Emswiller)는 한 가지 실험을 했다. 정장 차림과 히피 복장의 연구 보조자에게 전화를 걸 10센트 동전을 빌려오게 한 것이다. 이 실험에서 자신과 비슷한 복장을 한 사람이 부탁할 경우 70% 이상이 빌려주지만, 자신과 너무 다른 복장을 한 사람에게는 50% 이상이 거절한다고 밝혀졌다. 사람은 똑같은 부탁을 하더라도 비슷한 부류 사람의 부탁을 더 잘 들어준다는 것이다.
● 유사성의 원리
속된 말로 끼리끼리 모이는 사람들의 심리를 말해주는 말은 많다. 동병상련(同病相憐), 유유상종(類類相從), 각종기류(各從基類), 초록은 동색, 과부사정 홀아비가 안다 등. 사람은 자신과 비슷하리라 생각되는 사람이 자신과 같은 행동을 하면 자신이 하는 행동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그리고 비슷한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은 앞으로 어떠할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하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유사성의 원리(Principle of Similarity)’라고 한다. 사람은 의견, 성격, 배경, 라이프스타일, 복장, 이름 등 어떤 것이든 자신과 비슷한 것이 하나라도 더 있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한창 연애를 할 때 상대방이 좋아하는 음식과 취미를 알아내서 자신도 그것을 좋아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던 기억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상대방을 사로잡는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것이 바로 공통분모를 찾는 것임을 우린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과 다른 것에는 어떨까? 동물들은 흔히 자신과 다른 개체의 동물을 격렬하게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개체의 생존과 보존을 위해 생겨난 본능이다. 사람에게서도 이런 반감을 품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견되는데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반감 가설(Repulsion Hypothesis)’이라고 한다.
물론 ‘상보성(Complementarity)’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즉, 반대끼리 끌린다는 것이다. 같은 기질은 서로 밀어내기 때문에 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친화성은 오히려 지루함의 토대가 된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여러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이런 주장은 예외적이다. 즉 일반적인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복장에 관한 위의 연구 외에도, 설문조사에서 조사자의 이름을 응답자의 이름과 비슷하게 했더니 응답률이 거의 두 배로 높아진 연구도 있다. 한 보험회사의 계약 기록을 분석한 결과, 고객들은 자신과 나이, 종교, 정치적 성향 등이 비슷한 영업사원과 계약을 맺을 확률이 높았다. 표면적으로는 자신과 다른 면을 가진 사람에게 매력을 느낄 수는 있지만, 공통분모를 가진 사람에게 더 호감이 가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 만들어가는 공통분모, 통분
행복하게 오래 산 부부는 얼굴이 서로 닮아간다는 속설이 있는데 사실은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 심리학자 타나 챠트랜드(Tanya L. Chartrand)가 발견한 ‘카멜레온 효과(Chameleon effect)’ 때문이다. 자신과 상호 작용하고 있는 상대방의 자세, 독특한 버릇, 표정, 기타 행동을 무의식 중에 흉내 내는 현상을 가리켜 붙인 이름이다. 함께 사는 오랜 세월 동안 상대방의 표정을 흉내 낸 결과 똑같은 얼굴 근육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두 사람의 얼굴이 비슷해 보인다는 것이다. 동일한 패턴의 주름과 얼굴 근육의 형태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외모의 유사성을 더 많은 부부일수록 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는 그래서 놀라운 것은 아니다.
사실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하는 것은 공통분모를 찾는 것과는 또 다르다. 그것은 없던 공통분모를 만드는 일종의 ‘통분(通分)’인 것이다. 우리는 분모가 다른 분수를 계산할 때 공통분모로 만들기 위해 통분한다. 통분되면 계산이 비교와 계산이 편해진다. 인간관계, 부부관계도 통분을 시키면 훨씬 관계가 좋아지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진정한 통분의 과정은 오랜 부부처럼 오래 걸리고 진정성이 필요하다.
● 호감을 뛰어넘는 공통분모
화장품 가게에서 한 판매원을 우연히 지켜본 적이 있다. 피부가 지성이라고 말하는 손님에게 “언니, 내가 피부가 정말 지성이잖아, 근데 이 제품을 써보니까 대박….”이라고 얘기를 하더니 그 손님이 떠난 잠시 후 피부가 건성인 사람에게는 “고객님, 제가 피부가 다 말라버렸다가 이 제품 때문에 보세요, 피부가 촉촉하게 살았잖아요. 보세요.”라고 이야기했다. 조금은 거짓된 통분의 과정이지만 제품 자체를 속이는 것이 아니라면 충분히 잘하는 장사다.
이런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것이 바로 유사성의 원리를 마케팅 분야에 적용한 것이다. 마케팅에서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는 ‘통분’은 차치하더라도 일단은 솔직하고 쉽게 접근하는 것이 좋다.
“이거 정말 딱 내 스타일인데 어디서 사셨어요?”
“서울에서 여기로 새로 이사 오셨어요? 저도 서울에서 이사 왔잖아요. 벌써 20년이나 됐어요.”
“사랑니 빼서 많이 아팠죠? 저도 비슷한 나이 때 뽑았는데, 일주일 동안 못 먹어서 다이어트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어머니 관절약 드시는 거 보니까 관절이 안 좋으시구나. 요즘 안개가 많이 끼어서 저도 관절이 아프더라고요. 뭐 신통한 약 좀 소개해 주세요.”
이렇듯 환자와의 공통분모를 찾으려는 노력은 늘 계속된다. 호감을 느끼게 된 환자가 조만간 나의 마니아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