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는 연습 ③ — 느린 나, 그래서 몸으로 답을 찾기로 했다
세상은 빠르다. 근데 나는 느리다.
왜 그럴까 생각해봤다.
나는 변화에 발 빠르게 맞춰 나가는 타입이 아니다.
일단 지켜본다. 좀 더 보고, 또 보고, 확신이 들면 그제야 움직인다.
솔직히 이게 좋은 건 아닌 것 같다.
물론 생각 없이 덤비는 것보단 낫겠지.
신중한 게 나쁜 건 아니니까.
근데 문제는, 아무리 고민해도 확신이 안 들 때가 있다는 거다.
그럼 어떻게 되냐면, 그냥 아무것도 안 하게 된다.
고민만 하다가 시간만 흘러간다.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어느새 몇 년이 지나 있다.
결국 그 시간은 전부 낭비가 된다.
뭔가를 결정하지 않으면, 고민에 쏟은 시간은 의미가 없어진다.
그냥 제자리에서 맴돈 것뿐이다.
시간이 아깝다면, 고민은 짧게 하고 일단 움직여야 한다.
해보면 맞을 수도 있고, 안 맞을 수도 있다.
근데 적어도 후회는 안 남는다.
해봤으니까. 결과가 어떻든, 직접 부딪혀 봤으니까.
그래서 나도 이번엔 후회 안 남기려고 한다.
새로운 걸 해보려고 한다.
인테리어 목공을 배워볼 생각이다.
갑자기 왜 인테리어 목공이냐고?
나도 처음엔 생각도 못 한 방향이었다.
AI가 나오고 나서, 내 미래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더라.
나침반 없이 광야에 혼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뭘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IT 안에서 답을 찾으려고 했다.
웹 디자인으로 돌아갈까, 프론트엔드를 더 파볼까, 아니면 다른 기술을 배워볼까.
근데 생각하면 할수록 막막해졌다.
AI는 점점 빨라지고, 나는 점점 뒤처지는 느낌이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IT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빙빙 돌고 있는 게 아닐까?'
IT에만 있으니까 IT에서의 시야로만 세상을 보게 되더라.
여기 안에서 뭘 해야 할지만 고민하고 있었다.
밖으로 나갈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밖으로 나가는 게 무서웠는지도 모른다.
10년을 이 안에서 살았으니까.
익숙한 곳을 떠난다는 게 두려웠다.
근데 그렇게 계속 머물러 있으면 뭐가 달라질까.
똑같은 고민만 반복하다가 시간만 흘러갈 것 같았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완전히 다른 곳에서, 완전히 새로운 걸 해봐야겠다 싶었다.
그때 지인이 한마디 했다.
"한곳에만 매몰되지 마."
그 말이 묘하게 와닿았다.
내가 딱 그 상태였으니까.
IT라는 한곳에 매몰되어서 거기서만 답을 찾으려 하고 있었다.
시야를 넓혀보자 싶었다.
아예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자 싶었다.
뭘 할 수 있을까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주변에 인테리어 쪽에서 일하는 지인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솔직히 처음엔 반신반의했다.
나랑 전혀 다른 세계 같았다.
몸 쓰는 일, 현장에서 뛰는 일.
모니터 앞에만 앉아있던 나와는 너무 달랐다.
근데 이상하게,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꾸 상상이 됐다.
직접 만져보고, 직접 만들어보는 일.
그게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분이 그러더라.
"말로만 들으면 모른다. 일단 현장에 와서 직접 봐. 그리고 판단해."
솔직히 망설여졌다.
괜히 갔다가 나랑 안 맞으면 어쩌지 싶기도 했다.
근데 궁금한 게 더 컸다.
직접 봐야 알 것 같았다.
그래서 갔다.
이틀 동안 현장을 따라다니면서 일하는 걸 지켜봤다.
첫인상은 솔직히 '힘들겠다'였다.
인테리어도 결국 노가다라고들 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무겁고, 먼지 나고, 하루 종일 서서 움직여야 했다.
근데 막상 보니까, 단순히 힘만 쓰는 일이 아니더라.
뭔가를 만들어가는 일이었다.
빈 공간에 뼈대를 세우고, 벽을 만들고, 형태가 잡혀가는 걸 봤다.
아무것도 없던 곳에 공간이 생겨나는 거다.
그걸 보는데 마음속에서 뭔가 끓어오르는 게 있었다.
이 느낌, 어디서 많이 느껴봤다 싶었다.
생각해보니 IT에 있을 때도 그랬다.
홈페이지를 멋지게 만들고 싶다는 욕망.
뭔가를 내 손으로 창조하고 싶다는 그 느낌.
그때 그 감정이 인테리어를 보면서 다시 올라왔다.
다른 건 하나 있었다.
모니터 안에서 만들던 걸, 이젠 현실에서 만드는 거다.
손으로 직접,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걸 만드는 거다.
그게 묘하게 끌렸다.
힘쓰는 거 빼면, 일이 꽤 재밌어 보였다.
묵묵히 자기 일 해나가는 사람들 모습도 멋있었다.
말없이 집중하고, 하나씩 완성해가고.
그 과정을 보면서 생각했다.
나도 저렇게 해보고 싶다고.
현장을 다녀온 뒤로 며칠을 고민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배워보기로.
물론 현실은 만만치 않다.
입문도 어렵고, 일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다.
때도 잘 맞아야 하고, 좋은 반장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
경력 없으면 현장에서 잘 받아주지도 않는다더라.
이것저것 따져야 할 조건이 많다.
근데 이런 거 다 따지면 뭘 하겠나.
시작도 못 한다.
생각해보면, IT에 남아있어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어차피 어디에 있든 쉬운 길은 없다.
그럴 거면 차라리 새로운 데서 새로 시작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겠다고 마음먹었으면 일단 가보는 거다.
끝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나도 모른다.
잘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안 되면 그때 가서 또 다른 길을 찾으면 된다.
그러니까 일단 달려본다.
끝에 가면 답이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