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빛바랜 골목

by 김숙희

내가 어렸을 때는요

비가 오는 날 골목은

파란 비닐우산 서로 정답게

부딪히며 인사를 나누었던 길

진흙탕길에 빨간 운동화는

진흙을 달고 무거운 걸음으로

옮겼지요


내가 어렸을 때는요

골목이 아니라 신작로였지요

자전거 소리 리어카 지나가는 소리

중고등학교 언니 오빠들 등굣길에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


내가 어렸을 때는요

골목은 걸어도 걸어도 멀기만 했었지요

학교 가는 길, 집에 가는 길이 천리만리 길

배도 고팠었고 다리도 아팠지요


돌아보면 그래도 그때가 좋았어요

오랜 친구 같은 골목길을 서성이며

그리운 얼굴들을 추억 속에서 하나씩

끄집어 내 보았어요


지금은 골목길도 빛이 바래있고

내 모습도 흰머리 주름살에

빛이 바래만 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