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겨울방학. 밤10시. 나는 채점이 끝난 중학교 2학년 과학 문제집을 들고 있고, 떠종이는 옆에서 눈치를 보며 앉아 있다. 떠종이가 틀린 문제는 질소의 끓는점/녹는점 문제와, 밀도 차이에 관한 문제다.
엄마: 이떠종. 너 겨울방학 동안 엄마가 사준 문제집 제대로 푼 거 맞아? 이거 봐. 질소 끓는점이 영하 196도라고 문제에 딱 적혀 있는데, 영하 197도면 질소 상태가 뭐야
떠종: 기체?
엄마: 끊는 점에 아직 도착을 안 한 상태니까 '액체'지.
떠종: 아 진짜? 그럼 이 방의 온도는 끓는점을 한참 넘었으니까 질소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거야?
엄마: 뭐, 그렇지. 온도가 훨씬 높으니까. 근데 우주 진공은 지금 영하 270도야. 말도 안되게 차갑지?
떠종: 어? 그러면 진공은 텅 빈 게 아니라, 차가운 진공 얼음 같은 걸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아.
먼지 한 톨 없으니까 엄청나게 투명할 거 아냐. 그래서 저 수억 광년 떨어진 별빛도 방해 받지 않고 진공을 뚫고 우리 눈까지 달려오는 거구나
엄마: 진공 얼음? 투명해서 다 보인다고?
떠종: 응. 투명하다는 건 숨길 게 없다는 뜻이기도 해. 말하자면 투명하고 단단한 얼음 빙판 경기장이지. 어떤 속임수도 안 통해. 누가 밀도가 낮은지 높은지, 그대로 다 드러나거든. 그래서 이건 아주 냉정한 ‘얼음 심판관’ 같은 거야.
엄마: 얼음 심판관은 또 뭐야? 우주에서 밀도 대결을 한다고? 네가 틀린 과학문제 같은 거네. 물 vs 소금물 vs 단추 vs 바둑알의 밀도 대결!
떠종: 맞아. 이 -270도 우주 진공 심판관은 아주 투명하고 공정해. 갈릴레이가 했던 ‘쇠구슬과 깃털’실험 기억나? 우리 지구에선 공기라는 방해꾼 때문에 깃털이 매번 지지만, 이 진공 빙판 경기장에서는 공기분자 같은 방해꾼들이 일단 다 치워졌잖아. 그 위에서는 쇠구슬이든 깃털이든 똑같은 속도로 같이 미끄러져 동시에 ‘탁!’ 하고 도착하는 거지.
엄마: 그럴 듯 한데... 그래도 뭔 차이는 있어야 할 거 아냐. 우리가 보는 건 다 다르잖아. 너도 이렇게 통통하고 웃기게 생겼는데, 우주 경기장에 나오면 다 똑같은 선수 취급 받는 거야?
떠종: 그건 분명 아닐꺼야. 아까 밀도 문제 풀 때 단추가 수상했어. 단추는 구멍의 크기를 조절하며 승부를 조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 보였어. 우주에서는 도넛을 닮은 블랙홀 있잖아. 게다가 빛조차 빨아들여서 나올 수 없게 셋팅 되어 있어서 빛으로 볼 수도 없어. 생각할 수록 수상쩍단 말이지. 이 녀석이 공정하게 경기에 임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서 갑자기 답답해진다. 엄마 아는 것 좀 없어?
엄마: 그런데 안 보인다고 무작정 의심부터 해선 곤란해. 경기장 한 가운데서 누구보다 열심히 경기에 임하고 있을 수도 있지. 블랙홀은 우주에서 가장 단순한 친구야.
떠종: 잠깐 답답해서 시원한 바람 좀 쐬고 올게.
엄마: 어딜 가려고? 이 구멍 뚫린 단추 같은 녀석 좀 보게!
☁팩트체크!
- 우주 평균 온도 ≈ -270℃ (우주배경복사 2.7K)
- 진공은 차갑지만, 얼어붙은 고체가 아니다. 마찰이 최소인 것을 상징하여 빙판,얼음으로 비유함.
- 블랙홀이 구멍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구멍이 아니다. 다만 시공간이 심하게 휘어진 영역일 뿐이다. 떠종이 생각으로는 속임수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우주에는 그런 편법은 없다. 블랙홀은 가장 정직하게 중력을 따르는 존재다.
엔딩크레딧.
우리가 눈으로 보기 전부터, 우주의 언어인 수학은 그곳에 반드시 무언가 있어야만 한다고 속삭이고 있었습니다. 수학이 예언하고, 중력이 끝내 증명해 낸 존재!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실재하는 가장 단순하고 정직한 존재의 이름 - 블랙홀 입니다.
다음 화에서는 현실의 블랙홀이 등장합니다. 휘어진 시공간 속에서 블랙홀이 남긴 극도로 단순한 본질, 그 입체적인 울림을 만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