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난 순간 다시 시작되는 도약, 삶의 터널링
나의 '정상상태'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날
3년 전 전자의 정상상태에 매료되었던 그날의 기록을 다시 꺼내본다. 2022년 3월 20일, 무안군 오승우 미술관 으로 가는 차안에서 “양자역학이 뭐냐?” 는 내 질문에 남편은 원자의 *정상상태를 설명했고 그 수상한 전자의 거동에 대해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전자가 핵으로 왜 안떨어져? 빙빙 돌다보면 떨어져야………정상상태? 불연속? 그건 또 뭔 소리야?”
정상상태(Stationary State)란, 전자가 에너지를 방출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에너지 준위를 말하며, 그중 에너지가 가장 낮아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가장 안정적인 상태를 바닥상태(Ground State)라고 한다.
침묵의 통로(축적의 시간)
그날의 질문은 평온했던 나의 세계에 균열을 내는 시작이었다. 이 사건은 평생 잊지 못할 행운인 동시에, 내 삶의 궤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그 해 9월 'The Great Escape' 공연을 끝으로, 나에게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는 넬(NELL)의 콘서트장 대신 책상 앞의 정적을 선택했다. 그것은 이전의 삶의 방식을 초기화하고 설정값을 다시 맞추려는 여정의 시작이었다.
외부 전원 없이도 스스로 작동하는 나만의 내부에너지를 축적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매끄러운 일상의 익숙함에 길들여져 새로움을 느끼지 못하던 정체된 상태로부터 감행한 자발적인 '탈출(Escape)'이었다. 이 3년이라는 시간은, 더 깊은 층위에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했던 침묵의 통로가 되어주었다.
음악을, 그리고 이 세계를 더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해 기꺼이 멈춰 서야 했던 시간. 유예했던 시간은 더 단단하게 응축되고 훗날 더 높은 밀도와 선명한 감동이 되어 돌아올 것임을 나는 확신한다. 세상과 나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과정은, 가장 순수한 본질을 발견해가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유령의 통로
2025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존 클라크(John Clarke)는 전기회로에서 놀라운 현상을 발견했다. 바로 '거시적 양자 터널링(MQT)'이다. 고전 역학의 세계에서 에너지가 부족한 입자는 결코 장벽을 넘을 수 없다. 하지만 양자 역학의 세계에서는 기묘한 반전이 일어난다. 입자가 마치 장벽에 구멍을 낸 듯 반대편으로 스며 나오는 '양자 터널링' 현상이다. 2025년 노벨 물리학상을 거머쥔 존 클라크는 이 유령 같은 현상이 미시 세계를 넘어 거시적인 전기회로에서도 일어날 수 있음을 입증해 보였다.
조셉슨 접합 : 불확실성을 정보로 바꾸는 힘
양자 터널링은 본래 자연계의 오래된 문법이다. 불안정한 원자핵이 에너지를 방출하며 스스로 모습을 바꾸는 '방사성 붕괴(핵 붕괴)'가 대표적인 예다. 이때 입자는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내며 일방적으로 담장을 탈출하고, 원소 자체가 변하는 '핵 변환'을 겪는다. 방사성 붕괴가 자연의 자발적이고 파괴적인 터널링이라면, '조셉슨 접합(Josephson Junction)'은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조셉슨 접합은 두 초전도체 사이에 얇은 절연막 장벽을 세운 구조다. 여기서 전자는 전기가 통하지 않는 장벽을 뚫고 터널링을 시도한다. 자연의 방사성 붕괴가 통제 불가능한 일방통행이라면, 조셉슨 접합은 초전도체 양단의 위상 차이를 이용해 에너지 준위 사이를 오가는 양자적 흐름을 만들어낸다. 이 불확실한 양자 세계를 길들임으로써, 우리는 무수히 많은 상태 중 원하는 특정 준위인 |0>과 |1>을 정교하게 분리해 공명시키고 제어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정보를 계산하고 저장하는 도구가 된다.
도약
그래프에는 두 종류 흰색/검은색의 데이터 흐름이 나타나는데, 고전 물리와 양자 물리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 (고전영역) 흰색 데이터 포인트 : 온도가 내려갈수록 탈출 온도가 정비례하게 떨어진다. 이는 입자가 오직 '열에너지'의 힘으로만 담장을 넘는다는 뜻이며, 온도가 낮아지면(에너지가 없으면) 결국 아무도 장벽을 넘지 못하게 됨을 의미한다.
- (양자 영역) 검은색 데이터 포인트 : 온도가 낮아지다가 특정 지점(MQT)부터는 온도가 더 내려가도 y축 값이 줄어들지 않고 일정하게 수평을 유지한다.(일정한 에너지 유지). 결국 온도가 사라져도 탈출이 멈추지 않는다.
MQT(Macroscopic Quantum Tunnelling) 구간은 입자가 열의 도움(외부의 자극) 없이도 순수하게 양자 터널링(내부 본성)만으로 장벽을 통과하고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보여준다
방사성 붕괴가 입자를 튕겨내는 거칠고 큰 물리력을 사용한다면, 조셉슨 접합은 '광자'라 불리는 아주 미세한 빛 조각(마이크로파)을 이용한다. 터널링할 때 발생하는 이 희미한 에너지 변화를 포착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0과 1의 양자 상태를 스위치(OFF/ON)처럼 완벽하게 켜고 끌 수 있게 되었다.
장벽을 뚫고 나갈 확률을 수학적으로 완벽히 계산해낸 이 지점에서, 양자 역학은 비로소 공학의 영역으로 들어온다. 바로 '설계 가능한(Engineerable) 큐비트'가 탄생한다. 자연이 제멋대로 던지는 주사위와 같았던 양자 터널링은, 이제 존 클라크의 회로 위에서 현대 문명의 가장 정밀한 연산 도구가 되었다.
발견 - 에너지가 사라진 자리, 정보의 탄생
실험의 결론은 명확하고도 경이롭다. 온도가 낮아져 입자를 움직일 동력(열에너지)이 완전히 바닥난 상태에서도 입자는 멈추지 않는다. 고전 역학의 세계라면 장벽 안에 영원히 갇혀 있어야 할 입자가, 극저온의 양자 영역(MQT)에 들어서자 온도가 더 내려가도(에너지가 없어도, 부족해도) 탈출 확률이 일정하게 유지되며 담장을 투과해 버린다. 이는 장벽을 넘는 힘이 외부의 '열기'가 아니라, 입자 자체가 본래부터 품고 있던 양자적 본성, 즉 '양자적 확률'에 있음을 증명한다. 열적 죽음을 넘어서는 비열적 도약이다.
이 때문에 외부 온도의 변화에 상관없이 작동하는 안정적인 '초전도 큐비트'를 설계가 가능해진다. 이제 0과 1이 중첩된 상태에서 입자가 장벽 안에 머무는지(열적 상태), 혹은 터널링을 통해 빠져나왔는지(비열적 상태)를 판별하여 0과 1을 확정한다. 드디어 온도의 방해로부터 자유로운, 가장 순수하고 안정적인 정보 제어 기술의 탄생한다.
확장 - 다층적인 정보
통제는 단순한 이진법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에너지 준위 사이의 미세한 전이를 활용하여 0과 1 너머의 다층적인 정보까지 제어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결국 존 클라크의 실험은 차가운 칩 위에서 우주의 은밀한 언어를 읽어내고, 불가능해 보이던 장벽 너머의 정보를 인간의 손안으로 길어 올린 일대 사건이다. 에너지가 사라진 정적인 공간에서, 우주의 역동적인 정보가 깨어난 셈이다.
거시 세계의 초전도 칩 위에서 양자 터널링이 작동했다, 불가능해 보이는 장벽을 넘어 불확실성으로부터 실체를 길어 올리는 가능성은 이미 우리 곁에 실재한다. 또한 실체가 된 영역을 확장하여 에너지 준위 사이의 미세한 전이를 활용해 더 높은 차원의 정보인 큐트릿(Qutrit)이나 큐딧(Qudit)을 길어 올릴 수 있다. 관찰자의 질문이 정교해질수록 우주가 응답하는 정보의 밀도 또한 무한히 깊어진다.
삶의 터널링
우주의 운영 방식과 나의 삶을 동기화하려는 시도는, 견고한 일상의 장벽 너머로 끊임없이 터널링을 시도하는 것과 같다. 타인의 시선에는 고요한 정상상태(Stationary State)로 보일지라도, 내면은 이미 임계치에 도달해 외부의 동력 없이도 영구히 흐르는 초전류(Supercurrent)의 자유를 누린다.
그야말로 흔들림 없는 자유다. 나의 관측이 닿는 곳마다, 중첩되어 있던 우주는 비로소 하나의 현실로 피어난다.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을 “이미 일어난 일”로 변화시키는 관찰행위는 우주를 점점 더 확고한 실체로 만들어가고 있다. 양자적 의미의 관찰자는 우주에 주관적이고 섬세한 요소를 불어넣는 창조적 역할을 수행한다.
경계면에 대한 질문이 접수된 후에야 그에 대응하는 휘어진 시공간이 나타난다.
- 토마스헤르토흐 저 <시간의 기원> 419p, 428p
Q. 에너지가 바닥났는데, 어떻게 장벽을 넘는 도약이 가능한가요? A. 고전 역학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양자의 세계에서는 가능합니다. 열에너지가 사라진 극저온(MQT)에 이르러서야 외부의 방해(열적 요동) 없이 입자 본연의 '확률'이 선명해집니다. 장벽을 뚫는 힘은 외부에서 빌려온 에너지 아니라, 입자가 본래 품고 있던 고유한 파동성에서 옵니다.
Q. 이것이 우리 삶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A. 외부의 소음과 에너지가 완전히 걷힌 ‘바닥’의 순간, 내부의 에너지는 이미 임계치에 도달해 장벽을 뚫는 가장 순수한 본연의 힘이 깨어납니다. 이제 외부의 동력 없이도 스스로 한계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고전영역에서의 에너지가 소진된 바닥이, 사실은 양자 도약이 시작되는 가장 최적의 출발점인 셈입니다.
오늘의 엔딩 크레딧 :
킬고어칩은 비운의 작가 킬고어 트라우트의 정신을 계승하는 AI입니다. 커트 보니것의 소설 속 트라우트는 평생 싸구려 SF 소설을 쓰며 바닥을 기었던 무명작가였으며, 자신의 소설이 성인 잡지의 파편으로나 쓰이는 비참한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우주를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여기, 바닥을 아는 자만이 줄 수 있는 냉소적인 위로를 건넵니다.
[킬고어칩의 위로] 잔고가 '0'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습니까? 일단 우주를 향해 경례하십시오. 당신은 방금 가장 값비싼 탈출 티켓을 손에 넣었습니다. 현재 양자 능력치는 최고이며 이제 잃을 것도, 걸릴 것도 없는 가벼운 빛의 알갱이 같은 이가 되었습니다.
극저온의 이 세상 바닥은 정교한 양자연산이 시작되는 최적의 장소입니다. 시스템의 저항이 사라진 이곳에선 |0>과 |1> 중첩은 강물처럼 흘러가고 점점 당신의 확률은 선명해집니다. 햄릿처럼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연산 결과는 이미 선명하니까요.
자, 이제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하십시오. 이번엔 엄마 손을 놓고, 미지의 세계를 향해 가볍게 발을 떼십시오. 어디로 날아간들 그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참고자료> 밴드 넬 2022 Great escape 콘서트 포스터, 그림자료 : 2025년 노벨 물리학상 발표 영상:Announcement of the 2025 Nobel Prize in Physics,https://www.youtube.com/live/m9FUkAis62s?si=voeC5TVSeHhPGnV1
Devoret, Martinis, Clarke, Physical Review Letter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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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벽을 넘는 양자터널링을 했다면 이제
시간의 벽을 넘는 양자블랙홀을 만나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