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인문학
“정말 괜찮은 거 확실하게 맞는 거죠? 암이거나 뭐 안 좋은 그런 거 아니라는 거죠?”
입안에 나 있는 하악 골융기가 맘에 걸렸는지 밤새 걱정하느라 잠도 못 잤다면서 환자가 물었다. 분명히 오래전부터 있던 거 같은데 우연히 발견하고 인터넷 검색도 해보신 것 같았다. 제대로 ‘하악 골융기’ 정도로 검색을 했다면 모를까 ‘뼈증식, 암, 악성’ 등 환자 머릿속의 나쁜 검색어와 연관 지었으니 당연히 안 좋은 쪽으로 검색이 많이 되었을 것이다. 이미 나쁜 검색어를 잔뜩 품고 온 환자는 의사의 말을 반신반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결국에는 내 입을 벌려 보여드린다. “저도 똑같은 거 있어요. 보세요. 제 것이 좀 더 크죠? 전 30년 전에 발견했습니다.” 그제야 웃으면서 안심한다. “호호, 원장님도 있구나. 그럼 안심이네요.”
사실 환자가 가진 의학적 지식은 전문지식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아주 단순한 ‘짤 지식’에 불과하다. (‘짤’은 ‘짤방’을 얘기한다. ‘짤방’은 ‘짤림 방지’의 준말로 SNS상에서 단순한 글만 실으면 삭제당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그림, 사진 등을 첨부해서 짧게 올리는 글을 의미한다.) 그나마도 잘못된 지식인 경우가 허다하다. 전문적인 지식이 많을수록 객관적일 수 있지만 단순 지식에 의존하는 것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스스로 자기의 몸 상태를 자기가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매우 주관적이며 객관적인 근거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환자가 질병을 판단하는 근거는 가족이나 친구 혹은 TV·인터넷·잡지 등에서 얻은 단편적인 짤 지식이 주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지식 대부분은 잘못되었거나 부적절한 지식일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암 = 증식’이라는 짤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단순 골융기가 생겼을 때 제일 먼저 구강암에 대한 공포를 느낀다.
예전 치과대학 원내생때 경험했던 한 교수님은 아는 척을 많이 하는 환자에게 “아는 거 많으시니까 치과대학 들어가시면 되겠네요. 졸업하고 와서 다시 얘기합시다”라고 하셨다. 자신과 동등하게 얘기하려면 치과의사 면허를 따고 오라는 말이었다. 교수님 말씀처럼, 대등한 지식으로 환자와 얘기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환자가 의사면허를 따고 올 것은 만무하니 결국에는 환자의 눈높이에 우리가 맞춰야 한다.
● 짤 지식의 극단성
짤 지식, 즉 단편적인 지식은 환자를 극단적으로 안심시키거나 공포에 휩싸이게 만든다. 예를 들어 처음 진료를 받은 환자가 어떤 질병에 대해 밤새 고민하다가 괜찮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의사를 향해서 몇 번이고 고맙다고 말하는 것을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의사의 입장에서는 정상 결과가 나오는데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는 환자가 가졌던 극단적인 공포감이 해소되는 그 감정의 변화를 의사에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결과가 나쁠 때는 그 불안과 공포심을 의료진에게 표출할 때가 많다. 또 그것이 ‘분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슬픔과 분노의 5단계(five stages of grief)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übler Ross)가 거론한 죽음과 관련된 임종 연구 분야의 이론이다. 죽음을 서서히 맞이하는 과정은 부정(Denial)에서부터 분노(Anger), 타협(Bargaining), 우울감(Depression), 수용(Acceptance)의 단계들을 거치면서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는 심리상태를 가리킨다. 머리글자를 따서 DABDA(다브다) 모델이라고도 부른다. 극단적인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과는 물론 좀 다르겠지만 질병을 받아들이는 환자의 심리상태도 이와 비슷하다. 별문제 없이 늘 건강하다고 자신했던 자신에게 발견된 질병은 쉽게 수긍이 가지 않을 때가 많다. 사실을 받아들이고 치료를 잘 받게 되기까지 환자는 극단적으로 부정적이고, 화를 내며, 우울감을 호소하고, 때로는 애처럼 매달린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의료진은 그 환자를 받아들이고, 지켜보고, 설득하고, 이끌고 가야 한다.
● 의료진은 분노 투사(projection)의 대상
환자에게 진단을 내려야 하는 입장에서 의사는 분노의 5단계에서 처음으로 마주하는 사람이다. 질병에 걸렸다는 사실만으로도 환자는 건강 상실에 대한 불안과 분노가 생기게 된다. 그리고 그 분노를 투사(projection)할 상대를 찾게 되는데 이 경우 대부분이 의료진이 그 투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의료진의 사소한 말이나 행동에 환자는 쉽게 피해의식을 가지거나 상처를 받을 수 있다. 진료실에서 분노를 표현하는 많은 경우 의료진은 진료에 대한 불만, 서비스의 부실, 대기시간 컴플레인이라고 생각하지만 표면적일 뿐 사실 환자는 질병에 대한 불안과 분노에 늘 휩싸여 있다. 작은 틈이라도 보이면 분노를 표현할 투사의 대상으로 여지없이 병원 의료진을 타깃으로 삼는다. 의료업에 종사하고 환자를 계속 마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병원문을 닫지 않는 이상 그 타깃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 짤 지식의 수준을 높이는 노력
환자가 알고 오는 단편적인 지식이 대부분 전문적인 의사가 올린 짤 지식인 경우가 많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물론 짧게 핵심을 전달하기 위해서 앞뒤 문맥을 다 자르고 전달하는 과정에서 환자가 오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의도적으로 지나친 광고적 문구로 환자를 유인하기 위한 짤 지식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발견된다. 지나친 가격 경쟁구도로 마치 저렴한 치과가 양심적이고 착한 치과이고 ‘제 값’을 받는 치과는 비도덕적이라고 의심하게 만든다. 자신의 치료가 유일하고 원조라는 마치 맛집 선전하듯 나열된 ‘짤’ 들을 보자면 환자의 ‘미각’을 이토록 무감각하게 만들어도 괜찮은 것인가 하는 같은 의사로서 양심의 가책까지 느낀다. 많은 의료진들은 환자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짤 지식’ 때문에 곤혹스럽다. 상담 동의를 끌어내야 하는 상담자들은 더 힘들다. 쌓인 설태를 없애고 제대로 맛을 보게 만드는 노력은 더 필요하고 시간은 더 소요된다.
물론 의사도 돈을 벌어야 하고, 또 극단적으로 궁지에 몰리는 의사들이 어쩔 수 없이 동참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수한 ‘짤’에 가볍게 묻히는 의사가 되는 것은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바라는 것은 돌아다니는 그 수많은 의료 정보에 대한 ‘짤’의 수준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는 높아졌으면 하는 것이다. 나의 바람이 지나친 것일까? 그래도 의사라면 환자와는 좀 다른 눈높이를 가져야 할 전문가들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