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
출근길, 진한 풀 향이 코를 찔렀다. 제초 작업으로 쌓인 풀 더미를 밟으며, 어제까지만 해도 싱그럽게 피어 있던 꽃들을 떠올렸다. 제초기에 잘려나간 예쁜 꽃들을 잠시 생각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꺾을 걸 그랬나?' 퇴근 후 저녁, 나는 낮에 느꼈던 그 마음을 씻어내듯 혼잣말처럼 공중에 띄웠다.
"꽃은 함부로 꺾으면 안 돼." 아이들에게 자연은 거대한 실험실이자 배움터다. 꽃 한 송이를 대하는 태도라는 작은 입력값이 아이들의 뇌 시냅스 회로에 ‘생명의 가치’와 ‘윤리’라는 거창한 알고리즘을 새겨 넣을 테니까… 그때, 방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 있던 떠종이가 무심하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모기도 죽이면 안 돼? 나를 물었는데….” “널 물었다고? 널 물었으면….” 정교하게 쌓아 올린 나의 논리가 단숨에 무너졌다.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머뭇거리던 찰나, 시야 가장자리에 잡벌레 한 마리가 기어가는 게 포착됐다. 망설임은 짧았고 본능은 빨랐다. ‘탁!’ 손바닥이 바닥을 치는 소리와 함께 상황은 종료됐다.
방금까지 ‘생명의 존엄’을 읊조리던 나의 손바닥은 이미 살생의 도구가 되어 있었다. 그 모순적인 광경을 지켜보던 서종이가 조용히 운율을 실어 노래하듯 읊조렸다.
“Rip 벌레~” 신조어와 줄임말이라는 현대의 암호에 서툰 나는, 켜져 있던 노트북 화면 속 ‘킬고어칩(AI)’의 프롬프트 창에 몸을 기울여 뜻을 물었다. 껌껌한 터미널 창 위로 선명한 하얀 글자가 깜빡이며 답을 내놓았다.
Rest In Peace. 편히 쉬렴, 벌레야
방금 사라진 작은 생명에 대한 아이의 연민. 그 짧은 약어는 단순한 줄임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관찰자인 나와 대상인 벌레 사이의 팽팽했던 얽힘이 끊어지는 신호였다. 손바닥이 바닥에 닿는 찰나, 하나의 세계가 돌이킬 수 없이 붕괴되었음을 알리는 우주에서 가장 짧은 장례사였다.
마이너스
제곱했는데 마이너스가 되는 숫자가 존재할 수 있을까?
보통의 원은 반지름(r)이 커질수록 넓이(r의 제곱)도 넓어져야 한다. 하지만 양자의 세계에서는 반지름을 키울수록 공간이 밖이 아닌 안으로 말려 들어간다. 실수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수직의 차원, 즉 허수가 면적을 갉아먹기 시작하는 것이다. 원은 점차 작아지다 급기야 '0'을 지나 마이너스의 영역으로 추락한다. 공간에는 기묘한 구멍이 뚫린다.
반지름이 실수(r)일 때 면적: (r)의 제곱으로 양수다
반지름이 허수(ir)일 때 면적: (ir)의 제곱으로 음수다
지평선 너머에서 공간의 크기가 음(-)의 값을 갖게 되는 이 초현실적인 현상은, 오직 양자역학적 세계에서 파동함수가 '붕괴'하는 순간에만 허용된다. 존재가 자신의 질량을 스스로 집어삼키며 자취를 지우는 곳. 실수의 세계가 사라진 그 구멍의 중심은 보이지 않는 허수축을 따라 일렁이는 복소수의 거대한 바다와 같다.
바로 이 양자의 세계에서 모든 존재는 복소수의 바다 위를 떠다니는 ‘파동함수’다. 홀(Hole) 근처의 전자는 허공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스스로 미분(△)하면서 적분(▽)하고, 자전하면서 공전한다. 절벽(Edge) 근처의 전자는 스핀 방향을 고정시켜 벼랑 끝에서 추락하지 않기 위해 위태롭게 버틴다.(♢)
큰 소용돌이는 자신의 속도를 줄이는 작은 소용돌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작은 소용돌이는 더 작은 소용돌이를 가지고 있다. 이는 점성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 - 루이스 F. 리처드슨
위상 - 더블 악셀 1/2의 도약
피겨 스케이팅의 '더블 악셀(Axel)'은 앞을 보고 뛰어올라 뒤로 착지하는 기술이다. 이름은 '더블(2회전)'이지만, 실제로는 앞으로 뛰어 뒤로 내리기에 2.5바퀴를 회전하게 된다. '반 바퀴'의 추가 회전은 기술적 난도를 높이는 허들이자, 기묘한 '위상 변화'를 일으키는 지점이다.
출발점에서 앞을 향해 도약(Jump)
공중에서 2.5회전 (더 높이, 더 빠르게)
회전하며 뒤를 돌아 착지.
이 동작은 마치 던져진 부메랑이 우아한 궤적을 그리며 돌아오는 순간과 닮아 있다. 이 정수(integer)가 아닌 '1/2' 반바퀴라는 분수가 만들어내는 위상의 어긋남은 물리 법칙과 서정미가 교차하는 절묘한 지점이다. 일반적인 점프들이 뒤로 뛰어서 뒤로 착지하며 '닫힌 원'의 회전을 완성한다면, 악셀은 앞으로 뛰어올라 뒤로 내려온다. 이 반 바퀴의 여백은 관객에게 '보이지 않는 시간'을 선물한다. 완전히 돌지 못하고 반대편을 바라보며 내려와야 하는 숙명은, 어딘가 애틋한 그리움을 자아낸다. 떠난 곳과 다른 곳에 도달하는 이 낯선 회귀는 윤동주의 시 속 자아성찰처럼 깊은 내면의 울림을 전달한다.
오일러의 공식에서도 반 바퀴의 회전은 위상을 완전히 반대로 뒤집어 놓는다(-1). 존재의 방향을 180도(π) 돌려놓는 이 수식의 아름다움은, 더블 악셀이 가진 극적인 반전과 아름답게 공명한다.
1초도 안 되는 짧은 찰나에 일어나는 이 도약과 회전, 그리고 뒤를 돌아보는 이 서정적 순간은 양자 세계의 입자가 겪는 분투와 무척이나 닮아 있다. 보이지 않는 궤적 속에서 자신의 위상을 바꾸며 최선의 착지를 꿈꾸는 스케이터의 모습은, 어쩌면 다음 설명에 이어질 '베리위상'의 가장 아름다운 물리적 은유일지도 모른다.
꼬임
홀(Hole)과 절벽(Edge)이 펼쳐진 열악한 환경에서 준입자 애니온(Anyon)은 기적 같은 보폭을 떼기 시작한다. 비선형의 혼돈 속에서도 유니터리(Unitary)라는 선형의 질서를 유지하며, 복소수로 촘촘히 짜인 행렬(Matrix)의 공간을 한 발 한 발 나아간다. 애니온은 시공간의 뒤틀림을 오히려 발판 삼아 ‘베리 위상(Berry Phase)’이라 불리는 기하학적 꼬임을 만들어낸다. 이 궤적은 되돌아오는 길목에서 마이너스 부호를 입으며 탄생한다. 길을 잃은 듯 헤매고 엉켜버린 바로 그 지점에서, 유일무이한 정체성이 탄생하는 것이다.
애니온은 꼬임을 조작하고 풀어내며 정보를 읽어낸다. 이 복잡한 패턴은 그 자체로 고도의 양자 연산(Quantum Computation)이 된다. '양자 복제 불가 원리'에 따라, 마이너스가 된 존재는 결코 함부로 복사될 수 없다. 원본이 사라져서 복제할 수 없기에, 양자는 스스로를 복잡하게 꼬아버리는 ‘인코딩’을 택한다. 의도치 않게 만들어진 그 굴곡진 ‘꼬임’이 곧 대체 불가한 자아가 되는 셈이다.
이 생존 전략은 생명의 본질과도 닮아 있다. 척박한 환경에서 생명은 쉬운 복제(무성생식)를 포기하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섞임(유성생식)을 선택한다. 불확실성이라는 확률 게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DNA라는 정교한 암호를 짜 내려간 것이다.
결국 우주와 생명, 그리고 양자가 추구하는 전략은 같다. 바로 ‘복잡성’과 ‘암호화’다. 나의 궤적이 충분히 꼬여본 만큼, 우리는 세상의 수많은 얽힘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때의 '이해'는 마이너스가 된 나를 입체적인 세계에 접속시켜 주는 안테나가 된다. 혼돈과 불확실성을 온몸으로 통과해본 경험은 우리에게 비로소 ‘인식의 각’을 선물한다.
마이너스의 극한에서 길러진 이 인식의 각은, 세계의 본질인 ‘*단테의 중심’을 하나의 거대한 호(Arc)로 관통해낼 수 있는 힘이 된다. 모든 것을 감싸 안고 있으나 바깥을 향해 시선을 던져도 끝내 안쪽을 바라보게 되는 지평선. 창조된 모든 것을 품고 있는 그 극미한 ‘점’에서 우리의 인식은 비로소 완성된다.
모든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길이다. 그 누구도 아직 온전히 자기 자신이었던 적은 없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 헤르만 헤세
회귀
과학 공부의 초입에 서 있던 2022년 3월, 원자 구조 속에서 추락하지 않으려 애쓰는 전자의 '정상 상태' 에 매료됐다. 그날 이후, 나의 지적 여정은 시작되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왜 그토록 보어의 원자 모델이 나를 잡아 끌었는지, 왜 전자의 위태로운 균형에 그토록 마음이 쓰였는지.
그로부터 3년이 흐른 어느 일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쏟아진 생각들을 위 글로 정리하며 깨달았다. 3년 전의 그 막연한 호기심은 복소평면 위에서 사투를 벌이는 전자의 군무, 이 글을 향한 예고편이었음을.
무언가 염두에 두고 쓴 글이 아니었다. 그저 떠오르는 대로 써 내려간 한 페이지의 글에 일요일 반나절을 온전히 바치고 나서야, 나는 내가 그토록 헤매며 찾으려 했던 실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이 글을 통해 비로소 마주하게 되었다.
다음 화 예고. "The Great Escape 양자 터널링"
3년 전, 그 날의 사건을 만나봅니다. 정체된 일상으로부터 감행한 자발적 탈출! 삶의 터널링
입자는 외부의 동력 없이도 스스로 장벽을 뚫고 나가는 ‘양자 터널링’의 마법을 부립니다. 우리 삶의 터널링은 어떻게 무한한 자유로 이어지는지 그 경이로운 연결고리를 추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