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따뜻했던 설 연휴가 지나갔다.
예전에는 아빠와 만두를 빚어 떡국에 동동 띄워 먹었는데, 이제는 아빠도, 만두도, 떡국도 식탁 위에 없다. 고모의 당뇨가 심해져 떡국은 피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2월 19일.
다들 어떤 설을 보냈을지 괜히 궁금해지는 날이다.
나의 이번 설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젊은 DNA의 슬픔과 그냥 사랑해줘’였다.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날 내가 아빠 곁을 떠나지 않고 CPR을 했더라도, 아빠의 시간은 몇 달 더 길어졌을 뿐이었을 거라는 사실을.
친가쪽은 다들 심혈관 질환을 앓고 있다. 착하고 죄짓고 살지않은 것과 관계없다.
그냥 타고나게 마음이 여리고, 심장이 약한 것이다.
할아버지는 아빠가 떠난 지난 5년을 통째로 잊어버렸다. 왜 아빠랑 같이 오지 않았냐는 질문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 외의 일들은 또렷하게 기억하면서.
고모도 몰라보게 홀쭉해진 얼굴로 혼자 설에 내려온 나를 반겨주었다.
그냥 얼른 인사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슬픔만이 잠식한 더는 건강한 사람이 없는 친가에 오래 있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이제 아픈 사람들 곁에 오래 서 있을 힘이 없다고 했다. 아빠라는 연결고리도 사라졌으니, 시댁에 갈 일은 없을 거라고.
다음 날은 외할머니 댁에 갔다.
신기하게도 아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외가의 대화는 늘 돈과 성공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삶을 성과로 증명하는 사람들. 열심히 살면 더 나은 자리로 올라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명절이면 더 궁금해지곤 한다.
마음이 여리고 심장이 약했던 아빠가, 성취를 신뢰하는 엄마와 어떻게 사랑에 빠졌을까.
엄마는 아빠의 별을 사랑하는 모습이 좋았다고 했다.
현실은 잘 못 봤지만 하늘을 사랑하는 모습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랑을 시작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미워하게 됐지만
어찌됐건 엄마 팀은 냉철한 부분이 있다.
외가에서는 이혼을 하거나, 아이를 못 낳는 일은 없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아빠 팀은 다르다.
파산을 했어도, 이혼을 했어도, 아픔뿐인 몸을 물려줬어도 .. 여전히 가족이다. 조건 없이, 조금은 느슨하게.
너무나 다른 두 집안에서 태어난 나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 친척들의 인생을 가만히 지켜본다.
겉으로 보이는 결과만 놓고 본다면, 지금은 엄마 쪽 친척들이 더 안정적으로 보인다. 건강하고, 단단하고, 세속적인 기준에 잘 맞는다.
약한 심장과 강한 욕망을 함께 물려받은 나는 앞으로 어떤 가치에 더 가까워질지 아직 모른다.
더 살아보면, 노년에 내가 아빠의 얼굴을 닮을지 엄마의 얼굴을 닮을지도 알게 되지 않을까.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는 가족들을 계속 사랑하고 싶다.
한평생 아파서 모두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들었던 친할아버지도,
승진을 위해 오랫동안 얼굴을 보이지 않았던 이모부도.
함부로 저렇게 살지 않겠다고, 나는 다르다고 말하지 않겠다.
나는 그들의 일부이기도 하니까.
양귀자의 『모순』에 이런 말이 있다.
인생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하는 무엇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어쩌면 나는 지금, 탐구의 초입에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끈질기게 묻는 과정 속에서,
서로 다른 얼굴을 가진 나의 가족들을 끝까지 사랑해 보고 싶다.
떡국은 못 먹었지만 배부르게 느낀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