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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솔 Feb 19. 2024

겨울 냉이

 재작년 가을 10월 즈음, 따뜻한 날씨 속에 냉이 캐던 날을 떠올렸다. 이전에 겪어온 10월과는 다른, 과거보다 더 더운 10월의 따뜻함을 불안함으로 치환하던 습관과 냉이를 손질하면서 느꼈던 행복감을 떠올린다. 냉이는 뿌리부터 이파리까지 모든 곳이 아름답구나, 손질을 여러 번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그만큼 냉이를 오랫동안 볼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니. 그렇게 냉이의 아름다움을 곱씹었다. 그리고 물을 끓이고, 된장을 넣고, 냉이를 넣었다. 맛있었고 뿌듯했다.


 올해 초 달력을 받았다. 손 그림이 그려져 있고, 매달 어떤 절기가 있는지 적혀 있는. 2월의 달력에는 냉이 그림과 ‘2월 4일 입춘 - 멀리서 봄, 봄’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원래 2월 즈음에 땅에서 냉이가 나오는구나, 지금 가을과 겨울이 따뜻해져서 내가 10월에 냉이를 캘 수 있었던 걸까, 생각했다. 그리고 다가오는 2월을 바라보면서, 친구들과 냉이 함께 캐고 요리해먹고 싶다는 상상을 떠올렸다.


 1월의 한가운데, 모카네 집에 놀러갔다. 해가 조금씩 질 무렵이었는데, 모카가 냉이를 캐러 갈 거냐고 물었다. 금예 할머니네 밭에 냉이가 많이 있다고, 어쩌면 이미 다 캐서 조금 있을 수는 있다고. 벌써 냉이가 나오는구나, 속으로 생각하며 좋다고 답했다. 흙이 묻은 낡은 장화를 신고 냉이가 있는 밭으로 향했다.


 모카네집에서 냉이가 있는 밭으로 가는 길에는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원래 도로를 공사 중인 곳이었지만, 우리가 아무렇게나 건너다녔던 길이었는데. 이제는 횡단보도를 통해서만, 초록불이 켜졌을 때만 제한적으로 갈 수 있는, 아주 많은 자동차들이 쌩쌩달리는 도로가 되어 있었다. 이제 고양이들도, 이 길을 자유롭게 다니지 못하겠어요, 우리는 말하며 슬퍼했다. 동시에 우리 도로가 생기기 전에, 이 길을 지나다니며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말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가지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듯 하지만, 새롭게 붉은빛 가지가 자라나고 있는 매실나무들 그 근처로 냉이들이 있었다. 사실, 많은 풀들 중에 냉이를 찾는 게 조금 어려웠다. 다른 풀을 캤더니 모카가 그건 냉이가 아니라 했다. 보랏빛이 더욱 띈, 캤을 때 냉이 냄새가 나는 풀이 냉이라 했다. 보다 유심히 보랏빛 냉이를 찾았다.


 그러나 냉이를 많이 캐는 건 처음부터 목적이 아니었던 것 같다. 한 끼니 먹을 만큼의 냉이만을 캐고 돌아왔는데, 그 순간 바라본 노을과 땅 가까이 쪼그려 앉아있는 친구를 바라보고 있는 게, 이렇게 같이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 그저 좋았다. 냉이는 역시 아름다웠고 말이다.


 “여기 도로가 생기고, 이 땅도 얼마 안 가서 뜯길 지도 몰라요. 아파트 짓는다고 하더라고요.” 모카가 말했다. 도로가 생기기 전에 우리 그래도 추억을 잘 쌓았다, 하면서 행복을 다잡았는데 이 땅과도 곧 그렇게 이별을 맞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우리가 캔 냉이는 겨울 냉이라고, 2월 봄 냉이와는 또 다른 냉이라고 다른 분이 알려주었다. 알고 보면, 아파트를 짓겠다는 소문도 뜬구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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