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하늘이 이쁘더라고요
봄이 여름으로 변화할 적의 하늘이 좋다. 맑은 푸른빛은 보이지도 않고 탁한, 연분홍색 계열의 그 하늘이 좋다. 어릴 적 추억인 삼색 마시멜로우가 고개를 들면 떠오르게 된다. 그 하늘로 몸을 던져 구름 하나하나를 떼어먹고픈 충동이 들었다. 그래서, 영혼이 되었다. 혼이 되어 둥둥 떠 다니는 구름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지나가는 비행기가 망쳐둔 길을 조립할 수 있게 되었다.
영혼이 되어 역시 가장 좋은 점은, 나와 같은 풍경을 바라본 그 사람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거다. 옥상에서 닿을 수 없는 것을 바라보았을 때, 그가 늘 하는 말이 있었다. 내가 저기에 속해 있다면 어떨 것 같아? 그의 말을 해석할 수가 없어 당돌하게 물었다. 죽고 싶은 거야? 그는 하늘을 비추던 눈동자로 내 모습을 담아낸다. 그의 눈에 구름이 어려 놀랍도록 투명해 보여 곧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의 허리를 꽉 껴안아 구름으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붙잡았다. 안 돼, 너 말곤 누가 나랑 같이 옥상에 와주겠어. 내 웅얼임을 들은 그는 그저 하하.라고 말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 하하가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그는 내 옆에서 사라졌다. 죽음으로서 사라진 것이 아닌, 바람을 피운 것이다.
미친 새끼. 욕을 했다. 비속어로 정해져 있는 말이란 말은 다 내뱉었다. 노래방에서 비비의 나쁜 놈을 불렀고, 술에 취해 온갖 이별 노래를 부르며 소음으로 집에서 내쫓길 뻔했다. 바람피울 거였으면, 그럴 거였으면 왜. 대체 왜 그런 건데. 왜 나를 그렇게 쳐다봤는데. 마지막으로 본 그의 투명한 눈동자를 기억한다. 이제 와서야 깨달았다. 그는 나를 바라보는데 어째서 구름이 비쳤던 걸까.
에라 나쁜 놈. 하늘은 뭐고 쥐 나 보이지 않으면 다행일 우리였던 나의 집에서 고민에 잠긴다. 내가 저기에 속해 있다면 어떨 것 같아. 내가 어떻게 알아. 바람이나 피우는 주제에 왜 그런 말을 해 사람을 신경 쓰이게 만들어. 마신 알코올들이 쌓여 나를 울음으로 내몰았다. 어깨를 들썩이면서 엉엉 소리를 내었다. 소중한 장난감을 잃어버린 어린아이처럼 서럽게 울었다. 우리가 같이 지나온 세월은 강산마저 변하려고 했는데. 그런 사람을 한순간에, 홀연히 잊어버리는 게 어디 쉬운 일일까. 그놈은 쉽게 해낸 것 같다는 생각에 나의 처지는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잔에 소주를 따랐다. 아직도 옥상에서의 나날을 기억한다. 우리가 처음 본 것도 그 옥상, 높은 층수에 떨어지면 바로 재가 되어 버릴 것만 같던 그 옥상이었는데.
옥상은 하얀 내부와는 달리 엽록체들의 활기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바람이 불면 산산이 흔들리는 잎사귀들을 보며 가볍게 훑어냈다. 손에는 정원사의 노고가 어려있는 물방울이 담겼다. 이것들이 나를 회복시키는 것만 같아 나는 이 행위를 즐겨했다. 치료를 받고, 검사를 받아 침대에 누워 있을 시간이 되면 반드시 이 옥상에서 시간을 보냈다. 병원에선 도무지 볼 수 없는 풀들의 어떤 명량함이 모두를 매료시킨 모양이다. 나를 제외하고도 이 옥상을 찾는 사람은 꽤 많았다. 병들어 겨우 발을 내 디던 어떤 할아버지께서는 이 옥상에 있으면 하늘 위에 궁전에 온 것 같다고 하셨다. 나는 그 말에 동의했다. 철창에 가로막혔지만 조금만 외부로 다가가면 보이는 수많은 건축물들이 세상을 내려다보는 절대자의 시선을 체험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개미처럼 지나가는 정수리들을 보며 우월감이 발에서부터 짜릿하게 올라왔다. 그런 내가 싫었다. 남을 보며 미소를 짓는 것은 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처음 봤을 때의 그는 범죄자와 다름없었다.
무언가가 느껴지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면, 그는 언제나 나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미소는 웃음을 매개로 삼아 나를 조롱하는 것만 같았다. 살아오면서 많은 시선을 겪었지만 우호를 경험한 적은 없었기에, 무서워졌다. 어떤 동공이 나를 뚫는 게 느껴진다면 바로 화장실로 뛰어가 맹물 세수를 했다. 손의 물기를 닦고 나오는 길에 그가 내 번호를 땄다. 계속 지켜보았는데. 너무 연락하고 싶어요. 스토킹을 했다는 말을 부드럽고 나긋나긋하게, 듣기 좋은 목소리로 내뱉는 그의 모습에 순간 소름이 돋았다. 아무 근육도 움직이지 못한 채로 식물인간 같이 눈만 껌뻑였다. 그는 자신의 핸드폰을 내 명치로 들이밀었고, 나는 불복종에 반대하던 지난 세월처럼 홀린 듯이 내 번호를 작성했다. 왜 그랬어 멍청이야. 병실의 침대에 눕기 무섭게 핸드폰에 알람이 왔다. 그는 내게 계속 연락을 해왔고, 처음으로 겪는 남자의 연락에 조심스럽게 경계를 풀어나갔다. 그 다음날 그를 다시 마주했고, 큰 키와 훈훈한 외모가 보였다. 서로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그의 미소에는 오로지 눈부신 호의만으로 가득 찼었다는 걸 알게 된 바로 그날, 우리는 입을 맞췄다.
우리의 위에는 달빛이 떠 있었고, 구름의 혼은 보이지 않았다. 옥상에서 풀과 벌레 우는소리를 맡으며 우리는 눈을 감았다. 그는 내가 처음으로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우리는 모든 일과를 함께 했으며, 옥상에서의 잡담은 치러야 할 의식과도 같았다. 벤치에 앉아 손가락 지문을 마주 보고 해가 질 때의 노을빛을 분석했다. 저 정도면 주황색인가. 뭐 노랑에 가깝지 않나. 의견이 다를 때엔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눈동자에 비친 색을 말하기로 했다. 내가 이 색기야. 그도 이 색기야.
얼굴에 침이 튀길까 급하게 고개를 돌려 웃음을 토해냈다. 동시각에 비슷하게 내뱉은 이 색기들은 우리가 얼마나 잘 맞는지 증명하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며 우호가 담긴 미소를 지었다. 사랑을 받는 것만 같았다.
그가 퇴원을 하자 나도 질세라 퇴원수속을 마쳤고, 그가 속해있는 환경이 나의 완성이라는 듯이 내 몸은 원래의 상태로 돌아왔다. 우리는 당연하게도 늘 함께 해야 했으므로 각자의 조건에 적당히 맞춘 집에서 동거를 하기 시작했다. 조건은 대부분 돈이 차지한지라 좋은 집이라고 말할 순 없었지만, 우린 만족하며 살아갔다. 매일 행복할 수 있으니까.
우리의 직업은 프리랜서로 마땅한 일이 없는 날에는 여행을 다녔다. 온갖 건물의 옥상에 올라 다양한 하늘 풍경을 보며 우리는 늘 그렇듯 입을 맞췄다. 서로를 붙잡은 손이 영원할 것이라고. 그와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언제였나 교회에도 갔었다. 우리의 운명을 이어준 것이 신의 은총 일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구원이 아니라면 말이 안 되는 사이였으니까. 교회 맨 구석에서 입을 맞춘 다음날 그의 친구가 그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내게 알렸고. 내가 아닌 그가 먼저 헤어지자고 말했다.
잔을 비웠다. 알코올이 내 식도와 위장을 타들어가게 만들도록 내버려 뒀다. 그러지 않았다면 선명하게 보이는 그의 흔적이 이 집을 태워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모르는 행인에게 찍혀진 우리의 추억들이 걸려 있는 냉장고를 보았다. 그 사진들을 소중하게 쥐어서 찢고, 밟으려고 했다. 나를 홀려낸 그 미소를, 모든 것을 알려준 그것을 차마. 차마, 아아, 그저 쌓인 먼지를 손으로 잎사귀를 만지듯 부드럽게 털어냈다. 상실감과 절망을 대신한 엄청난 격양이 전두엽으로 쏟아지듯 폭발했다. 반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른 것처럼 그와 지내온 증거를 없애 버리고 싶어졌다. 가장 먼저 거대하고 멍청한 증거인 나를 처분해야만 한다.
이런 상황에 오니 그의 마지막 말이 들렸다. 내가 저기에 속해있다면 어떨 것 같아?
그것은 그의 인생의 짧은 신음이었던 거라고, 이제 와서 생각했다. 죽고 싶은 거야? 이어진 웃음소리의 의미를 억지로 무시한 나의 어리석음을, 한 번도 바람을 눈치 못 챈 무지함을 조롱하며 그날의 그와 똑같은 온도로, 같은 습도로 내뱉었다. 하하.
봄이 여름으로 변화할 적의 하늘을 보았다. 맑은 푸른빛은 보이지도 않고 탁한, 연분홍색 계열의 그 하늘을 보았다. 가볍게 마시멜로우를 떠올리며, 나는 영혼이 되었다. 하늘 위로 붕 떠올라 그의 모습을 보았다. 얼마나 잘 지내고 있으려나, 깃털같이 가볍게 져버린 나의 세상을 지탱할 정도는 돼야 될 것이다. 그래야 가까스로 용서해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사랑받았을 미소를 한 그를 다시 보았다.
아주 그는 잘 지내고 있었다. 나보다 젊고 아름다운 여자와 오붓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사실 그가 죽을병에 걸려 거짓말을 치고 내 곁을 떠난 게 아닐까,라고 마음 구석에 희망을 두고 있었었다. 하지만 너무나 정직한 사실을 맞이했을 때. 나의 영혼은 일렁임을 멈추고 차갑게 식어만 갔다. 그가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더 비참해졌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날 잊은 채로 저 여자와 입술을 비비며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나는 그렇게 좋아하던 하늘에 붕붕 떠 그 장면을 지켜보기만 해야 할 것이다. 하하.
복수는 살아있는 자의 축복이다. 한낮 영혼은 남을 해칠 수 없다.
그들에게서 멀어져 눈 부신 마시멜로우 하늘을 보았다. 너는 사라지고 싶었던 게 아니라 새로운 여자랑 이 하늘을 보고 싶었던 거잖아. 나의 일부였을 알코올을 토해내어 그가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허그하는 장면을 불태워버렸다. 다 죽자. 모든 것이 허무하게 사라질 것이다. 내 연애와 마찬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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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야, 어디서 탄 냄새나지 않아?
마시멜로우 굽고 있어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