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끌개 : 혼돈 속의 정교한 설계
카오스 이론가이자 천문학자 에농은 은하계의 복잡한 움직임을 관찰하기 위해 독특한 실험을 시도했다. 별들의 궤적이 지나가는 길목에 가상의 평면을 세우고, 궤적이 면을 통과할 때마다 점을 찍는 ‘푸앵카레 단면’ 기법을 도입했다.
처음에는 질서 정연하게 늘어서던 점들이 시스템의 에너지가 높아지자 무작위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에농은 이 파편화된 점들의 집합을 보며 마치 평화로운 바다 위에 떠 있는 '섬'과 '열도' 같다고 묘사했다.
하지만 경이로움은 그 섬을 확대했을 때 드러났다. 커다란 섬 안에 더 작은 섬이, 그 안에 또다시 미세한 섬들이 끝없이 되풀이되는 자기 유사성(Self-similarity), 즉 프랙탈(Fractal) 구조가 나타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카오스 속의 질서, ‘이상한 끌개(Strange Attractor)’다.
이상한 끌개 위를 달리는 천체들의 궤도는 기묘한 이중성을 가진다. 일정한 영역(끌개)를 결코 벗어나지 않는 '불변성'을 지닌다. 동시에 그 안에서 절대 자신과 교차하거나 만나지 않으며 영원히 새로운 경로를 창조하는 '무한성'도 지닌다. 이것이 바로 우주가 선택한 기막힌 설계 방식이다. 단순한 규칙이라는 뿌리에서 뻗어 나와, 결코 반복되지 않는 무한한 복잡성으로 확장되는 원리다.
우리 : 궤도 위의 낯선 이방인
"이상한 끌개가 그리는 우리(Human)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 인간 역시 하나의 이상한 끌개와 닮았다. 며칠 전 아이가 내 방에 오더니 '마당을 나온 암탉' 영상을 내게 틀어주고 나갔다. 잠시 후 다시 나타난 아이는 한참을 울었는지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채 내게 물었다. "엄마 봤어?"
우리는 분명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지만, 결코 서로에게 완전히 닿을 수 없는 '점근선'의 운명을 타고났다. 수학적 세계에서 곡선이 직선에 무한히 다가가되 결코 만나지 않는 점근선처럼, 우리 삶의 궤적 또한 묘한 단절을 품고 있다. 떠종이가 보여준 영화 <마당을 나온 암탉>의 한 장면처럼, 우리는 때로 좁은 케이지(Cage) 안에 갇힌 채 창밖의 넓은 세상을 갈망하는 이방인들이다.
♫ beautiful stranger (아름다운 낯선 이) by Nell, 2006,Healing process
Strange.I barely know you,
but yet I feel deeply connected to you
(이상해. 널 거의 알지 못하는데도, 너와 깊게 연결된 기분이야.)
Crave. I never had you,
but yet I feel so lonely without you
(갈망해. 난 널 가져본 적도 없는데, 네가 없으면 너무나 외로워.)
Safe. I barely know you,
but yet I feel secure when I'm with you
(안전해. 널 거의 알지 못하는데도, 너와 함께 있으면 평온함을 느껴.)
넬(Nell)의 노래 <Beautiful Stranger>가 속삭이듯, '우리'는 서로를 잘 모르면서도 묘하게 연결되어 있고(connected), 온전히 가져본 적 없기에 늘 외로우며(lonely), 역설적으로 그 낯선 존재 곁에서 가장 큰 안전함(secure)을 느낀다. 이 모순적인 감정들이야말로 우리가 우주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서로를 인식하는 방식이다.
나아가 우주와 나의 관계 역시 이 거대한 케이지 안에서 내가 무사히 존재할 수 있도록 ‘중력의 락(Lock)’을 걸어주는 나를 지켜주는 필연적 구속과 같다.
이상한 끌개의 궤도가 결코 자기 자신과 다시 만나지 않듯, 우리의 삶 또한 매 순간 새로운 좌표를 찍으며 나아간다. "It will never be the same(결코 예전과 같지 않을 거야)." 노래의 끝자리에서 아홉 번이나 되풀이되는 고백처럼, 어제의 나로 되돌아가지 않는 이탈 덕분에, 우리는 비로소 늘 새로운 우주를 맞이한다.
나와 나 : ‘나’를 만나지 않아야 흐른다.
카오스 이론이 말하는 '이상한 끌개'의 기하학적 핵심은 궤도가 무한히 회전하지만, 결코 '자기 자신과 다시 만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만약 궤도가 돌다가 과거의 어느 지점과 만나버린다면, 그것은 예측 가능한 단순한 주기 운동이 되어 닫힌 질서 속에 갇히고 만다. 자신과 닿지 않기에 궤도는 멈추지 않고 삶이 흐를 수 있다. 그 '어긋남'을 동력 삼아 비로소 '이상한'이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무한한 복잡성과 아름다움을 획득한다.
우리 삶의 궤적 역시 이와 닮아 있다. 우리는 결코 과거의 나를 다시 만날 수 없지만, 매 순간 내가 새로 빚어낸 세계와 마주한다. 어린 시절의 나, 어제의 나, 방금 전의 나와 끊임없이 대화하며 유한한 시간 속에서 무한한 기억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존재다. 이 '닿지 않음'은 단절이나 절망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의 탄생을 의미한다. 나 스스로가 바로 우주가 빚어낸 가장 아름다운 ‘이상한 끌개’인 것이다.
우주는 우리에게 과거로 다시 돌아가 자신을 붙잡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결코 닿지 않는 궤도 사이의 틈을 보이지 않는 '연결(Link)'로 채우라고 조언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쌓아 올릴 때, 또 우리가 서로를 잇는 네트워크가 될 때, 우리의 생은 좁은 원 안에 갇히지 않고 무한히 확장되는 우주의 설계도를 "함께" 완성해 나간다.
별에서 다시 별로: 프랙탈 차원의 신비
우리는 앞서 정보가 뒤섞인 혼돈 속에서도 작은 입자 속의 불변의 위상적 질서가 은하의 진화를 이끄는 근원적인 힘이 되는 과정을 살펴 보았다. 그리고 별에서 별로 안전하게 돌아왔다. 별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탄생하여 자신의 질량을 연소시키는 핵융합을 통해 빛의 다양한 곡률을 우주에 새겨 넣는다. 이 시공간의 곡률이 우리의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배경이 된다. 무한한 우주 속, 우리 또한 별처럼 각자의 고유한 질량을 지닌 채, 자신만의 빛의 곡률을 그리며 은하의 궤도를 돈다. 천문학자 에농이 계산했듯이, 이 궤도는 결코 과거로 돌아갈 수 없고 그 어떤 순간도 똑같이 반복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우주에 내재된 가장 아름답고 슬픈 기하학이자, 프랙탈(Fractal) 차원이 선사하는 신비다.
오늘의 엔딩 크레딧 :
[킬고어 칩의 한마디] 결국 우주도 이 거대한 카오스를 굴리려면 바다 위의 떠 있는 '섬'처럼 '절대 닿지 않게 해주는 무언가'가 필요한 법입니다. 이 어지러운 퍼즐을 엉키지 않게 누가 정리하냐고요? 바로 '마법의 빗자루'를 든, 스스로 질량을 태우는 존재들입니다. 빛의 곡률을 그려가며, 자기 조직적인 활동을 통해 끊임없이 엔트로피를 낮추어 가죠.
물론 우주에는 복잡한 것을 못 참아 모든 걸 삼켜버려 점으로 압축해 버리는 거대한 진공청소기, 블랙홀도 있습니다. 작은 빗자루로 쓸어내느냐, 압도적인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느냐의 척도(Scale) 차이일 뿐, 혼돈을 방치하지 않는다는 본질은 같습니다. 이처럼 질량을 태우는 존재들은 모두 혼돈 속에서도 질서있는 리듬을 만들어가며 우주라는 교향곡의 음을 조율하고 있는 셈입니다. 수학적 '합동'이 아니기에 서로 완벽히 만날 수는 없으나, 질서를 향한 이 기묘한 '프랙탈(닮음)'은 결국 같은 무늬를 그리며 끊임없이 연주되며 흘러갑니다.
<참고자료 및 출처>
토러스 단면 저자 그림 편집
제임스 글릭 저 <카오스> 202p,203p 그림 인용새장그림 AI제작 그림
@망고무비영화리뷰채널 '마당을 나온 암탉'편 https://youtube.com/shorts/g2XM1U1fzKw?si=8YGhPKyIprJbPzbZ 스틸컷, 자막 이미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