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으로부터 도망치는 거예요, 내 수치심으로부터

by 준지


내가 요즘 한가하긴 한가 보다.

시간이 남아돌 때나 들던 생각이,
요즘은 시간이 없는데도 자꾸 마음을 잠식한다.


앞으로 가야 하는데 자꾸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과거에 발목이 잡혀 눈을 똑바로 뜨고 현재를 바라보지 못한다.



이 모든 생각의 시발점은 엔드라이브다.
몇 년 전 오늘의 사진을 감상하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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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보면 그 시절로 빨려 들어갈 걸 알면서도
바쁜 와중에 눌러봤다가 또 감상에 젖어든다.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후회되는 결정과 발언들이 만화의 말풍선처럼 떠오른다.


“그날이 마지막일 줄 알았다면 더 예쁜 모습으로 있을 걸.
지금 나는 볼살이 많이 빠졌는데, 그 친구는 나를 평생 통통한 볼따구로 기억하겠지.”


“그렇게 주눅 들면서 나올 거였다면 부당함에 대해 크게 소리치고 나올걸.
그랬다면 나보다 더 어린 친구들이 왔을 때 같은 상처를 받지 않았을 텐데.”


“좀 더 밝게 인사하고 나올걸. 집에 돌아왔을 때 생명이 다할 줄 알았다면

또 볼 것처럼 대충 인사하지 않았을 텐데.”



그 시절을 돌이켜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날 만큼 소중한 시간들과,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시간에 역방향이 없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탱고 춤을 춘다.


하지만 후회만 하고 있기엔 아직 살아갈 날이 너무 많이 남아 있다(물론 정확한 수명은 모르지만).


이 밑도 끝도 없이 깊은 슬픔 끝에는 어떤 깨달음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수많은 사진과 추억들이
내게 가르쳐준 교훈은 이것이다.



“극단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


슬프기도 하지만 조금 웃기기도 한 사실이 있다.


친오빠의 체격이
아주 성실하게도 점점 부풀어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분명 72kg이었는데
지금은 112kg이 되었다.



최근 다이어트를 시작한 오빠는
<체중 감량에 가장 효과적인 꿀팁>을 알려주었다.


그건 바로
“애초에 살이 너무 찌지 않는 것”이다.


살이 너무 쪄버려서 10kg을 감량했는데도
아직 30kg을 더 빼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싶다면
애초에 살이 찌지 말라고.



턱선은 무너졌지만
오빠의 말에는 묘하게 날카로운 진실이 있다.


“공부 좀 더 열심히 할걸.”
“그때 그 사람을 붙잡을 걸.”

이런 후회는 누구나 한 번쯤 하지 않을까.


후회 없는 인생을 사는 건 어렵겠지만

적어도 극단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후회의 크기는 조금 줄어든다는 것.


수능에서 1~2문제 차이로 대학 간판이 달라졌다면 후회가 남겠지만,
극단적으로 공부하지 않았다면 후회하는 것조차 우스울 수 있다.


단 한 번의 말실수로 연인이 떠날 수도 있겠지만,

다시 붙잡고 싶다면 그 한 번의 실수 이전에 평소에 잘해줬어야 한다.


극단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친 행동은

다시 반대로 돌아오기까지 생각보다 큰 힘이 든다.



옛 사진들을 보면 정말 부끄러운 스타일링도 있고 부끄러운 언행도 있었다.

사진만 봐도 느껴진다.

내 얼굴에 그대로 남아 있는 미숙함과 감정적인 행동들이.

그래도 그 사진들을 지우지는 않았다.


상처 주고 상처받은 기억이 있지만 삭제해야 할 만큼 가슴을 찌르진 않는다.

너무 부끄러워서 나 자신에게서 도망치고 싶던 때도 있었다.

그럴 때 나를 그대로 방치해 둔 것을 후회되기도 한다.


남들이 나를 무시해도
나는 나를 믿어줬어야 했는데.


그래도 끝까지 가진 않았다.


도망치고 싶다고 손목을 긋지도 않았고 가족과 절연하지도 않았다.


슬플 때 악동뮤지션 노래 듣고, 기쁠 때 맛있는 거 시켜 먹고

미워도 나 자신을 감싸 안았기에,

지금 나는 부끄러운 옛 사진들을 가족들과 함께 보며 울고 웃을 수 있다.


사실 최근에도 또 하나 부끄러운 행동을 했다.

내 아픈 부분을 건드릴 것 같아서 내가 먼저 상대를 아프게 했다.

몇 시간만 지나도 후회할 행동이었는데 그때는 그렇게 해버렸다.


오래된 친구다.

다시 우리 사이가 회복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회복되지 않는다면

몇 년 뒤 또 엔드라이브 알림에 뜨는 우리의 사진들을 보게 되겠지.

그리고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또 후회하면서 마음속으로 땅굴을 파고 있을 것 같다.


이번 실수로 우리가 멀어져서 한참 뒤에 돌이켜보면 아마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참 소중한 인연이었다고.


그 사이에

노래 몇백 곡이 유행하고,

천만 영화 몇 편이 더 나오고,

시간은 또 아무렇지 않게 흘러갈 것이다.


내가 이렇게 브런치에 후회와 기쁨을 뒤섞어 기록해 두고 있다는 걸

그 친구는 아마 모를 것이다.


그래도 언젠가 아주 심심한 날에 naver 대신 daum을 켜고,
‘인연’이나 ‘사진’ 같은 단어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이 글을 보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아주 먼 훗날,

그때의 나를 조금은 이해해 주면서

다시 한번 웃으며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동안 극단적으로 치닫지 않고 인생을 잘 살아보다가 다시 만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