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는 인류의 유대를 통해 온 우주를 보살피는 위대한 영혼의 미덕이다. -환대, 호밀밭(2022) 재인용
늦봄 햇살이 뜨겁게 느껴지던 날이었습니다. 저는 제주도에 낯선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지도를 보며 더듬더듬 찾아간 식당은 만원이었고 밖에는 대기표를 든 사람들이 긴 줄을 서 있었습니다.
한 시간은 족히 걸리겠는데.
하릴없이 다른 식당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한적한 시골 마을이라 한참을 걸어도 카페만 드문드문 보일 뿐, 문 열린 식당은 찾기 어려웠습니다. 머리 위로 점점 더 뜨거워지는 햇살을 느끼며 천천히 걸었고 돌담 넘어 밭에는 귤이 익다 못해 배를 열고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그래, 쟤도 덥겠지.
언덕을 넘고 골목을 지나 발견한 작은 식당엔 늘어진 난닝구 차림의 어르신이 느긋하게 손님 받을 채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들어가도 되는지 묻자, 주인아저씨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시는데 주방에서 ‘횟감이 없는데’라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안쪽에서 밥을 짓고 있던 주인아주머니가 이따 생선이 들어올 때까지는 손님을 받을 수 없다면서 미간에 주름을 짓고 주인아저씨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여기도 안 되나, 이제 어디로 가지?
식사는 고사하고 그저 물 한 잔과 뜨거워진 머리 위를 덮을 지붕이 필요했습니다.
아주머니의 고민하는 미간을 보고 있자니 그분이 제 행불행을 쥐고 있는 심판관 같았습니다.
주인아저씨는 쭈뼛거리는 저를 데리고 식탁에 앉히고는 주방으로 가 가게에 남은 모든 생선을 그러모은 것 같은 회덮밥을 내어 오셨습니다. 주인아주머니는 손님 밥에 올려진 횟감이 성에 차지 않으셨는지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반찬을 내어주셨습니다.
두 분의 정성을 생각해서 싸우듯이 밥을 먹었으나 역부족이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도 1인분이 남은 모양새였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다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주인아주머니는 주름진 얼굴을 펴고 또 와요,라고, 웃으며 화답하셨습니다.
열기가 식은 머리 위로 다시 한낮의 햇살을 받으며 식당을 나왔습니다. 그때 떠오른 단어가 있었습니다. 바로 ‘환대’입니다.
이 감동을 글로 남겨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마저 들었습니다. 지친 다리를 쉬고 시원한 물 한 잔과 따뜻한 밥을 대접받은 그 순간을 말이죠.
과연 나는 나를 찾아온 사람에게 기꺼이 물과 음식을 내어주었던가.
내가 받은 환대, 그리고 다른 이에게 돌려줘야 할 환대. 그 경험은 저를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비가 내리면 우산을 쓰고 추운 날엔 두꺼운 외투를 입고 진료실로 찾아왔습니다.
이곳으로 찾아오는 사람은 어떤 마음일지, 고통이 있어 찾는 길이니 산뜻한 기분은 아니겠지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지. 과연 도움이 될까?’
문고리를 잡고 고민하던 환자가 문턱을 넘습니다.
헐레벌떡 뛰어온 것인지 불안감 때문인지 모를 가쁜 숨을 고르는 짧은 시간 동안 제 앞에 도착한 사람이 걸어온 길을 상상해 봅니다.
목에 꽃목걸이를 걸어주는 것만이 환대는 아닐 겁니다. 뜨거운 햇살과 차가운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 도착했다는 느낌.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과 단정한 공간. 그걸 함께할 사람.
그날의 진료가 만족스러울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면 그것 자체로 치료가 시작된 것이라 믿습니다.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아쉽기도 합니다. 물론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을 쫒다 마음에 품은 꽃이 시들어 버리기 일쑤이지만요.
환대 ’hospitality’의 어원인 라틴어 ‘hospes’는 주인과 손님, 모두를 칭한다고 합니다.
손님이 주인이 되고 주인이 손님이 되는 곳은 어떤 풍경일까요?
그곳에선 자기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을 남에게 내어주는 상상을 해봅니다. 손님 중 누군가는 요리를, 누군가는 음악을 연주해 모두를 기쁘게 하는 것이죠.
내가 가진 제일 좋은 것...
모 방송사에서 제작한 세계여행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유럽 십여 개국을 방문했고 각 나라 문화에 조예가 있는 작가, 학자, 예술가와 함께 떠난 여행기였습니다.
터키 편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촬영에 동행한 사람은 여행 작가였습니다. 고대문명을 잉태했던 그 강에서 아직도 뗏목으로 만든 배를 타고 물고기를 낚으며 살아가는 모습,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흥정이 끝날 때까지 맞잡은 손을 아래위로 흔드는 오래된 삶의 방식을 생생하게 보여줬습니다.
가는 곳마다 흥미진진했습니다. 제작진이 터키의 구석구석 재밌는 이야기를 찾아다닌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제 눈길을 끈 건 여행 작가가 보여준 침투력이었습니다. 마지막 영상은 어느새 스며든 그를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이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고 기차를 만들어 도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는 말 그대로 핵인싸였습니다. 그의 인싸력은 극강의 외향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태도는 잔잔한 호수처럼 부드러웠지만 열려 있었고 타인을 무장해제 시켰습니다.
각 나라의 진행자는 각양각색이었고 여행의 전체 분위기를 좌우했습니다. 어떤 이는 술김에 잠시 흥이 올라 현지인에게 말을 거는 것 외엔 줄곧 과묵했고 또 다른 이는 해박한 지식을 가졌지만 현지인이 열띤 표정으로 책에 쓰여 있지 않은 역사를 말할 때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다큐를 보고 나서 터키 편 진행자처럼 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손님이자 주인인 사람이 머무는 곳은 언제나 축제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진료실로 돌아와 이야기를 마치려 합니다.
지치고 힘들 때 ‘모자를 벗듯 가장 먼저 벗어던지는 것이 공감’이라는 글귀를 책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공감이 들어갈 자리에 환대, 보살핌이라고 바꿔 쓰고 싶습니다.
‘환대는 인류의 유대를 통해 온 우주를 보살피는 위대한 영혼의 미덕이다.‘ 그런데 영혼이 위대하지 않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땀에 전 모자를 훌렁 벗고 싶은 충동이 들 때마다 매번 여행을 갈 수는 없으니 이런 상상을 해보려 합니다. 책상을 두고 마주 앉은 사람이 저일 수도 있다는 상상 말이죠.
제가 아플 때 찾아갔던 의사 중 몇 분은 저보다 더 아파 보였습니다. 병원 소개 영상에서 본 사람과 닮긴 했는데 십수 년은 더 늙어 보였고 흐린 눈으로 모니터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다음번 만남에서는 또 달라 보였습니다. 더 젊어 보였고 더 친절했습니다. 아마 이전의 만남은 그 사람이 지치고 배고플 때였나 봅니다. 돌이켜보면 저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낯선 곳에서 제가 경험했던, 몸과 마음이 채워졌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의사도 사람인지라 허기진 상태에서는 어떤 일도 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남들과 나눌 것이 있다면 두 발로 걸어 주머니에 수집한 작은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