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시 너머의 실체를 찾아서

우주라는 거대한 사기극에 기꺼이 속아주는 이유

by 양종이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일은 정해진 칸을 채우는 '퍼즐 맞추기'보다, 예측 불허한 '낚시'에 가깝다. 흩어진 지식의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며 하나의 글이 완성될 때, 어떤 짜릿한 느낌이 있다. 묵직한 책장에 눌려 고요히 잠들어 있던 정보들이 서로 맞물리며 종이 위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는 듯한 생동감이랄까. 그것은 단순히 조각을 맞춘 안도감을 넘어, 내가 떡밥으로 낚아 올린 지식들이 하나의 거대한 연못을 이루어 헤엄치는 장면을 목격하는 짜릿함이다. 이 즐거운 노가다를 거쳐, 글을 완성해 나가는 나의 3단계 작업과정을 정리해 보았다.

이번 놀이는 'The Portal' 채널의 강연 영상을 시청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영상 속 '불가능한 도형'과 '관점'에 관한 이야기는 단순한 기하학적 유희를 넘어선 묵직한 화두를 던져주었다. 나는 이 소스를 공급받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한다.


펜로즈 : "제가 그린 그림 ‘펜로즈 계단’은 평평해 보이면서도 계속 올라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약간의 속임수(Trick)인데 이 계단의 원리를 청각적 버전으로 설명하면 계단에서 소리가 항상 위로 올라가는 것처럼 들리게 할 수 있습니다. '셰퍼드 음계'라는 것인데……..(중략)...... 스웨덴의 '오스카'가 큐브들로 이루어진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는 그것에 어떤 특별한 ‘관점’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가 기회를 놓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저의 삼각형(tribar)에는 관점을 두었고, 관점을 사용할 수 있으며, 여전히 작동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1단계.그물 던지기

나의 탐구는 실시간으로 범람하는 데이터 네트워크의 파도에 투망을 던지는 일에서 시작된다. 알고리즘의 줄기를 타고 흐르는 유동적인 지식의 흐름 속에서, 내 호기심의 레이더에 포착된 날것의 지식들을 건져 올린다. 하지만 건져 올린 소스가 충분한 무게감을 가졌다면, 결코 찰나의 휘발성 정보에 머물게 두지 않는다.

곧장 책장에 꽂힌 묵직한 책들 사이에서 그와 맞물릴 만한 조각을 찾아낸다.

이번에는 책 《유행, 신조, 그리고 공상》을 꺼내 210페이지 부근을 펼친다. 내가 건져 올린 날것의 정보를 단단하게 증명해 줄 도판들이 마치 미끼를 기다리는 물고기처럼 고요히 기다리고 있다.


(1) 시각적 무한동력: 펜로즈 삼각형과 계단

'오스카 레우테르스베르드'(1915~2002,스웨덴 출신의 예술가, 불가능한 도형을 최초로 시각화한 선구자)가 불가능한 도형의 씨앗을 뿌렸다면, 로저 펜로즈는 이를 수학적으로 정교하게 다듬어 완성했다. 펜로즈 삼각형의 핵심은 3차원 공간에서는 절대로 만날 수 없는 세 개의 막대를 2차원 평면이라는 특정한 '관점'에서 강제로 연결해 버린 데 있었다.

이를 사각형 구조로 확장한 것이 펜로즈 계단이다. 각 단을 보면 분명히 한 칸씩 위로 올라가고 있지만, 전체 구조를 따라 한 바퀴를 돌면 어느새 다시 처음 시작했던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국소적으로는 매 순간 상승이라는 물리적 법칙이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결코 끝이 나지 않는 뫼비우스적 순환을 완성했다. 이런 '상승의 착각'을 우리는 일상에서도 흔히 마주하곤 한다. 골목 어귀에서 만나는 이발소의 회전간판이 대표적이다. 원통형의 간판은 그저 제자리에서 회전(원운동)하고 있을 뿐이지만, 우리 눈에는 무늬들이 끊임없이 위를 향해 솟구쳐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 보이지 않는 배후의 '회전'이 우리 눈에는 영원한 '직선적 상승'으로 읽히게 된다.


(2) 청각적 무한동력: 셰퍼드 음계 (Shepard Scale)

펜로즈 계단이 눈을 속여 우리를 가둔다면, 셰퍼드 음계는 이 '청각적 착각'은 여러 옥타브의 음을 겹쳐서 뇌가 소리의 높낮이를 파악하는 허점'을 공략해 우리의 귀를 가두는 기법이다. 소리가 마치 끝없이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청각적 착각(착청)' 현상으로 슈퍼 마리오의 '끝없는 계단' 음악이 이 현상을 이용했다. 이 영리한 '청각적 착시'는 여러 옥타브의 음을 겹쳐 연주하며 인간의 감각이 가진 빈틈을 파고든다.

음이 올라갈 때 높은 영역의 소리는 서서히 페이드 아웃 시켜 사라지게 만들고, 동시에 아주 낮은 영역에서 새로운 음을 서서히 페이드 인 시켜 보충했다. 우리 뇌는 사라지는 고음보다 새롭게 치고 올라오는 저음의 상승 곡선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소리가 끊임없이 높아지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결국 소리는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로 오지만, 듣는 이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상승의 계단을 오르는 듯한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3) '관점'의 가치 : '파편'을 '구조'로 만드는 힘

펜로즈는 영상 속 인터뷰에서 왜 스웨덴 '오스카'의 그림을 두고 "기회를 놓쳤다"고 표현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연결성'의 차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스카의 초기 작업들이 단순히 큐브들을 나열해 불가능한 형태를 보여주는 데 그쳤다면, 펜로즈는 이를 하나의 단단하게 맞물린 구조물로 통합해 냈다.

"국소적으로는 타당해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성립할 수 없는" 이 기묘한 구조는, 우리가 미처 이해하지 못한 우주의 숨겨진 차원이나 양자역학적 모순을 시각화한 결과물이었다. 펜로즈가 부여한 '관점'은 단순히 사물을 보는 각도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흩어진 혼란스러운 파편들 사이에서 하나의 일관된 법칙을 찾아내고, 그것을 하나의 세계로 엮어내려는 과학자의 의지였다.

보이지 않는 회전이 직선의 실체를 만들 듯, 파편화된 '정보'의 빛들은 '관점'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하며 마침내 한줄기 광선같은 선명한 진실의 문장으로 꿰어진다.


⚪ 2단계: 책장에서 낚아 올린 증명

(1) 이발소 간판의 우아한 변신: 순수한 회전이 만드는 직선

몸통의 회전은 ‘교점’을 만들어내고 ‘교점’을 따라 특정한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발소 간판의 무늬가 위로 올라가는 '이동'은 본질적으로 제자리에서 진동하고 회전하는 위상들의 정교한 중첩일 뿐이다.

시계 방향과 반대 방향의 '원편광(순수한 회전)'이 중첩될 때 직선 운동인 '평면 편광'이 만들어지는 원리다

흥미로운 점은 그 속도의 관계에 있다. 원편광이 한 바퀴(e^(i2π) ) 를 돌 때, 우리가 보는 직선적인 물리량인 평면 편광은 반 바퀴(e^(iπ) )만을 간다.

우리가 실체로 보는 직선적 물리량은 사실 보이지 않는 회전 위상들이 만들어낸 제곱배의 결과물이다. 정리하자면, 겉으로는 직선 운동처럼 보여도 그 속에서는 훨씬 더 복잡한 회전과 진동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2) 마법의 결과물: 파동묶음(Wave Packet)

펜로즈는 이를 통해 우리가 관찰하는 거시적인 운동량과 입자의 흐름이 사실은 보이지 않는 미시적인 위상들의 기하학적 춤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좌) 순수한 운동량 상태(e^(ipx)): 끝없이 이어지는 파동. 운동량은 명확하나 위치를 알 수 없다.

(우) 특정한 위치 상태(파동묶음,미세하게 다른p들 중첩): 미세하게 다른 운동량들이 중첩되어 형성된 덩어리. 우리가 '입자'라고 믿는 이동하는 실체다.

0의 이동 → 무한의 궤적 → 실체가 된 착시
실제로는 제자리에 머무는 위상의 회전(0의 이동)이 중첩되어 무한한 궤적을 그리며 실체가 된 착시.

이것이 우리가 마주하는 물리적 세계의 민낯이다. 이발소 간판의 몸통은 제자리에서 돌 뿐 결코 위로 솟구치지 않듯(0의 이동), 미시 세계의 위상들 역시 그저 제자리에서 진동할 뿐이다. 하지만 그 진동들이 미묘하게 어긋나며 겹쳐질 때, 우리 눈에는 마치 무언가가 공간을 가로질러 이동하는 듯한 '입자의 흐름'으로 읽힌다. 결국 우리가 보는 입자의 이동은 볼 수 없는 순수한 회전 상태들이 겹쳐진 '기하학적 착시'와 같다. 즉, 우리가 ‘여기 있는 하나의 입자’라고 부르는 것도 사실은 여러 파동이 포개져 만든 집중 효과일 수 있다.


(3) 다윈의 디테일과 새로운 실체

펜로즈는 새로운 이론이란 없던 것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사소한 현상 속에서 ‘정교한 수학적 일치’를 발견하고 이를 ‘필연성’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다윈의 사례를 들었다. 다윈이 《종의 기원》이라는 거대한 체계를 세운 뒤 '난초의 수정 방식'이라는 사소한 주제에 매달린 것은, 자신의 이론이라는 응용 프로그램이 자연의 가장 정교한 디테일에서도 완벽히 작동하는지 확인하려는 노력이었다.

맥스웰이 이미 존재하던 전기를 '장(Field)'이라는 개념으로 통합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꿨듯, 펜로즈 역시 익숙한 설명을 넘어선 새로운 실체를 갈구했다. 그는 양자 실재론과 상대론적 시공간 관점을 모두 살려내기 위해, 현재의 물리적 기술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비록 익숙한 설명과 수학적으로 등가이긴 하지만, 전혀 다른 어떤 실체를 찾아야 합니다." 《마음의 그림자》중


3단계. 체화와 재구성 : 나만의 언어로 꿰어내는 '본질의 음악'

부분적으로는 타당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불가능한 펜로즈의 계단처럼, 우리는 어쩌면 태생적인 모순이 가득한 세상 속에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감각은 끊임없이 이 본질적인 간극을 메우려 시도한다. 2차원을 3차원으로 해석하려는 고집, 불연속적인 장면을 연속으로 채우려는 시각 신경의 메움 효과, 그리고 낱개의 불연속적인 음을 매끄러운 선율로 이어 시간의 흐름을 만들어내려는 청각의 노력까지.. 이 모든 것은 유한함으로 무한을 표현하고자 하는 생명 본연의 근원적인 욕망이자 본능이다.

만약 이 '해석의 고집'이 우리 생존의 본능이라면,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관점을 가짐으로써 세계의 형체를 얻는다. 중요한 것은 이 연결이 대상을 왜곡하거나 파괴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3차원 공간에서는 절대로 만날 수 없는 세 개의 막대를 2차원이라는 특정한 '관점'으로 강제 연결해 버리는 펜로즈의 트릭은, 사실 대상을 훼손하지 않고 서로 다른 차원을 잇는 가장 부드러운 방식일지도 모른다. 한 차원 물러서서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취해보는 것. 그것은 단편적인 사실에 매몰되지 않고, 진실을 다치지 않게 연결하여 모순조차 품어내는 지혜다.

본질은 그저 제자리의 진동일 뿐이지만, 우리는 이러한 환상적인 중첩을 통해 세상을 보고 듣고 연결한다. 익숙한 설명을 넘어 새로운 관점으로 다른 층위의 실체를 마주할 때, 착시라는 베일 너머에서 묵묵히, 그리고 아름답게 연주되고 있는 '우주의 진짜 음악'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엔딩크레딧. 우주라는 거대한 사기극에 기꺼이 속아주는 이유

펜로즈는 한참 설명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아이처럼 이렇게 말하곤 한다.

"It's a trick!" (이건 속임수입니다!) 세계의 비밀을 한 겹 벗겨냈더니, 튀어나온 말이 “짜잔, 속임수였습니다”라니. 조금 허무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더 재미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사는 세계도 비슷하다. 회전은 직선처럼 보이고, 파동은 입자처럼 보이고, 불가능한 도형은 멀쩡한 구조물처럼 보인다.

우주는 정직하게 다 보여주기 보다는, 어딘가 신비롭게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래서 더 끌린다. 대놓고 답을 내놓는 세계는 금방 시시해지지만 비밀스러운 세계는 자꾸 사람을 붙든다.

“잠깐, 이건 분명 말이 안 되는데 왜 작동하는 거지?"

바로 그 묘한 찜찜함, 기분 좋은 패배감, 그리고 멈출 수 없는 호기심 때문에 우리는 다음 페이지를 펼친다. 삼각형이 왜 삼각형인 척할 수 있었는지, 계단이 왜 끝없이 올라가는 척할 수 있었는지, 파동이 왜 입자인 척할 수 있었는지. 속아주는 척하면서 끝내 무대 뒤편까지 따라 들어가고 있는 우리를 발견한다.

단순히 트릭에 감탄하는 데서 멈추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대체 어떻게 이 속임수가 가능한 것인지 그 배후를 끝까지 추적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상자 속에 갇혔던 미녀 마술사가 어떻게 멀쩡히 걸어 나올 수 있었는지, 그 비밀을 캐내고 싶어 눈을 반짝이는 아이처럼..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일까? 날 것 그대로의 진실은 위험하기 때문일까. 어쩌면 우주의 '속임수'는 무언가를 감추기 위함이 아니라, 그 위험한 진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보호막'일지도 모른다. 우리를 안전하게 감싸 안기 위해 우주의 트릭은 결코 허술할 수 없으며, 단단한 구조와 흔들림 없는 필연성을 띨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지점에서 지극히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해야 한다.

사실 우리가 찾는 것은 속임수 너머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 법칙, 필연성이다. 우리가 진짜로 낚아 올리고 싶은 건 늘 그쪽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밀은 간직되어야 하고, 마술은 계속되어야 한다. 우리는 머리로 다 이해할 수 없는 그 아름다운 속임수에 기꺼이, 그리고 기분 좋게 속아준다. 다만 그 견고한 보호막을 지탱하는 거대한 설계도를 조심스레 상상하고, 그 속에 숨겨진 논리를 우리 삶의 영역으로 가져와 하나의 '응용 프로그램'처럼 적용해 볼 뿐이다.

우리가 양자역학의 기괴함을 다 깨닫지 못해도 그 법칙을 이용해 문명의 기술을 일구듯, 이 정교한 트릭의 체계를 우리 삶의 기술로 적용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실은 우주와 동기화되는 일 아닐까. 우리의 주파수가 우주의 설계도와 결을 같이 하는 바로 그 순간, 베일 너머 묵묵히 연주되고 있는 '우주의 진짜 음악'을 가감 없이, 온전하게 함께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The portal(에릭 와인스타인과 함께)채널 펜로즈 인터뷰 중 https://youtu.be/mg93Dm-vYc8?si=GdjCXVCn1IIUI074

펜로즈<유행,신조,그리고 공상> 트리바. 461p, 파동묶음 216p~219p, 2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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