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이 무너졌을 때만 흐를 수 있는 눈물

by 준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벌써 4년이 지났구나, 하는 신기함이 있고
앞으로 4+n년이구나, 하는 두려움도 있다.


출판사에서 일하면 매주 기획안과 작가에게 보낼 메일을 작성해야 하는데,

나는 그 글이 반드시 내 가슴에서 나와야 한다고 믿었다.


내가 이 지점을 좋아해서 이 사람의 글을 책으로 만들고 싶고,

그래서 이렇게 제안하고, 이렇게 감사하다고.


그 마음이 닿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나만의 아날로그 원칙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메일은 ChatGPT에게 부탁하고 있다.

특히 고료처럼 정확해야 하고, 한눈에 이해되어야 하는 문장은 꼭 검수를 맡긴다.

간단한 문장 교정에 유료 버전까지 필요할까 싶어 늘 체험판만 사용했는데,
어느 날은 이미지도 만들고, 제안서에 넣을 색 조합에 대한 조언까지 듣다 보니 슬슬 유료 계정이 필요해졌다.


은근히 구독비가 아까웠던 나는

엄마의 유료 계정을 한 달만 공유받기로 했다.


엿보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너무 흥미로운 채팅 기록에 그간 엄마의 대화 몇 개를 읽어버렸다.


내 생일에 꽃게살 파스타를 먹으러 가자더니, 챗지피티가 제안한 메뉴였구나..


화면 캡처 2026-02-27 113233.png
화면 캡처 2026-02-27 113329.png


흑진주 팩 사달라더니 젊어 보이고 싶은 욕망이 한번 왔었구나 싶고..


그만 보고, 작가에게 보낼 메일을 써야지 싶던 순간

엄마의 새 채팅방이 실시간으로 열렸다.


채팅방의 제목은

'자랑스러운 딸의 정체성'


화면 캡처 2026-02-27 113513.png



"나는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딸이었는데, 4년 전 남편 남편이 죽고 경제적으로 커리어적으로 모두 무너지면서 엄마에게는 아픈 손가락이 되어버린 것 같아 가슴이 아파. 이 생각을 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몇 주 전 설에 할머니를 만나고 엄마가 유난히 슬퍼 보였던 이유가 이랬구나.


엄마의 슬픔을 전혀 몰랐던 건 아니다.

다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나 역시 엄마를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회사 일이 많다며

혼자 삼 인분은 해내는 대리인 척

급하게 서울로 올라왔으니까.


엄마도 할머니에게 그렇게 열심히 사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서 하루 일찍 떠난 걸까?

나는 엄마에게 어떤 위로가 될 수 있을까..


화면 캡처 2026-02-27 114111.png


그 눈물은 약해서 흐르는 눈물이 아니야.

그건 정체성이 무너졌을 때만 흐를 수 있는 눈물이야.

"자랑스러운 딸"이라는 자리는

엄마에게서 받은 평가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연교가 스스로를 지탱하던 기둥이었어.

그 기둥이

남편의 죽음과 함께

경제와 커리어, 역할과 리듬까지 한꺼번에 무너졌으니

그 자리에 서 있던 '딸로서의 나'도 같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지.

그래서 이건

단순히 엄마가 나를 어떻게 볼까의 문제가 아니야.

**"나는 이제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함께 울리고 있는 거야.



챗지피티가 친딸보다 낫구나.


엄마가 AI와 이런 대화를 나누며 마음의 안정을 얻고 있다면 기꺼이 기쁘다.


엄마는 인공지능에게 위로를 받았고,

나는 그런 엄마를 인공지능을 통해 이해했다.


4년 전만 해도 이런 시대가 올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는데,

아빠가 있었다면 얼마나 재밌게 ChatGPT를 사용했을지.


빠르게 변하는 매일매일에

순간 멈춰서 부모님을 생각해 보는 날.


shutterstock_2688319677.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