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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래하는 한국 여자 Jan 31. 2021

1. 마피아의 고향 이탈리아 시실리에 사는 나

한국사람들  얼굴 못 본 지 일 년 넘음

 작년부터 코로나 때문에 일상들이 엉크러 졌다. 전국 봉쇄에 이어 부분 봉쇄까지 연이어지며 사람들의 심리는 점점 태연하게 불안해지는 것 같다.


 한국과 달리 이탈리아는 2020년 봄에 전국 봉쇄부터 시작했다. 심할 땐 산책까지 금지되었다.  인터넷으로 한국과 이탈리아의 코로나 대책이 얼마나 다르게 시행되는지 매일 확인하는 것이 일과가 되어버렸다. 아직도 내 몸엔 한국 DNA가 있어 여기서 천천히 대충대충 일처리 하는 모습이 아직도 낯설고 이상하다. 로마에 살다가 작년 봄에 마피아의 고향 시실리에 왔다. 내가 마피아 고향에 살 줄 전혀 몰랐다.


 여긴 빨간색, 오렌지색, 노란색 지역으로 나눠 코로나 확산의 심각도를 표시해 행동 제한들을 공지한다. 내가 사는 마피아의 고향 시실리는 오늘 날짜로 오렌지 지역으로 바뀌었다. 시실리는 한국 제주도처럼 귤이 많다. 겨울에도 오렌지 나무의 오렌지가 주렁주렁하다. 담장 주변 도로에 수십 개  떨어진 오렌지나 귤들을 차바퀴가 밟고 가기도 한다. 한국 여자인 나에겐 이상하다. "저것 한국에서 큰 것 5개에 만원인데.."

( 종종 관리 안되는 관공서 정원이나 휴양용 별장에서 관상용처럼 신경 못쓰는 오렌지,  레몬, 귤 나무들이 많음)


 오늘 한국 뉴스를 보면 집값이, 주식이 출렁출렁 춤을 추었다. 누군 웃고 누군 울고 할 것 같다.

피아의 고향 시실리엔 이런 뉴스는 없다. 주식 관련, 집값 관련 얘기들은 여기선 관심 밖이다. 주식해서 부동산해선 한국처럼 돈 많이 못 번다. 여긴  로또나 여러 복권들, 축구시합에 돈 걸기를 한국사람들이 주식이나 집사는 것처럼 한다. 남녀노소

... 줄을 서서 산다. 한국 사람들이 부동산, 주식 얘기할 때 이곳 마피아의 고향 시실리 사람들은 축구 경기 내기에 목에 힘줄을 세워 얘기한다. 한국사람들이 그렇게 살 듯 마피아의 고향 시실리인들도 하루하루 이렇게 시간을 보내며 산다.


 한국은 모두가 부동산 전문가들 같다. 근데 난 여기서 바로크 건물들을 본다. 어렸을 때 한국 고등학교에서 바로크 건물 양식에 대해 배우고 시험 볼 때 단순한 형식이라고 배웠다. 근데 내가 여기서 본 건물들은 르네상스 건물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단순하지도 않았다. 여전히 견고하고 세련된 조각들이 박힌 건축 외관만 봐도 뭔가에 압도당하는 것 같다.  시실리인들은 행운아들 같다. 태어나서부터 아름다운 건물들을 눈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게, 위대한 음악 작곡가의 음악을 자연스럽게 듣고 산다는 게, 시실리 카타니아 벨리니 공원 입구 주변엔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을 아직도 관공서들로 사용한다. 1970년생 한국 여자 나에겐 다 신기하다. 내가 태어만 한국 고향은 고층빌딩으로 가득해서 지금가면  방향감각도 잃는다. 내가 어렸을 때 봤던 건물들은 이제  거의 볼 수가 없다. 토박이 내 고향 친구들은 부모덕에 엄청난 부자가 된 친구들도 봤다.

마피아의 고향 시실리는 다르다.  내가 은행 대출 끼고 산 한국에 있는 아파트는 2000년 지어졌는데 그 동네에선 오래된 낡은 아파트로 여겨진다. 하지만 주변 새 아파트들에 뒤질세라 원터치 도어럭 등등... 모든 게 신속히 교체된다. 여기선 아직도 기둥모양의 옛  열쇠... 시네마 천국 영화에서 나올 법한 엔틱 열쇠들을 아직도 쓴다. 수백 년 전 건물들도 본다. 1000년 된 건물, 2000년도 넘는 유적지들도 있다. 그들 삶의 배경과 다른 날 발견한다. 난 누굴까? 여기선 그냥 한국 여자다.


 작년 코로나 터지고 유럽에서 동양 얼굴 가진 사람들 대상으로 여러 안 좋은 일이 생겨 몇 달 동안은 밖에 안 나갔고 대신 같이 사는 이탈리아 남자가 슈퍼에 갔었다. 이 이탈리아 남자의 고향이 시실리다.

 그의 퇴직 후 로마에서 시실리로 이사했다. 마피아의 고향 시실리에는 말고기를 파는 정육점이 따로 있다. 그 정육점엔 밖에서 고기 굽는 식당도 딸려있다. 난 시실리에서 말고기 먹는 것을 좋아한다. 맛이 기가 막히다. 난 술을 못한다. 여기 사람들은 포도주와 말고기를 같이 먹는다. 안 비싸다. 해서 더 맛있다. 슈퍼에선 포장용 말고기도 판다. 쇠고기에 비해 더 진한 붉은색이 돌고 부드럽다. 시실리에서 말고기를 먹을 땐 나도 모르게 행복하다. 시실리인들이라고 다 말고기를 먹는 건 아니다. 말고기 파는 정육점들과 식당들이 후진 지역 골목이라 좀 품위를 지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리를 두고 근처도 안 오고 안 먹는 사람들도 봤다. 서민의 음식이었나 보다. 근데 난 좋다. 일단 같이 사는 이탈리아 남자가 좋아하고 그의 음악 하는 친구들과 만날 땐 함께 꼭 말고기를 먹기 때문 같다. 그의 친구 중엔 60이 넘는 나이에 드럼 연주하며 큰 바이크를 타고 다니는 친구도 있다. 두 달 전 빗길 위에 바이크에서 떨어져 다쳤는데 깁스를 풀었다고 전화통화 대화를 오늘 들었다. 난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60 이후엔 더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난 시실리 카타니아에 사는데 주변 도시 팔레르모를 갔을 때 차 밖 풍경을 유심히 본 적이 있다. 고속도로를 타다가 국도를 타다가 마을길도 탔다. 안전벨트를 여기 사람들은 안 한다.  나만하는 것 같다. 난 한국 여자다. 시실리 남자에게 안전벨트 하라고 하면 " 난 시실리 남자다. 답답해서 싫다"라고 한다. 한국에선 범칙금이 얼마고 타인에게도 위험하고... 내 머리에서 또 스친다. 여기선 자주 내가 바보가 되는 느낌이다.  


 중간중간에 낮은 산들과 넓은 농장들, 골짜기들을 봤다. 예전에 농민 봉기가 있었던 시실리의 드넓은 농장의 땅들을 쳐다보면서 그 당시 힘들었던 농민들의 삶을 상상해봤다. 그들의 삶은 거의 노비 수준이었다고 한다. 한국의 동학 농학 운동이 잠깐 머리에 스쳐갔다. 그 힘든 하루하루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내일의 희망을 품고 저녁 땐 지친 몸으로 저녁식사 테이블에 앉아 무슨 얘기를 하고 무슨 무슨 음식을 먹고 무슨 노래를 기도하듯 불렀을까 차 창밖을 보며 그려봤다. 그들이 봤던 산지형과 내가 보고 있는 산지형이 얼마나 같을까 궁금해졌다. 몇 세기동안 아무일도 없었을 것 같은 산지역 농토들을 봐서 그런 것 같다. 역사는 항상 누군가는 힘을 이용하고 누군가는 그 힘에 이용되어지는 권력구조로 이어진다. 마피아의 고향 시실리도 그러했을 것이다. 한국 땅 역사가 그러했듯. 나폴리에서 스페인의   외국세력들이 빠져나갈 때 나폴리의 민병대가 치안을 위해 스스로 만들어졌고 후에 시실리도 그러했다고 한다. 그 후 세월에 흐르고 흘러 민병대가 세력이 너무 커지고 변질되다 보니.. 마피아가 되었다고 한다. 갑자기 코로나 사태에서 한국교회 모습들이 머리를 스쳤다.  


 시실리에서 태어난 같이 사는 이탈리아 남자에게 물었다. "마피아 본 적 있어요? " 그가 말했다. "초등학교 동창이 젊었을 때 마피아에 엮여 먼저 세상 떠났다"라고.

 

 시실리 어떤 관공서 담장엔 열댓 명 되는 사람들의 얼굴들이 아주 크게 그려져 있었다. 내가 물었다. "이 사람들은 뭐예요?" 시실리아인인 그가 말했다. "마피아 사건을 맡았던 법조인들 얼굴들이고 나중에 마피아에게 살해된 사람들의 얼굴이야 "


  내가 같이 사는 이 이탈리아 시실리아인은 번잡하고 거친 삶을 사는  시장거리 낡은 2층 아파트에서 태어났다고 하며 시장통 그 낡은 집, 테라짜 달린 집을 나에게 보여준 적이 세 번 있었다. 그의 눈에서 어린 시절을 읽는 듯했다.  옛 시절엔 그의 어머니는 젊고 예쁘시고 그에게 큰 힘이되는 살아있는 존재일 것이다.

 아파트 겉모습은 그대로라고 했다. 그는 이제 59세이다. 군 파일럿과 외국 주재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외교관으로 일했다. 퇴직 후 연금이 제대로 계산 안되었다고 작년부터 퇴직 한 동료들과 함께 변호사를 선임해 문제를 풀고 있다. 변호사 선임비만 나갔고 일 년 기다렸는데 안되었다고 다른 유능한 변호사 쓴다고 한다. 정신적으로 지친다고 친구들과 전화 통화하며 하소연을 서로 늘어놓기 일쑤다. 누가 진짜 마피아일까... 생각해 본다. 난 그냥 평범한 한국 여자다. 나라는 인간을 만드는 모든 게 한국에서 만들어져서 그럴까? Made in Korea. 해서 내 머릿속은 한국 사고 주판이 항상 또각또각 움직인다. 외국생활 8년 차.. 근데 나란 정체는 안 바뀌고 내속에 좋은 것이 있다면 안 바꾸고 싶다.


 시실리의 음악과 음식, 역사, 삶의 여유와 낭만에 취하면 일상에서 마피아 단어는 잊는다. 뉴스에서 마피아 관련 사건이 나오기 전까진. 어렸을 때 한국 TV로 '대부'를 중학교 때 작은 오빠와 본 기억이 난다. 영화 다 보고 너무 무섭고 슬퍼서 난 오빠에게 물었다. "경찰들이 저 사람들  다 잡으면 안 돼? " 오빠가 말했다 " 그들의 힘은 너무 세서 경찰들도 힘들어해" 난 그때 이해를 못했다.


  이탈리아 마피아들도 미국 이민 시기에 같이 미국 땅으로 넘어갔다. 내가 중학교 때 들은 작은 오빠의 말이 내가 50이 된 지금도 옳다는 것을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 통해서 봤다.


 금요일엔 동네에 장이 선다. 내가 좋아하는 요일이다. 상인들은 트럭에서 물건들 풀어서 진열해 판다. 이탈리아 온 지 2년인데 이탈리아 남자완 영어로만 대화해서 내 이탈리아 실력은 거의 이탈리아 아기 두 살 정도일 듯하다. 근데 채소와 과일은 먹고살아야 하고 가격도 물어야 하고 인사도 해야 해서 필요 단어와 문장만 외워서 동네 장에 간다. 시실리에 채소와 야채, 과일은 가격 대비 대만족이다. 일찍 가야 신선한 것들을 살 수 있어 금요일 아침은 눈 뜰 때부터 신이 난다.

이탈리아 사실리섬 카타니아 해안 (2021년 2월)

 

(시실리의  빨간 오렌지, 먹기 편하게 알맞게 달고 껍질이 얇고 씨가 안에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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