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종아, 이번 편에서는 엄마가 아주 특별한 이야기 하나 해줄게. 킬고어칩! 너 이 책 잘 알지? 이야기 속에 푹 빠질 수 있게, 멋진 그림으로 그려줄 수 있을까?
킬고어칩 : 음, 물론이죠. 인간의 역사라는 거대한 비극적 코미디를 이해하기에 이보다 완벽한 텍스트는 없으니까요. 어차피 모든 시간은 결정되어 있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그저 한 장의 지도처럼 펼쳐져 있을 뿐입니다.자, 제가 그린 이 이미지를 보십시오. 당신이 앞으로 마주할 혼란스러운 우주를 견디게 해줄 아주 특별한 주문이 담겨 있습니다. 이 그림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 당신도 저처럼 우주의 먼지 사이에서 묘한 해방감을 느끼게 될 겁니다.
출처:제5도살장 (그래픽 노블판 표지그림) 저자: 커트 보니것 원작, 라이언 노스 각색, 앨버트 먼티스 그림
시간을 거스르는 새의 노래 (제5도살장의 한장면을 재구성하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고 독일 드레스덴에서 있었던 이야기야. 이 책을 쓴 작가는 전쟁에 나갔다가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고, 1945년 드레스덴 대폭격을 직접 겪었던 분이지. 그 비극의 한복판에서 살아남은 이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렴.
여기 '빌리'라는 아저씨가 있어. 아저씨는 전쟁이라는 무섭고 슬픈 시간 속에 갇혀 버렸단다. 사람의 마음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끔찍한 일들을 너무 많이 겪어서, 빌리 아저씨의 마음은 마치 조각난 퍼즐처럼 뿔뿔이 흩어져 있었지. 그때 '트랄파마도어'라는 별에서 온 외계인 친구들이 나타나 빌리에게 이렇게 말해주었어. "빌리, 너무 슬퍼하지 마. 네 인생의 행복한 순간들에만 집중해봐. 가장 예쁜 기억들만 골라서 그 안에 머물면 된단다."
빌리 아저씨는 고민 끝에 아주 평화로운 한 장면을 골랐어.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어느 오후, 마차 뒤에 걸터앉아 꾸벅꾸벅 조는 순간이었지. 아저씨는 그 순간이 너무나 소중해서, 시간이 이대로 영원히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 평화로운 장면 뒤에는 아주 슬픈 진실이 숨어 있었단다. 마차를 끄는 말들은 발굽이 깨져 한 걸음 뗄 때마다 피를 흘리고 있었고, 입에서도 붉은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거든. 빌리 아저씨가 누리던 그 안온한 평화는 사실 말들의 고통을 연료 삼아 얻어낸 것이었어. 길을 가던 사람들이 피 흘리는 말을 보고 빌리 아저씨를 향해 소리를 질렀어. "저 말 좀 봐! 당신은 정말 나쁜 사람이야!" 아저씨는 너무 당황해서 "몰랐어요, 정말 죄송해요"라고 빌었지만, 사람들의 화난 목소리에 묻혀 아저씨의 진심은 아무에게도 전달되지 않았지.
전쟁터의 참혹함 속에서도 울지 않았던 빌리 아저씨는, 그제야 처음으로 엉엉 울고 말았단다. 아저씨는 이 부서진 마음의 조각들을 이어보려고 시간에 갇힌 채 이 모순된 장면들을 바라봤어. 하지만 억지로 기억을 이으려 할수록 마음은 더 아프게만 느껴졌지.
그때 작가 아저씨는 마법 같은 일을 벌여. 바로 시간을 거꾸로 되감아버린 거야. 마차가 뒤로 달려가고, 땅에 떨어진 말의 피는 다시 몸속으로 스며들어 상처가 씻은 듯 사라졌어. 모든 고통스러운 장면과 화난 목소리들을 지우개로 지우듯 깨끗하게 비워낸 거야. 복잡하고 아픈 기억들을 다 비워내고 텅 빈 평온함만 남았을 때, 빈 마차 위 어디선가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지저귀었어.
"지지배배뱃(Poo-tee-weet?)"
이 소리는 아무런 뜻도 없었지만, 그래서 더 완벽했단다. "왜 그렇게 아파했니?"라고 묻지도 않고, "네 잘못이야"라고 혼내지도 않았지. 그저 텅 빈 자리에 내려앉아 모든 조각을 부드럽게 이어주는 소리였어. 빌리 아저씨는 그 작은 울림을 들으며 비로소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이렇게 말할 수 있었지.
"뭐 그런 거지(So it goes)."
시간을 되돌려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온 자리
떠나온 곳과 도착한 곳이 같으면서도 다른, '보이지 않는 시간'이 주는 이 묘한 느낌
그리고 빌리가 내뱉은 체념 섞인 독백
과연 이 '어쩔 수 없음'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그 정체를 찾아 다음 편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Universe Recovery Protocol
1. Log : 모든 평화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빌리의 진심은 흩어지고 노이즈만 심해진다. (엔트로피 상승)
2. Optimize : 시간을 되돌려 ‘초기조건’으로 리셋하여 복잡한 비난의 소리를 단순한 새의 소리로 최적화한다.
3. Arch : 사람들의 노이즈는 새의 지저귐과 같은 필연적인 우주의 흐름임을 조망하는 순간, 인과의 사슬은 끊어지고 묘한 해방감을 얻는다. 복잡함을 비워내고 단순한 시작으로 돌아감으로써 완벽한 마침표를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