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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이브 Oct 31. 2024

조명이 꺼지면 관객도 떠난다. 런웨이는 삶의 요약본

조명이 꺼지면 관객도 떠난다. 런웨이는  삶의 요약본


<글제목의 풍경은 인도네시아 롬복에서 가까운 길리섬의 모습. 올 9월>


주 2회의 워킹 강습은 배움에 대한 애착을 끈끈하게 유지하도록 만들어 준다. 그동안 시간의 압박 때문에 요가를 중단했고 다른 시작은 엄두도 못 내고 있었는데 모델워킹 수업에 큰 애정이 가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주 2회 만나고 2시간씩을 채워가다 보니 연습이 부족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2시간의 강습시간은 수강생들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준다. 런웨이를 하고 돌아오면 이제야 안면 트기를 시작한 회원들이 박수로서 응원을 해 준다. 동작 하나씩을 빼먹고 머쓱해져서 돌아오다가도 다시 도전하는 용기를 얻는다. 실수를 만회할 시간이 있다는 것이  2시간 강습의 매력이라고 여겨진다. 모델워킹은 몸으로 하는, 운동 그 이상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야 기본이고 멋지게 하고 싶은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      

연습중의 한 장면

모델의 평가기준은 퍼포먼스와 워킹맵시와 자신감 있는 태도에 있다.

수업 영상 속에서 나는 헤매고 무안해서 어쩔 줄 몰라한다. 그러니 어제 했던 포즈를 한번 더 생각해 보는데 갈수록 오그라들게 되고, 처음에 가졌던 근거 없는 자신감이 뚝뚝 떨어져 나간다.      

오늘 수업의 하이라이트는 정지동작을 정교화 하는 것으로 물 흐르듯 진행되던 동선을 잠시 멈추고 발걸음과 턴에 초점을 맞추었다.


턴을 할 때는 오른발로 출발해서 5를 셀 때 오른쪽으로 돌아라! 

발걸음 하나에 온몸과 마음을 담아라! 


걷고 돌아서는 그 동작 하나를 강사님이 수십 번을 보여주신다. 한걸음 한걸음에 응축된 그녀의 삶이 나타난다. 온몸으로 그녀의 직업정신이 드러나고 가르침의 진중함이 전해진다.

 어디서든, 발하나 내딛는 것에도 마음을 실어야겠다는 생각에 미친다.   

마음의 자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속도 조절이다. 정신을 차려보면 이유도 모르는 채 급하게 앞사람 뒤를 따르고 있는 내가 보인다. 속도 경쟁 종목이 아닌 데도 따라가기에 급급해있다.       

동작을 틀리거나 빼먹거나 스텝이 꼬이지 않으려면 나만의 속도 조절이 필수다. 기록경기가 아닌 모델워킹에서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운영하는가의 문제임을 말해준다. 가끔 런웨이 무대에서 힐 굽이 부러졌을 때 대처하는 모델의 행동이 화제가 될 때가 있었다. 나머지 한 짝마저 벗고 맨발로 완주하는 모델도 있고, 없는 한 짝까지도 있는 듯이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는 모델도 있었다.

연습중의 한장면

귀를 기울여 들으면 핵심은 ‘답이 없다’에 있다. 기본기를 익히고 나면 나머지는 각자의 운영 능력에 달려있다. 가장 잘 드러내는 사람이 모델인 것이다. 자신감이 되든지 아름다움이 되든지 퍼포먼스가 되든지, 그것들은 유기적으로 하나로 묶여 완성도 있게 무대에 올려진다. 어설픈 모델일수록 옆 사람에 맞추느라 긴장하지 말고, 내 방식을 찾아야 한다. 


무대는 '다시 한번 더'의 기회가 없다. 음악도 조명도 꺼지면 관객도 떠난다. 런웨이는 삶의 요약본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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