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한 해였다. 이직 실패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 원인 모를 증상으로 각종 병원을 전전하느라 몸과 마음이 바닥을 친 시기였다. 극심한 고통과 아픔의 원인을 찾아 온갖 검사를 진행해 보았지만 병명은 없고 증상만 존재하는, 아주 신기하고도 끔찍한 악몽을 경험했다. 갑작스런 두통과 탈모로 시작된 몸의 이상 증세는 시야 불편과 목 이물감, 위장장애에서 근육통에 이르기까지 종잡을 수 없을 만치 다양하게 나를 찾아왔다. 안과, 이비인후과, 내과, 정형외과, 비뇨기과 투어를 거쳐 마침내 나는 신경정신과로 보내졌다.
“우울증입니다.”
확신에 찬 표정으로 의사가 말했다. 몸이 아픈데 우울증이라니?! 내가 정신건강상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일단은 먼저 낫고 봐야 했다. 병원에서 준 작고 하얀 알약을 아침저녁으로 복용한 지 사흘 째, 나를 괴롭히던 지독한 두통과 머릿속의 안개가 씻은 듯이 사라짐을 느꼈다. 뿌연 세상이 총 천연색으로 아름답게 보이고 나는 우주의 신비를 깨달은 현자(賢者)처럼, 모든 것을 기억하고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찾은 일상에 감격하며 나는 또 약을 타러 병원을 방문했다. 나의 긍정적인 피드백에 고무된 의사는 환하게 웃으며 한 달치 약을 추가로 처방했다.
복용 9일째 되는 날 아침,
눈을 뜬 순간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손발이 내 통제를 벗어나고 온몸이 덜덜 무섭게 떨려왔다. 말로만 듣던 항우울제 부작용일까? 겁이 나서 더 이상 약을 먹을 수가 없었다. 신경계통 약은 갑자기 끊으면 안 되는 걸 몰랐던 나는 이번에는 단약 부작용으로 이틀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시계 초침 소리를 세며 48시간 불면과 공포의 밤을 보내본 적이 있는가? 장담컨대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초자연적인 경험을 할 수가 있다. 사흘째야 간신히 잠을 잘 수 있었던 나는 다른 치료법을 모색하기로 했다.
이제는 한방병원이다.
지인의 소개로 어렵게 알게 된 유명 한방병원의 나이 지긋한 교수님을 찾아갔다. 연륜의 힘일까? 문진과 진맥만으로도 바로 진단명이 나왔다.
“자율신경 실조증이에요. 쉽게 말해서 홧병(火病)”
“네?!”
“마침 우리 병원에서 홧병 클리닉 임상 지원자를 모집하고 있는데 어때요? 몇 백만 원 하는 약재와 치료비도 다 공짜라니까”
노교수는 학구열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은근하고 집요하게 나를 설득했다. 아무리 그래도 실험(?) 대상이 되고 싶지 않았던 나는 결국 수백만 원을 내돈내산 하며 금가루 입힌 호화 공진단과 한약, 침과 뜸 치료를 몇 주간 병행했다. 비싼 만큼 확실한 효과가 있기를 기대하며.
(2탄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