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산되지 않는 시간의 가치

I후불제 인생I

by 작가 기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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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돈으로 계산되지만, 삶은 돈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배운 것은 시간 계산법이다. 몇 시에 시작해 몇 시에 끝나는지, 얼마나 투자하면 무엇을 얻는지, 시간의 중요성은 늘 결과로 환산되었다. 공부한 시간은 성적이 되었고, 일한 시간은 급여가 되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믿게 된 것은 “시간은 돈이다”라는 생활 관념이었다.


나 역시 삶은 비슷했다. 나는 시간을 쓸 때마다 결과를 요구했다. 남는 것이 없는 시간은 실패처럼 느껴졌다. 하루를 쪼개어 쓰고, 의미 없는 공백은 견디지를 못했다. 멍하니 흘려보낸 시간은 실패처럼 느껴졌다. 남들보다 뒤처질까봐, 결과로 환산되지 않는 시간은 최대한 피하며 살고자 했다. 내 삶을 숫자로 계산해야 했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쪽을 택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런 날들이 계속해서 찾아왔다. 아무런 성과를 남기지 못한 날들, 열심히 노력했지만 수치로 남지 않는 순간들. 내가 고민했던 생각과 시간을 허비했고, 이유 없이 허탈감에 빠져 있었다. 숱한 고민 속에서 찾아냈던 결과들을 도둑 맞기도 했다. 그 일들을 경험했더니, 모든 시간을 수익으로 환산하면, 삶은 적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인생은 시간당 수익으로 계산하는 게 아니라, 경험을 축적하는 과정이었다.


숫자로 환산되지 않은 시간이 오히려 삶의 밀도를 결정한다. 성과로 기록되지 않은 시간들이 내 삶을 지탱하는 그릇이었다. 내겐 부끄럽지 않은 좋은 생활 습관이 있다. 항상 읽을 책을 가방에 넣고 다니거나, 작은 수첩에 그때그때의 사건들을 메모하는 일이다. 누군가와 대화할 때도, 강연을 들을 때도, 책을 읽을 때도 미처 내가 생각하지 못했거나, 눈에 띄는 사건들이 있으면 수첩에 기록한다.


어느 날, 책장 위에 쌓아둔 작은 수첩들을 들춰보았다. 약 25년 간 기록된 내 삶의 흔적이었다. 거기에는 잡동사니 같은 생각과 고민, 순간적인 발상들이 적혀 있었다.


“뚝배기는 불꽃 속에서 끓는다

파랑, 노랑, 주황의 삼층 가스불이

난동을 부리는 석쇠 위에

투박한 모양의 뚝배기

질그릇 안에서는

대지를 뚫고 솟아오르던

온천수들

자기 밖에 모르던 세상을

뒤집어 놓는다”


출장을 가든, 여행을 가든 지하철이나 버스에든, 또는 길거리에서 메모해둔 기록물이 쌓여 수십 년의 기록물을 남겨 놓았다. 남들은 쉬거나 잠들어 있던 시간에, 노동도 아니고 휴식도 아닌 기록을 남겼다. 그 이유는 그냥 소비하는 시간이 아까워, 책이라도 읽고 생각이라도 정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돈으로 환산되지 않았던 메모의 기록들이 인생의 본전이 되었다.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작가라는 세계, 시인이라는 삶의 그릇은 돈으로 환산되지 않은 메모의 효과였다. 그 수첩들은 돈이 되지 않았지만, 나를 잃지 않게 해준 증거였다.


그때부터 나는 시간을 다르게 본다. 굳이 모든 시간이 성과로, 돈으로 바뀔 필요가 없다는 걸. 어떤 시간은 소모적인 것 같아도, 단지 나를 위해 존재한다. 이 시간이 무엇으로 바뀌느냐는 것 대신, 나와 어떻게 동행하고 있는가를 묻고 싶다.



※ 작가 소개: 기안장_브런치 작가, 2025년 항공문학상 우수상, 2024년 원주신문 올해의 오피니언상, 밀리의서재 올해의 밀리로드 Top 50, 문장21 시부문 신인문학상, 문학광장 수필부문 신인작가상 수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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