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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구나무 May 31. 2022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누구나 한 번쯤 섬을 꿈꿔본다. 세상에 지치고 사람에게 질려서, 홀연 듯 살던 곳을 떠나고 싶을 때, 섬을 떠올리곤 한다. 갈만한 곳이 있을까. 한 달이라도 머물만한 섬이 있을까. 또는 운명처럼 여생을 지낼 섬을 만날 수 있을까. 굳이 제주도가 아니라면, 방축도는 꼭 한 번 둘러볼 만한 매력을 지녔다.  

          

방축도(防築島)라는 이름은 바람과 파도를 막는 역할을 한다고 해서 붙여졌다. 횡경도부터 방축도, 광대 섬, 명도, 보농도 그리고 말도를 잇는 횡렬의 열도는 고군산 안쪽에 있는 선유도나 무녀도를 지키는 울타리처럼 자리했다. 흔히 무산 12봉으로 불린다. 덕분에 겨울철 차가운 북풍과 사나운 파도에도 안쪽 바다에서는 김 양식이 가능하다. 섬에 들려면 배가 드나드는 방축구미 포구를 거쳐야 한다. 성벽처럼 포구를 둘러싼 높은 방파제가 태풍이 몰아치는 계절 만만찮은 섬살이를 짐작케 한다.      


마을로 이어지는 길은 발전소가 있는 방축구미 포구에서 시작한다. 섬 주변 풍광을 살피려면 능선을 따라가는 트래킹 코스가 따로 있다. 포구 바로 뒷산 정상까지 반듯하게 넓혀놓은 길이다. 오래전 봉수대에 있던 자리에 지금은 통신탑이 세워져 있다. 하지만 섬마을 사람살이를 가까이 느끼려면 마을 길이 좋다. 어떤 길을 먼저 선택하던 길을 잃을 일은 없다. 섬 안의 모든 길은 포구로 되돌아 나온다.       


남쪽 해안으로 솟은 봉우리 두어 개가 작은 골짜기와 소박한 장불을 이루며 사이사이 집들은 너무 드러나지도 아주 감춰지지도 않았다. 드문드문 전봇대가 전깃줄을 이어가는 길은 옛날 우물터와 마을 정자며 교회도 빠뜨리지 않았다. 차량 하나 지날 만큼 여유로운 마을 길은 꽃길이다. 음력 보름과 그믐에 맞춰, 한 달에 두 번 동네 부녀회원들이 정성스레 가꾼다고 한다. 벽화가 그려진 담장에도 꽃은 피었고 섬 주변 풍경이 담겼다. 인사를 건네거나 길을 묻는 이방인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친절했다. 묻지도 않은 이야기까지 덤으로 보태졌다. 방축도 명물인 독립문바위나 얼마 전 개장한 출렁다리 말고도 길 숲에 숨은 고인돌이며 애써 가꾼 동백숲에도 들러보라고 권한다. 걷기 좋은 섬, 살기 좋은 마을로 유명세를 타며 주말이면 일부러 섬을 찾는 발길이 늘었다고 한다. 따로 숙박업소는 없지만 몇 집 민박을 치는 집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흥정을 해 보지 않았지만, 바가지 쓸 걱정은 안 해도 될 인심이다.     


방축도 발전소는 1997년 1월에야 비로소 지어졌다. 이전까지는 경운기를 연결한 발전기를 돌려 초저녁부터 자정 무렵까지 겨우 불 밝힐 만큼 전기를 썼다. 지금은 집집마다 냉장고를 24시간 돌리고 있다. 이웃한 명도와 말도까지도 송전하고 있다. 육지에서 섬을 찾는 외지인은 당연시 여겨지는 것조차도 오랜 섬살이를 겪어온 노인들에겐 전기도 없이 살아온 세월이 더 길다. 그랬던 섬사람들조차 이제는 전기 없는 생활을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세상이 변했다. 물론 영화관이나 짜장면집 하나 없고 제때 배달되지 않는 부탄가스 때문에 불편을 겪기도 한다. 정기적으로 보건소 직원들이 직접 찾아와 약을 배급하고 있어도 급할 때 병원이나 약국을 찾으려면 배를 타고 육지까지 나가야 한다. 그래도 물을 얻어 마시려고 찾아들었던 민박집 칠순 내외는 아직 섬을 떠날 생각이 없다고 한다. 좀 더 나이 들어 병이 들거나 혹시라도 홀로 남겨지게 된다면 몰라도.      


방축도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전해지는 말로는 장보고가 바다의 패권을 쥐고 있었을 당시 길을 잃고 표류했던 당나라 선원들이 머물렀다고 한다. 하지만 뿌리를 내린 것 같지는 않다. 1928년 6월 29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는 방축도가 무인도라고 했다. 기자는 고군산 열도 순례 중 일부러 방축도를 찾는데, 제주에서 왔다는 해녀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늦은 봄부터 움막을 짓고 지내며 섬 주변에서 전복과 해삼을 잡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도 채집 철이 끝나는 이른 가을이면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고 겨울 섬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미루어 짐작컨대 방축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기껏 백 년도 안 된다. 술자리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로도 고군산 일대 주민들이 조상 무덤을 쓰려고 찾았던 섬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섬에는 알게 모르게 눈에 띄는 무덤들이 적지 않다. 경사진 터를 일군 밭 가장자리에 모셔진 봉분도 있지만, 사연을 짐작하기 힘든 고인돌 무리도 50여 기가 넘는다. 대부분 도굴꾼의 손을 탄 지라 무덤의 주인이며 연대를 짐작할 만한 무엇 하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축도 생끄미 마을은 행정안전부가 주최한 ‘2009년 참 살기 좋은 마을 가꾸기’ 전국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보도자료를 통해 군산시는 섬이라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주민들 손으로 직접 일군 점과 마을의 설화를 바탕으로 스토리텔링 벽화를 제작한 점이 높이 평가받았다고 설명했다. 웬만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았던 생끄미 달샘을 모티브로 달마중 항아리탑을 세우고, 동백숲과 어우러진 동네 숲도 주목을 끌었다. 이듬해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도 받고, 환경부로부터 자연생태우수마을로 지정되기도 했다.      


섬에는 젊은 사람이 드물다. 섬에서 나고 자란 발전소장처럼 50대 중반 또래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 주민은 노년을 지내려고 섬을 다시 찾은 사람들이다. 방축도가 다시 젊어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지만, 참 따뜻하고 푸근한 인정을 품고 있는 섬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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