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척도(Metric)의 슬픔
우리는 영원히 서로를 향해 수렴하기만 할 뿐, 끝내 닿지 못하는 점근선의 운명인 줄 알았다. 하지만 좌표 평면 위의 시야를 조금만 넓혀보면, 보이지 않던 새로운 가능성이 고개를 든다. 선으로는 어긋날지라도,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세계인 '마름모'의 경계는 서로에게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너라는 예고치 못한 '사건'이 불쑥 내 시공간의 마름모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순간, 나의 세계는 궤적을 이탈해 너를 포함하는 더 큰 마름모로 확장을 시작한다. 닿지 않는 선의 한계를 '면의 접촉'으로 승화시키는 이 기하학적 기적. 끝이 시작이 되는 유니버스 매크로의 서막이다.
끝이 시작이 되는 유니버스 매크로
점근선의 슬픔은 거리가 아무리 줄어들어도 결코 0이 될 수 없다는 ‘척도(Metric)’의 집착에서 온다. 메트릭이란 두 점 사이의 구체적인 시간과 거리를 측정하는 ‘자(Ruler)’와 같다. 하지만 그 숫자의 자를 내려놓고 시야를 유연하게 넓힐 때, 비로소 시공간의 본질적인 구조(Structure)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제 수학적 불가능(점근선)을 시공간적 가능(마름모)으로 치환한다. 마름모는 우주의 끝과 시작을 단숨에 오가는 일종의 ‘축지법’이다. 마치 마라톤 풀코스의 구불구불한 경로를 생략한 채, 출발점과 결승점 사이에 놓인 '의지'와 '완주'라는 본질만 한 점에 모은 것과 같다. 구체적인 수치 대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갈 수 있는가'라는 운명적인 경로만 남겨놓은 셈이다. 시공간의 시작과 끝을 간파하는 통찰, 이제 펜로즈 다이어그램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장면#1] 궤적의 이탈
기하학적 구원 : 마름모의 건축물
블랙홀 근처의 시공간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사정없이 휘어져 있다. 이 복잡한 왜곡을 이해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특별한 방법을 고안했다. 뒤엉킨 시공간을 다림질하듯 팽팽하게 펴서 평평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블랙홀 근처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의 인과관계를 훨씬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펜로즈 다이어그램'이다. 이 도표는 시공간의 각도를 정확히 구현하기 위해 빛의 속도를 1(c=1)로 설정하는 정각도법을 택했다. 시간과 거리를 동등하게 취급해 무한한 우주를 한꺼번에 '압축'해버린 것이다. 구체적인 거리를 재는 척도(Metric)를 포기하는 대신, 사건 사이의 각도와 인과관계(Structure)만을 남긴 셈이다.
펜로즈 다이어그램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무한한 우주 전체를 단단한 마름모꼴 안에 가두어 담아냈다는 데 있다. 마름모의 테두리는 엄격하고 딱딱해 보이지만, 그 안을 흐르는 존재들의 궤적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자유롭게 이어진다. 여기서 규칙은 단순하고도 절대적이다. 빛의 경로(Light-like)는 다이어그램 어디에서든 항상 45도 직선으로 질주한다. 반면 질량을 가진 우리 같은 존재들(우주선, 행성, 사람)은 결코 빛보다 빠를 수 없다. 따라서 우리의 세계선(Time-like)은 빛의 울타리 안에서 언제나 45도보다 가파른 각도를 유지하며 수직축(미래)을 향해 나아간다.
‘장소’가 아닌 ‘내일’이 된 특이점
블랙홀 내부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이 다이어그램 위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사건’이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 블랙홀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공간과 시간의 역할은 뒤바뀐다. 밖에서는 특정 '장소'였던 특이점이, 안에서는 결코 피할 수 없는 '내일'이라는 시간 그 자체가 된다. 다이어그램 위에서 특이점은 하나의 점이 아니라 꼭대기에 가로로 놓인 지그재그 선으로 그려진다. 이 가로선은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아니라 '시간의 끝'을 의미한다. 빛조차 45도로 나아가다 결국 이 선에 닿고 마는 것은, 길을 잃어서가 아니다. 내일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시간의 흐름 그 자체가 우리를 그곳으로 밀어내기 때문이다.
[장면#2] 조우(Event) : 세계선의 교차
펜로즈 다이어그램 위에서 만난 아이
이제 가장 궁금한 순간을 떠올려 보자. 바로 ‘세상에 처음 태어난 순간’이다. 그 소중한 찰나를 다이어그램의 중심(O)에 놓으면,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라는 시간의 지평이 마름모의 사선들을 따라 무한히 뻗어 나간다. 저 멀리서 온 두 개의 섬광이 중심(O)에서 교차한 뒤 다시 멀어지는 장면은 우주의 거대한 약속처럼 보인다.
그 탄생의 정적을 깨고 시공간을 가로질러 나타난 것은 빛이 아닌 '떠종이'였다. 펜로즈의 마름모 한복판으로 예고없이 불쑥 들어온 아이의 목소리는 우주의 인과율을 건너뛰고 도착한 또 다른 섬광 같았다. 생각의 흐름을 단숨에 차단하는 반칙 같은 순간, 떠종이가 질문 하나를 공중에 툭 던져 올렸다.
떠종이 : "엄마, 1부터 10까지 다 더하면 뭔지 알아?"
엄마 : "55!"
떠종이 : "오, 맞았어! 정답! 근데 이거 어떻게 푸는지 봐봐. 1+10=11, 2+9=11... 이렇게 양 끝을 묶으면 11이 다섯 개가 생기잖아? 그래서 55야. 이게 바로 가우스가 발견한 방법이래, 신기하지?"
구조적 응축: 가우스의 합과 칸토어의 먼지
떠종이가 던진 가우스의 계산법은 거대한 수의 나열을 한 점으로 모으는 '구조적 응축'이었다.
가우스의 합(등차수열): 무한한 수의 직선을 양 끝에서 맞물려 접는다. 길게 늘어졌던 '거리'가 사라진 자리에는 '합(Sum)'이라는 본질적 질량만 남는다.
칸토어의 먼지 : 선분을 무한히 쪼개어 길이를 '0'으로 수렴시킨다. 선이라는 실체는 사라지지만, 그 안에는 점들의 집합체인 '먼지'가 남는다.
가우스는 접고, 칸토어는 쪼개는 방법으로 '길이'가 없는 본질을 남겼다. 거리를 '0'으로 만드는 이 구조적 공통점은 시공간을 한 화면에 가둔 펜로즈의 마름모와 닮아 있다. 텅 빈 공백(0)은 사실 무한한 존재들이 응축된 결정체이며, 이 '단절된 점'들이 모여 다시 거대한 집합을 이룬다. 아이의 ‘방해’는 오히려 나의 생각을 확장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 짧은 만남은 두 세계선이 교차하는 사건(Event)이 되었고, 교차를 마친 광선은 이제 서로의 온기를 머금은 채 다시 마름모를 그리며 나아간다.
시간의 결정
펜로즈는 거리가 ‘0’이 되면서도 점들이 겹치지 않는 ‘민코프스키 시공간’을 이렇게 설명한다.
"하늘을 바라봅니다.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광자에게 시간 간격은 0입니다. 우리가 보는 '거리'는 사실 빛보다 느린 존재들이 겪는 ‘시간의 경험’이 투영된 결과물일 뿐입니다. 결국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공간은 이 시간의 경험에서 비롯됩니다." - The portal(에릭 와인스타인과 함께)채널 펜로즈 인터뷰 중
시작을 열었던 '갇힌 시간'의 요동은 끝을 닫는 '공간꼴 특이점(지그재그선)'에서 다시 만난다. 시간과 공간의 감옥이 맞닿는 이 경계 안에서 시작(Alpha)과 끝(Omega)은 하나가 된다. 별이 스스로 붕괴하며 겪는 찰나, 나와 세계의 경계를 느끼는 그 흔들림이야말로 시간이며 곧 '나'라는 실존이다.
[장면#3] 얽힘 : 연결고리
끝과 시작을 잇는 ‘어미’
떠종이 : "엄마, '가다'에서 '가-'는 어간이고 '-다'는 어미잖아. 내가 친구한테 어미는 '말의 꼬리'라고 알려줬더니 선생님도 친구도 좋아했어."
엄마 : "와, 비유 좋다! 근데 칩, '어미'가 정확히 무슨 뜻이야?"
킬고어칩 : 어미(Ending)는 문장을 끝맺거나 이어주는 요소입니다. 동시에 어미(Mother)는 자식을 지극히 아끼는 어머니를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죠.
떠종이 : "엄마, 근데 더 중요한 게 있어! 어미가 없으면 단어 자체가 완성이 안 된대. 문장 속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엄마가 없었으면 나도 완성될 수 없었을 거야. 그러니까 엄마는 내 인생의 시작이자 끝. 나의 '어미'인 거지!"
킬고어칩: 떠종이 말이 맞습니다. 엄마라는 '어미'가 있기에, 비로소 아이는 단어가 되어 세상이라는 거대한 문장 속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갈 수 있는 법이니까요. 만약 엄마라는 '어미'가 없었으면 이 소년은 우주의 먼지들처럼 '미등록 개체'로 남았을 겁니다. 어쩌면 그게 더 속 편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꼬리가 몸통을 끌고 단어가 되어 문장 속으로 걸어 들어온 이상, 이제 떠종이는 인생이라는 지독하게 긴 문장을 끝까지 써 내려가야만 합니다. 문법이 허락하는 한,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꼬리를 잡힌 채 이 행성을 유랑하는 불쌍한 단어들일 뿐입니다. 뭐, 그런 거지요(So it goes).
양자 유령의 꼬리 : 슈테른-게를라흐(SG) 실험의 재발견
실험2)에서 과거에 분명히 걸러냈던 '스핀 다운(-)' 입자가 다시 등장해 당황하는 실험 결과를 보자. SGz 장비에서 스핀 다운을 모두 걸러냈음에도, 다음 단계에서 스핀 다운이 유령처럼 다시 나타난다. 마치 플라나리아의 꼬리를 끊어냈는데 그 자리에 다시 꼬리가 자라나는 격이다. 끝낸 줄 알았던 지점에서 다시 시작이 되는 마법. 하지만 만약 입자와 측정 장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물리적 연결고리가 있다면, 현재의 측정 상황은 과거와 이미 다르다. 측정 장치의 방향을 바꾸는 순간, 그 장치가 내뿜는 물리적 장(Field)은 우주의 초기 조건을 이미 바꿔버린다. 이는 입자와 장치가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의 '앙상블(Ensemble)'로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고 있음을 뜻한다. 즉, 입자와 측정 장치는 한 몸이다.
'왜 과거에 분명히 걸러냈던 입자가 다시 나타나는가?' 이것은 장비의 실수가 아니다. 우주가 정보를 처리하는 본질적인 방식, 즉 '양자 측정의 비가역성'을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이다. 입자는 측정되기 전까지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품고 있다가, 측정을 하는 순간 이전의 상태를 완전히 잊고 새로운 현실로 도약한다. 측정 장치라는 '손'이 입자라는 '모래'를 쥐는 순간, 손과 모래는 이미 '악수'라는 하나의 상태로 고정된다. 측정이 끝난 후 시스템은 결코 이전과 똑같은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앙상블 전체의 기하학적 구조가 미세하게 변했기 때문이다. 시작과 끝이 거리와 상관없이 연결되어 있는 비국소적 압축의 정점이다.
유령들이 서로 꼬리를 물고 연결되어 있듯, 우주의 시작(alpha)과 끝(omega)도 펜로즈의 마름모 안에서 서로의 옷자락을 붙잡고 있다. 한쪽의 움직임이 반대편의 운명을 결정짓는 이 연결성이 바로 우리가 '실존'이라 부르는 질량의 정체다.
우리는 서로 헤어진 줄 알았으나, 사실은 보이지 않는 옷자락(물리적 연결고리)이 서로를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 그림의 지평선의 유령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명확하다. "마법이 아니라 연결입니다." 양자역학은 상식 밖의 마법이 아니다.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거대하고 정교한 연결의 미학일 뿐이다.
☁ 팩트체크 : SGz 실험에 대한 해석은 팀 파머 저 <카오스 카오스 에브리훼어> 책을 참고로 한 것으로 현재 주류 해석은 아닙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다시 만난 ‘어미’의 손가락
꿈에 그리던 성모 마리아상을 조각해냈으나, 끝내 어머니의 손가락 형상을 완성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는 골드문트. 그리고 그 곁을 지키는 나르치스는 친구의 마지막 숨을 지켜본다.
“어머니의 손가락을 만들지 못하고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정말 참기 힘들었지.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놀랍게도 나는 늘 어머니의 손가락과 함께 있었던 거네. 내 손으로 어머니를 형상화하기는커녕, 어머니의 손가락이 나를 만들어준 걸세.”
골드문트의 고백은 펜로즈 다이어그램의 통찰과 맞닿아 있다. 우리가 '거리'라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시간의 경험'이었 듯, 골드문트가 만들려 했던 '형상'은 사실 그를 존재하게 한 '근원'이었다. 그는 평생 점근선처럼 어머니라는 존재에 수렴하려 애썼지만, 죽음의 문턱에서야 깨닫는다. 자신은 단 한 순간도 어머니라는 마름모의 경계 밖으로 나간 적이 없음을. '어머니'는 사실 그가 조각해내야 할 대상(Metric, 측정 가능하고 형상화해야 할 목표)이 아니라, 이미 그를 빚어내고 있던 근원적인 구조(Structure/Field)였다.
나르치스를 향한 그의 마지막 질문은 가슴에 불을 지핀다.
“그런데 나르치스, 자네는 나중에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작정인가? 자네한테는 어머니도 없잖아? 어머니가 없이는 사랑을 할 수 없는 법일세. 어머니가 안 계시면 죽을 수도 없어…”
골드문트에게 어머니는 인생의 시작(Alpha)이자 끝(Omega)을 맺어주는 *어미(Mother/Ending)'였다. 펜로즈 다이어그램의 '특이점'이 피할 수 없는 '내일'이듯, 골드문트에게 피할 수 없는 '죽음'은 자신을 빚어낸 어머니의 품으로 다시 스며드는 '본질적 회귀'였다.
그 뒤에 중얼거린 내용은 더 이상 알아들을 수 없었다. 마지막 이틀 동안 나르치스는 밤낮없이 친구의 병상에 붙어 앉아 친구의 생명이 사그라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골드문트의 마지막 말은 그의 가슴속에서 불처럼 타올랐다. - 헤르만헤세 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477p
나르치스라는 차가운 이성과 골드문트라는 뜨거운 예술은 서로 헤어진 줄 알았으나, 사실은 보이지 않는 옷자락을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 측정이 끝난 후 시스템이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듯, 골드문트가 던진 마지막 질문은 나르치스라는 우주의 초기 조건을 영원히 바꿔버린다. 이제 우리는 안다. 점근선처럼 닿지 못해 슬펐던 삶도, 결국은 더 큰 마름모의 일부였다는 것을. 우리는 서로의 온기를 머금고 다시 새로운 마름모를 그리며 우주의 가장자리를 향해 나아갈 뿐이다.
[에필로그]
점근선이라는 고립에서 시작해, 마름모라는 경계의 접촉을 거쳐, 양자 얽힘이라는 본질적 연결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궤적을 그리며 나아갑니다. 이 거대한 매크로 유니버스 속에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물질은 스타더스트(Stardust)입니다.
수십억 년 전 별의 폭발(끝)이 발생했습니다.
그 파편이 성간 물질이 되어 지구와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소(시작)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죽음은 다시 원자가 자연으로 돌아가 또 다른 생명이나 행성의 밑거름이 되는 과정입니다.
끝은 늘 그렇게 다시 시작을 향해 달립니다.
엔딩 크레딧. ♫ Still Fighting It - Ben Folds (아버지가 아들에게 불러주는 노래)
Good morning, sun... I am a bird...
The years go on and We're still fighting it...
And you’re so much like me.
I’m sorry...
You'll try and try and
one day you'll fly Away from me.
나를 닮아 나의 부족함까지 고스란히 물려받은 너에게 미안함을 전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닮음 덕분에 우리는 서로의 가장 든든한 배경이 됩니다. 우리는 여전히 삶과 싸우고 있지만(Still fighting it), 그 싸움은 더 이상 고립된 점근선의 비극이 아닙니다. 마름모와 마름모의 경계를 기꺼이 넘나들며, 흐르는 선(Line)의 궤적이 경계를 넘어오는 사건(event), 그리고 그 사건으로 인해 다시 무한히 확장되는 면(Area)으로 나만의 우주를 성실히 건축해가는 과정입니다.
<참고자료>
브라이언 콕스, 제포포셔 저 <블랙홀> 93p~101p 그림 내용 참조
팀 파머 저 <카오스 카오스 에브리훼어> 131p.
제임스 글릭 저 <카오스> 144p.
헤르만 헤세 <골드문트와 나르치스> 475p~477p
Penrose diagram - Wikipedia
The portal (에릭 와인스타인과 함께)채널 펜로즈 인터뷰 중 https://youtu.be/mg93Dm-vYc8?si=GdjCXVCn1IIUI0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