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가해자들은

내 언니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by 김치장

언니.

언니. 언니.


응급실에 가서 언니의 이름을 간절히 외웠다. 언니.

그러니까 제발 살아줘.


그러나 나의 언니는 죽었다. 28세라는 나이에 나만을 키우다가 죽었다. 히터와 에어컨도 필요 없어 전기세 걱정 없는 화창한 봄에, 언니는 교통사고로 죽었다. 뉴스 속보에 언니가 짧게 나온 후에 기상 캐스터가 다음 주 벚꽃이 만개할 것임을 알렸다.


그렇게 흩날리는 꽃잎 아래서 언니의 장례식을 치렀다. 향을 피웠고, 절을 드렸다. 유일한 유가족이자 조문객인 나는 상주의 예를 따라 울음을 삼키기도, 조문객으로서 통곡을 하기도 했다. 생전 언니는 그 누구라도 개인적으로 만나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장례식은 오직 나 하나로 가득 찼다. 기다란 식탁에 육개장 하나가 올라왔다. 그 옆에 소주잔 하나가 가득 채워졌다. 앞으로 하나일 것들을 바라보았다. 내일은 언니를 태우는 날이다.


뜨거웠다. 나를 안아주던 언니의 작은 품이 내게로 안겼다. 잘 모셔가십시오라고 언니를 준 직원에게 헛구역질을 했다. 죄송합니다. 내 안에 담긴 언니를 내려다보았다. 이 가루 덩어리를 과연 우리 언니라고 부를 수는 있을까. 언니를 납골당이나 납골묘에 매장하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지만, 그냥 언니를 집에 가져왔다. 늘 언니는 밖을 무서워했으니까.


언니의 침대에 껍데기를 두었다. 아니다. 언니가 항상 앉아 있던 그 위치 그대로 언니를 세웠다. 언니가 움직이는 듯한 소리가 난다. 이 쪽이 마음에 드나 보다.


한동안 가만히 언니를 지켜보았다. 이 하얀 껍질에서 나와 요리를 하던 손으로 나를 반겨줄 언니가 떠오른다. 언니를 화장했을 때의 구름처럼 뭉개 뭉개 둥실둥실.


이내 정신을 차렸다.


우리 언니를 죽인 가해자를 봐야 한다.


법원 재판소에 갔다. 우리 언니를 차로 뻥 친 가해자는 그저 울고 있었다. 죄송하다는 소리를 연신 반복했다. 판사가 가해자는 초범이며 죄를 인정했고 반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벌금으로 천만 원을 내렸다.


통장에 내뱉은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의 값인 천만 원이 찍혔다.

내 통장에 4억 천만 원이 들어있다.


모든 보험을 합쳐서 저 돈을 수령받았다.


헛웃음을 지었다.


언니, 언니가 평생 겨우 벌 돈을 이렇게 쉽게 받았어.


그야말로 언니의 평생이 통장에 찍힌 거라고.

언니는 항상 나를 배려해 주었다. 지금도, 삶의 난이도를 낮춰주는구나.


어릴 적 하나밖에 없는 장난감을 나에게 매번 양보하던 언니를 생각했다.


항상 제대로 된 양육자는 필요한 법이야, 내가 되어줄게. 이가 빠져 새는 발음으로 아장아장 걷듯이 언니는 말했다. 초등학교 2학년, 언니는 5학년에 불과한 나이였다.


이제는 먼 날에 노란 장판에 누워 색칠놀이를 하던 우리에게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한때 잘 나갔던 그들은 사업에 실패하자, 알코올 중독 부부가 되어 새끼를 낳으라고 보채는 사육사처럼 변해갔다.


나가서 돈 벌어 와. 밥 값을 하라고. 하다 못해 밤 일이라도 하란 괴성을 지르며 아, 아파. 아파요. 그들은 우리에게 채찍처럼 문제집을 휘둘렀다. 주된 타깃은 언니였고. 아파, 나는 옆에 서서 종아리를 얻어 아, 아파. 맞는 정도였다. 펄럭이던 종이 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어느덧 중학교 1학년이 된 나에게 언니는 같이 집에서 도망치자고 했다.


언니는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매일같이 설거지를 하거나 물품을 날랐다. 손에는 상처들이 나날이 떠오르고 있었다. 약 좀 바르고 다니라는 내 말에 언니는 약만큼의 사치품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 말을 하는 주제에 내가 감기에 걸리거나 한 날은 무조건 전복죽을 사서 손수 떠먹여 주었다. 그런 언니의 헌신을 보며 나는 공부에 매진했고, 기적적으로 한국대에 전액장학금으로 입학했다.


그렇게 우리는 불쌍한 가정폭력 피해자에서 사회인으로 탈바꿈했다. 내가 대기업에 취직하여 은혜를 겨우 갚아 나가고 있었을 때, 언니는 몸에 겨우 안정을 주기 시작했다. 할 일이 없어진 언니는 양모펠트나 뜨개질로 언니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양모펠트 핀으로 팔을 자꾸 찌르는 것 말고는 우리는 아무 문제 없이 지낼 수 있었다.


몇 개월 뒤 번 돈으로 햇빛이 잘 드는 집으로 이사를 갔다. 에어컨 좀 틀고 지내라고 말해도

전기세 많이 들잖아, 나는 괜찮아라고 언니는 늘 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럼 나는 회사에서 블루투스로 에어컨을 켰다. 언니도 내심 좋아했을 것이다. 그렇게 언니는 사람의 권리를 누리며 살게 된 지 겨우 5년 만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된 것이다.


겨우 행복해졌는데.

언니도, 나도.


비가 미친 듯이 쏟아졌던 날,


고통에 몸부침 치면서 죽어갔을 언니를 떠올렸다.


사고 현장에는 감자와 당근이 널려 있었다. 자살이 아닌 사고사라는 중요한 증거를 남긴 그것들과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죽었다. 배달을 시키라고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 배달비 조금 아끼겠다고 언니는.


오늘 저녁에 맛있는 카레 해줄게, 일 끝나면 연락해 줘. 그 말을 마지막으로

손에서 벗어났을 언니의 핸드폰에 마침내 전화음이 끊어지고 내가 맞이한 목소리는,


가해자의 것이었다.


아, 핸드폰에, 전, 전화음이, 울리 길, 아. 정체불명의 괴음을 내뱉고는. 죄송합니다. 일단, 신, 신고는 했, 아아. 아.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기로 와주, 와주셔야 될 것 같아요, 아. 으. 여기, 주소, 주소가.


길을 따라 빗 속을 누비며 뛰어갔던 밤을 기억했다.

끈적하고 불쾌한 날이었다.


보험금 조금을 인출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소파에 기대 눈만 껌뻑이다가, 아무 말 없이 머리와 털을 뽑기 시작했다. 집이 너무 적적하다. 언니의 접시 달그락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밤을 지새웠다. 눈을 감으면 응급실 냄새와 품에 안긴 가루의 흔들림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손에 끼인 머리카락을 빼내어 문질렀다. 이게 언니의 손이라도 되는 듯이 어루만졌다. 이제야 비로소 실감이 났다. 앞으로 언니 없는 삶을 나는 이어 가야 하는 건가. 내려온 명치의 짐이 훅 꺼져 날 구성하던 뼈들이 조각이 났다. 조각에 조각이 되어 내 모든 것이 하얀 가루가 되자 눈을 번쩍 떴다. 어서 와,


상처로 꾸며져 있는 손으로 요리를 하던 익숙한 목소리였다. 오늘은 뭐 하고 지냈냐고 물으며 나는 카레 한 수저를 뜰 것이다. 내 동공 가운데에는 움직이는 입이 비치고, 저녁의 소소한 행복을 우리는 느낄 것이다. 그러나 집에 차가 날아와 조각이 났다.


언니를 잃은 지 며칠이 지난 상태로 꿈에서 깨었다.

깊은 잠에 들었었다.


창문 밖에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창문 밖으로 다가가 소리를 질렀다. 닥쳐. 닥치라고. 닥쳐. 언니가 아닌 것이, 그저 조류 따위가 집에서 지저귀었다. 언니는 아무 소리도 못 내고 상자 안에 갇혀 있기만 한데. 저것은 소리를 냈다. 닥치라고. 닥쳐. 미친 듯이 소리쳤다.


목이 쉴 때까지 고함을 내질렀다. 이내 창문을 닫고 흐느꼈다. 아, 아아. 아. 내 행동에 지쳐 베란다에 누웠다. 널려있는 언니의 옷들이 보인다. 옷을 잡아 내 몸에 겹쳐두었다. 차가웠다.


그러고 일주일이 지났다.


일어나서 씻고, 밥을 먹고, 근무를 했다.


나는 이성을 되찾았다.


나는 정상적으로 살아가야만 했다. 언니의 상실에 허덕여선 안된다.


우리를 성공으로 이끌어준 일에 나는 집착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나는 커리어우먼이 되었고, 사회에서 더욱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승진도 했다. 회사 동료들이 내 승진 축하 파티를 벌였다. 여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고기를 구웠다. 하하, 웃으면서 잔을 부딪혔다. 파티를 즐기는 동료들 사이를 빠져나와 역겨운 고기육을 게워내고, 자 마십시다! 상사가 말하자 배를 술로 다시 채웠다.


일을 했다. 머리가 오직 일만으로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요즘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니. 조금은 쉬면서 해도 괜찮다고 상사가 말했다. 아닙니다. 일이 적성에 맞는걸요. 내 대답에 만족한 듯 상사가 어깨를 토닥였다. 야근을 했다. 프로젝트를 성사시켰다. 다시 파티를 벌였다. 잔을 부딪히고, 나는 링거를 맞았다.


동료들이 파티 중에 내가 실신했었다고 말했다. 윗사람에게서 내려진 휴식 명령으로 내 일이 강제로 멈춰졌다. 병원 침대에 누워 일주일 간 하얀 죽을 먹어야 했다. 언니를 잃은 지 정확하게 4개월이 지난날이었다.


상사에게 저는 괜찮다고, 제발 일을 달라고 졸라봤지만 안된다는 이메일들만 받았다. 더 이상 물어보면 징계 먹일 거야. 회복하고 돌아와. 이 상황이 제게 징계 처분인데도요. 일주일 동안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머리가 텅 비었다. 그동안 최선을 다해 외면했건만 결국,


옆에 언니가 있었더라면 내 손을 잡아줬을 텐데. 늘 그랬듯이 내 입에 전복죽을 떠먹여 줬을 텐데. 언니가 보고 싶다. 언니가 미친 듯이 보고 싶어졌다.


억지로 무시해 온 언니라는 파도는 내게 해일로 들이닥쳤다.

어째서, 우리에게만 그런 불행이 벌어진 걸까.


아주 뒤늦은 절망이었다.


마른세수를 하고 정신을 차렸다.


심리적 구렁이에 빠진다고 좋은 점은 그 아무것도 없다.

내가 분노했다고 돈 주는 이도 없다.


이 열을 식힐 수 있는 게 무엇이 있나, 업무에 바빠 잊고 있었던 핸드폰을 오랜만에 열었다. 폰 화면에 쌓인 문자들을 정리했다. 집세, 대출, 스팸, 그리고


낯선 번호가 쌓은 장문의 글들.


호기심에 압도되어 메시지를 눌렀다.

그래, 실수였다.


그것은 믹스커피처럼 내 이성을 녹아내렸다.

내 폰화면을 뒤덮은 텍스트들은,


우리 언니를 죽인 손으로 쓴 것이었다.


가해자는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정말로, 죄송하다고. 미친 듯이, 죄송하다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죄송을 모아내어 메시지 창을 가득 채웠다.


비를 뚫고 도착한 현장을 떠올렸다. 경찰들은 가해자의 울음을 달래고 있었었다. 너무 울길래 유족인 줄 알았다고 했다. 정작 나는 멀쩡하게 서있었는데, 나는 내 마음껏 울지도 못했는데.


언니를 죽여놓고도 뻔뻔하게, 나와 언니의 절망을 가져간 것이다.


가해자는 잠에 못 든다고. 꿈에 그 장면이 나와서 너무나 괴롭다는, 전혀 쓸모없는 사실을 내게 알렸다. 정말 죄송해요. 제 실수가 이렇게 큰 구시렁구시렁.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제가 정말 미쳐버릴 것만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시면 감


사하겠습니다. 가해자의 문자를 던져버렸다. 핸드폰이 땅과 둔탁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말없이 소리를 질렀다. 뭘, 어쩌라고. 저런 말을 듣고 내가 뭘, 느껴야, 되는데.

침대를 걷어차고 링거를 터트리고 부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휴식 처분이 더 길어져 버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성만이 나를, 조종, 하 시발.


아 아. 정신을 잃어서 좋을 점은 단 하나도 없다. 언니, 언니를 위해서라도 제정신을 유지해야만 한다. 그래. 언니를 위해서라도.


아, 그래.


가해자에게 무참하게 죽어버린 언니를 위해서라도.

조금의 행복조차도 용납 못 받은 언니에 의해서라도,


핸드폰을 다시 주워 다시 메시지 창을 켰다.

똑같은 방식으로 되갚아주마.


그 새끼에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피해자 동생입니다.

읽으면서 생각해 봤어요. 당신과 저 중에서 누가 더 고달플까요.


메시지에 따르면, 당신은 언니 생각에 불면증이 걸려 밤에 삶을 사시고,

아내와 이혼하여 사랑하는 딸을 영영 보지 못한다고 하셨죠. 회사에도 잘려버려 본인의 쓰레기 인생을 죽지 못해 살아간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잠도 사람도 회사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당신과는 달리 저는 열심히 잘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문자를 보기 전까지는요.


그 글을 읽고 저는 대체 무슨 감정을 느껴야 하는 건가요. 제게 당신에게 죄책감이라도 느껴야 하는 겁니까.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꾼 당신에게 요. 댁에 의해서 사라진 저희 언니에게 문자를 보내세요. 죽은 건 제가 아닌 언니니까요.


당신이 죄송하다고 바뀌는 결괏값은 아무것도 없는데, 대체 무엇을 위해서 잘못을 비시는 겁니까. 당신이 용서를 받는다 하더라도 무엇이 편해지나요. 무슨 죄책감을 가졌든 저와 언니에겐 아무 상관없는 일입니다. 다만, 당신의 직장과 파탄난 가정에 저는 조의를 표해드릴 것입니다. 저의 언니가 그랬듯이, 당신 또한 어서 안식을 맞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그뿐입니다. 저와 언니는 당신을 절대 용서하지 않습니다.


개새끼가, 우리의 미래를 다 망쳐놓은 주제에 어찌 저렇게 뻔뻔할 수가 있을까. 글 한 번으로 언니를 죽인 죄가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악에 받친 채로 글을 써 내려갔다.


안녕하세요. 차에 묻은 피입니다.


저는 귀신이 되어 제 동생의 몸에서 살아가요. 머리에선 매일같이 어떤 소리가 들려요.

나를 죽인 그 새끼한테 복수해, 복수해. 다만 그러지 않았어요, 못했죠. 육신이 병원에 갇혔거든요. 저는 그 이후로 정신병원에 갇혀 있어요. 하하, 제 손에는 꽃이 피고, 머리에선 비둘기가 날아가요. 가끔은 그 비둘기를 잡아 요리를 하가도 했죠. 모든 게 당신 덕분이에요. 당신 덕분에 제 동생도 죽었습니다.


동생은 고통에 시달리다 결국 저를 따라왔어요. 무덤에서 손을 비비적대다가. 그걸 본 저는 동생의 몸에 깃들었어요. 그래서, 이 메시지를 쓸 수 있는 거예요. 당신이 우리들의 모든 걸 망쳤어요. 이것을 알리고 싶었네요.


그런데도 왜, 당신은 뻔뻔하게 살아가나요.

당신 때문에 제 동생마저도 죽어 버렸는데.


아, 우리들은 당신처럼 부모도 아내도 딸도 없어요. 우리는 오직 우리로 영원해야 했는데. 한순간에 하늘로 날아올랐어요. 니 새끼 때문에.


앞으로 일어나는 당신의 모든 불행은 우리의 소행일 것입니다. 영원히 당신을 저주할 거예요. 물론 당신이 사랑하는 딸과 아내도요. 그들은 당신과 같이 죽지 못해 살아갈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당신의 탓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당신의 탓입니다.


전송 버튼을 눌렀다.


간호사분이 오셔서 내 링거를 교체해 주셨다. 몸은 어떠세요.

나는 대답했다.


너무나도 좋습니다, 하하.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하하하. 머리가 들썩였다.

하하, 하. 하하하하. 하하. 하, 내 웃음소리가 하, 병실 전체를 맴돈다. 하하하. 하하. 하.


통쾌했다. 쓸모없는 곳에 소비하는 에너지는 내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하하, 아. 정신 차려야지.


원래 하려던 대로 서재어플을 열어 독서를 했다. 재미는 없었다.


일주일이 지나 휴식 명령이 풀렸다. 야근하고, 일하고. 기계같이 나날을 보냈다. 다만 행복했다. 온갖 스트레스를 그 새끼에게 문자 보내는 걸로 풀었다. 어휘력이 점점 느는 것 같다. 다시 승진을 했고, 승진을 했다. 언니를 잃은 지 이제 2년 반 정도되었나.


나를 위한 파티가 벌여졌고, 나는 화장실로 들어가 그놈에게 문자를 보냈다. 하루의 피로가 풀렸다. 무대 위에서 춤을 추었다. 박수 속에서 세 번에 걸친 파티가 끝났다. 사원들한테 택시를 불러줬다. 다들 집에 잘 들어가. 넵. 들어가 보겠습니다. 큰 키를 억지로 숙인 신입의 자세가 웃겼다. 내 입사 때도 저랬겠지. 나는 이제 정말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다, 그것도 굉장히 성공한.


호텔 특유의 포근한 이불에 누워 핸드폰을 켰다. 자기 전 하루 일과를 적어냈다.


가해자에게.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여긴 너무 슬퍼요

땅바닥은 너무 차가워요.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여긴 너무 무서워요

땅바닥은 너무 차가워요.


당신은 어떤가요

당신은 왜 뜨거운가요.


당신은 왜.

당신은 왜.


X1234.


늘 그랬듯이 문자를 보내자마자 읽음 표시가 떴다.


가해자님이 입력 중,


이 사람 전 부인입니다.


가해자님이 입력 중,


이 사람 목매달고 죽었습니다. 이제 메시지 그만 보내셔도 됩니다.


가해자님이 입력 중,


링크/ 서울 장례문화원 4호실입니다. 오실 거면 오셔요.


더 이상 문자는 오지 않았다.


폰을 잡던 내 손에 힘이 푹 식었다.

부드러운 침대 시트가 푹 들어갔다.


누워있던 몸을 쭉 피고 기지개를 켰다.


드디어 해냈구나.

언니를 위해서, 언니에 의해서.


하하. 한동안 계속 웃었다. 계속, 계속.


하하하, 하하, 하하.


병원에서 처음 문자를 보냈을 때처럼 계속 웃었다.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전율이 솟았다.


드디어.

드디어 죽었구나.


하하, 하.


정말 죽었구나.

그놈의 죄책감은 진짜였나 보네.


하하.


이상하게도, 이 날은 잠이 안 왔다.


다음 날 당연하게도 출근을 했다. 일과를 이어갔다. 다시 잠을 청하고 다시, 다시.

그 신입사원과 눈이 맞았다. 키도 크고, 반반하고, 사무 능력도 좋은 인재였다. 그의 고백 후 우리는 사귀게 되었다. 언니를 잃은 지 아마 4년 반이 지난 후에 우리는 결혼을 하기로 다짐했다. 서울 한강이 훤하게 보이는 맨 꼭대기 층 아파트. 언니의 보험금을 보태서 신혼집을 전세로 구했다.


우리, 언젠가 성공하면 저 높은 곳에서 살자. 나는 언니의 약속을 지켜냈다.

분명 기뻐야 했는데 발끝이 그저, 축축했다.


이삿짐센터를 불렀다. 이제는 옛날이 된 집을 비웠다. 오랜만에 들어온 언니의 방에서 침대, 배게, 책상의 선반을 열어 버릴 것들을 모았다. 양모펠트 재료, 실로 뜬 인형 같은 게 자리를 차지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털들 중에 토끼인형을 잡았다. 흐릿하게 떠올린 언니와 이 인형은 닮았다. 팔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어릴 적에 소꿉놀이를 하듯이 놀았다.


먼지가 쌓인 언니를 안은 채로 언니의 방에서 나왔다. 이대로 영영 작별이라는 듯이

쾅 닫은 닫아낸 문 사이에 놀랍도록 누런색의 종이가 천천히 내려왔다.


내 두 발 사이로 떨어진 그 누런 것을 잡아냈다. 흐릿하게 보이는 글씨 속에서 찾아낸 건.


미안 우리 동생. 나는 더 이상 살지 못할 것 같아.


우리 드디어 행복해졌는데. 잉크가 뭉친 흔적.

알바를 하면서, 사장한테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했어. 일을 그만둔 이후로도 이 몸으로 무엇을 하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던 전신에 지렁이가 기어 다니는 것만 같아. 그것이 목을 졸라 숨을 쉴 수 없어. 미친 듯이 샤워를 해도, 면도기로 피부를 벗겨내도 사라지지 않아. 지렁이가, 지렁이가, 지렁이가 흉측한 채로 나의 몸의 일부가 되어버렸어. 아아. 계속 미끄덩한 점액을 내뿜고 싶어. 계속.


미안. 이런 형태로는 살아가기 힘들어. 지금도 계속, 내 다리에 합쳐진 지렁이가 꿈틀거려.

너는 내가 없더라도 잘 살아갈 테지만. 말했듯이 언제나 제대로 된 양육자는 필요한 법이니까. 내 마지막 선물이야.


내일 매일 같이 가는 마트에서 감자와 당근을 살 거야. 봐둔 장소가 있어. 천막에 가려 CCTV 화면이 반쯤 가려진 곳이야. 계속 그곳을 통해 집에 돌아왔어. 그래, 오래전부터 이럴 생각이었어. 마침 내일은 오랜만에 비가 온다네. 사고사로 위장하기 참 좋은 날이지. 오후 6시쯤 네게 전화를 걸 거야. 내 통화 내역을 꼭 잘 남겨놔. 절대 자살로 보여선 안되니까.


종이의 모든 글씨를 읽었다.


몸이 벙쩌 소리도 뭐도 지를 수 없었다.

베란다로 고개를 돌렸다. 4년 반 전에 내가 소리 지르던 그 베란다.


멈춰있던 몸에 진동이 흘렀다.

핸드폰에 전화가 왔다.


발신인 김사원. 응. 자기. 응. 집, 집 비웠어. 응. 내일 보자. 응.


응.


응.


응.


아 아.


주저앉았다.


응,


응.

으. 윽. 욱.

웁,


웨웩.


내일은 신혼집으로 이사 가는 날이다.

이런 기분으로 있어선, 있어선,


우웩.


토를 했다.


그럼 가해자는,


언니를 위해서

언니를 의해서


자살하게 만든 그 가해자는,


그 사고로 인해 가해자는 직장도 가정도 일상마저도 잃었다.


그렇다면 가해자는, 가해자는,


붙잡은 변기가 내 위로 올라오더니 그대로 나를 압축했다.

내 얼굴엔 내 토와 분비물이 튀었다.


가해자는 대체 뭘까. 애초에 가해자라는 명이 맞는가.

가해자는 분명히 언니를 죽인 가해자였다. 다만, 다만


분비물이 흘러 내 몸을 적셔나갔다.

염산이었다. 나를 적셨던 건 내 몸이었다.


어라, 어라, 어라,

안녕하세요. 차에 묻은 피입니다. 머리에선 매일같이 어떤 소리가 들려요. 나를 죽인 그 새끼한테 복수해, 복수해. 다만 제 손에는 꽃이 피고, 머리에선 비둘기가 날아가 모든 게 당신 덕분이에요. 그런데도 왜, 당신은 뻔뻔하게 살아가나요. 어라, 당신 때문에 제 동생마저도 죽어 버렸는데. 모든 것이 당신의 탓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당신의 탓입니다.


어라,

하, 하하, 하.


그 모든 것이 우리의 탓입니다.

우리의 탓입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우리의 탓이었습니다.


여보, 우리 사진 찍지 않을래요. 정말 꿈만 같아요.


여보, 이런 날만큼은 좀 웃는 게 어때요. 자, 손 내밀어봐요. 반지예요. 이쁘죠. 변함없이 눈 부신 보석, 여보를 닮았어요. 우리 여보는 무슨 일이 생기든 항상 침착하고, 주변을 살필 줄 아는 여자예요. 내가 그런 면에서 반한 거 아니겠어요. 내겐 없는 모습이거든요. 아, 햇빛에 비치는 윤슬이 참 좋아요. 이런 강을 매일 볼 수 있다니 얼마나 큰 행운이에요. 그렇게 생각하시죠. 오늘 뭐 먹고 싶나요. 뭐든 준비되어 있어요. 여보, 웃어주면 안 돼요. 미소를 보고 싶어요. 뭐, 여보 마음이니까요. 하고 싶은 것이 있나요. 제가 나름대로 코스를 준비해 오긴 했는데. 우선, 여보. 듣고 있어요. 여보. 눈에 초점이 없어요. 여보. 여보. 왜 그렇게 어깨가 축, 여보, 여보, 여보, 정신 차려봐요. 여보, 여보,


오열하며 차에 탔다.


서울 장례문화원 4호실에 갔다.

그를 보기 위하여, 그에게 용서를 빌기 위하여.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죄송, 죄송합니다.

빌었다. 용서를 받기 위해서, 그때의 그 처럼.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다행히도 그의 장례식엔 많은 사람이 있었다.

언니와는 달리.


계속 빌었다.


대체 무엇을 위해서 잘못을 비시는 겁니까. 당신이 용서를 받는다 하더라도 무엇이 편해지나요. 무슨 죄책감을 가졌든 저와 언니에겐 아무 상관없는 일입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다만, 당신의 직장과 파탄난 가정에 저는 조의를 표해드릴 것입니다. 저의 언니가 그랬듯이, 당신 또한 어서 안식을 맞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내 죄책감은 어딜 향해야 하는가.

눈앞의 가해자이자 피해자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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