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의 초창기 버전이 나왔을 때, 아이는 AI와의 끝말잇기에서 이겼다며 의기양양했다. 이세돌이 알파고를 이긴 것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승리다. 지금 버전의 AI라면 어림도 없겠지만, 평소 녀석의 실력을 아는 나로서는 분명 주기율표의 원소 이름을 대는 식의 엉뚱한 속임수를 썼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사실 승패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에게 AI와의 대결은 그 자체로 꽤 흥미로운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끝말잇기처럼 엉뚱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그 기억에서 시작되었다. 조각난 지식들을 잇고 그 흐름 속에 이해가 스며들게 하려면, 결국 변하지 않는 본질이라는 하나의 축이 있어야 한다. 다만 그 목걸이를 꿰어가는 구슬 하나하나만큼은 늘 새롭고 즐거워야 한다. 본질은 변하지 않되 모양은 무한히 변주되는 글. 무한을 유한함에 담아내는 그런 글들을 써보기로 했다.
이 책은 너무 흔해서 눈에 띄지 않았거나 주류로 소개되지 않았던 과학 지식들을 엄선해 선보이는 하나의 ‘지식 큐레이션 전시’다. 모래알처럼 흩어진 조각들의 숨겨진 광채를 드러내는 전시가 되었으면 한다. 전시장을 걷듯 천천히 즐기다 보면, 어느새 일상의 순간들이 과학이라는 언어로 다시 읽히기 시작할 것이다. 과학도 한 편의 드라마가, 그리고 근사한 전시가 될 수 있음을 이 책과 함께 나누고 싶다.
끝말잇기의 끝이 다시 시작이 되듯, 이 전시실의 출구는 다시 사소한 일상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전시장 밖을 나서는 순간, 종이처럼 평평하고 익숙했던 풍경 위로 거대한 우주의 프레임이 겹쳐지기 시작할 것이다.
나는 과학에서 인문을 찾는 것보다, 일상에서 과학을 찾는다. 익숙한 풍경을 과학으로 보기 시작할 때, 우주는 내게 "Hey yo!"하고 가볍게 말을 걸어온다. 그리고 ‘결함 없음’이라며 무심하고 힙하게 위로를 건넨다. 거대한 우주에게 이런 식으로 위로받는 기분이란, 낯설지만 강렬해서, 이 도파민에 중독되어 계속 우주를 찾게 된다.
그런데 더 웃긴 건 그 다음이다. 우주를 탐구하다 보면 어느덧 우주를 위로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나의 사소한 일상이 너의 정교한 설계로 잘 흘러가고 있으니, 너의 존재 역시 ‘결함 없음’이라고 화답하는 것이다. 마치 괴델의 불완전성의 정리같이 시스템 내부에서는 결코 스스로의 완벽함을 증명할 수 없기에 우주와 나는 서로를 거울삼아 마주 보는 셈이다. 관찰되지 않으면 미아나 다름없는 우주를 위해 내가 기꺼이 그 존재를 증명해 주는 주객전도의 코미디. 이 상황은 탐구의 도파민을 더욱 가중시킨다. 그래서인지 글을 쓰다보면 끝말잇기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미스터리 추적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제 백색소음 가득한 종이 위에 우주를 펼쳐놓는다. 하루 5분이면 충분하다. 당신의 일상이 우주로 확장되는, 혹은 우주라는 거대한 관종이 당신의 일상으로 찾아오는 시간이다.
(주의) 때론 감정근육이 약해져 무덤덤해지지만, 이 덤덤함이 단단함의 기초가 되기도 합니다. 한가지는 확실합니다. 우주가 아름답다면 나라는 존재와 나의 삶 역시 아름답습니다.
오늘의 엔딩 크레딧
Red Hot Chili Peppers – Snow (Hey Oh)
빛나는 일상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