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기차를 타보고 싶다던 벗에게 - 3
수진, 이번 순례 여행을 통해서 느끼는 건, '여행은 멈추었던 또는 떠나왔던 그 무엇을 다시 되살리는 힘이 있구나!' 였어.
내 삶은, 늘 하는 일 속에서 늘 비슷하거나 크게 다를 것 없는 일상이었어. 늘 있는 곳에서 늘 만나는 사람들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인 듯하고, 늘 비슷한 것들을 보고 듣고 맛보고 느끼다 보니 생각하는 것들도 늘 그렇고 그랬거든.
그 모든 것들로부터 떠나온 건 마치 낯선 곳으로부터 초대를 받은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낯선 사람들, 낯선 먹을거리, 낯선 거리, 낯선 문화, 낯섬으로부터 받는, 온갖 부딪는 것들은 내가 새롭게 태어나길 바라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곤 해. 아니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너만 괴롭다'라고 말하고 있어.
그래서 만나는 것들에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지다가도 '초대받음' '새롭게 태어나길 바란다'라는 생각이 일어나면 곧 편해지는 느낌이 들어. 참 다행이지?
수진, 이런 일 가끔은 필요한 것 같지 않니?
우리는 지금 '자이살메르'라는 사막 도시로 가고 있어.
기차 안 침대칸이지만 그저 누워있을 수 있다는 것뿐. 지난밤도 참 추웠어. 지난밤도...,
아, 내가 말 안 했던가?'인도는 더운 나라'라고 해서 '아침에는 봄가을 여름옷을 겹쳐 입었다가 낮에는 벗어야 한다'는 인도 경험자들의 조언대로 옷을 챙겨 왔는데, 하필이면 몇십 년 만에 찾아온 추위가 우리보다 며칠 먼저 자리 잡고 있지 뭐니. 대책 없이 맞닥뜨린 추위에 두 손 들고는 두를 수 있는 건 죄다 꺼내 두르고, 어떤 이들은 겨울 점퍼를 사 입어야 했거든.
인도 추위는 우리나라 추위와 참 다르더군. 우리 추위는 날카로운 칼날 같다면 인도 추위는 뭉툭한 송곳이 뼛속을 찌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밤기차 안도 참 춥더구먼. 침낭 속에서도 잔뜩 웅크리고는 내 몸에서 나오는 따뜻함을 한껏 느끼기 위해 눈을 감고 무릎을 구부려 심장 가까이 끌어다가 따뜻함에 안기려고 애썼어. 그러다가 설핏 단잠에 빠지기도 하지만 덜컹! 하는 소리와 흔들림에 다시 선잠이 되어 추위를 느끼고 어깨를 잔뜩 움츠리기를 되풀이하는 길고 긴 열여덟 시간...,
의식은 깨어있을 때가 훨씬 많지만 몸은 일어나길 원치 않아.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한정돼 있기에 그럴는지도 몰라. 수진에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시간은 아침 9시가 다 되어 가. 해는 진즉 떴지만 그 햇살을 느끼기에는 기차 몸뚱이가 너무 식었나 봐. 손이 시려. 추워서인지 뒷간은 먹은 것도 없이 자꾸 가게 돼. 몸 안의 물기를 웅크리고 있는 동안 죄다 짜내고 있었는가 봐. 새벽에도 아침에도 자꾸 가게 되는 걸 보면.
잠자기 전 한 번 다녀오면 다음 날 깰 때까지는 안 가도 되게끔 버릇이 들었기에 어젯밤에도 보통 때처럼 뒷간을 갔어. 깨진 창문, 아니 창문이라기엔 너무도 엉성해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어. 유리가 있어야 할 곳에는 톱으로 자르지 않고 부러뜨린 듯한 합판을 덧대어 놓았고, 그나마 다 막으면 컴컴할 테니 손바닥만 한 구멍을 남겨놓아 빛을 들이거나 달리는 기차밖 세상을 보게끔 한, 일부러 기웃거리지 않아도 보이는 바깥 풍경이 너무 아름다운 거야. '아, 인도의 야경(夜景)도 참 볼만하구나.'라며 바라보는데 비행기가 보이지 뭐니. 공항 언저리였던 거지. 그곳에서 멀어질수록 캄캄해지더군. 불빛이라곤 반딧불 같은 빛 점이 드문드문 있더군.
수진, 우리는 아침이 지난 다음에야 그 기차에서 내렸어. 사막엘 가기 위해서야.
사막하면 여전히 '어린 왕자'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 너도 그렇니? 그런데 내가 본 사막은, 모래가 끝없이 펼쳐져 있고 뜨거운 햇살 때문에 타는 듯한 목마름이 일어나는 그런 사막은 아니었어. 낙타를 타고 한나절 가다 보면 나타나는 호수만 해 보이는 모래밭이었어.
모래밭으로 가는 길에는 눈 씻고 찾아봐도 물기는 물론 푸른빛이라곤 없는 메마른 가시나무들이 들쭉날쭉 늘어서 있어 삭막함을 더해주었어.
그래도 발가락 사이로 스미듯 밟히는 보드라운 모래의 느낌이나 쏟아지는 듯한 별빛을 보며 잠들었다가 깨면 눈앞에 있는 듯한 새벽 별빛을 보는 건 진짜로 좋았어. 우리는 사막, 모래밭에서 별을 이불 삼아 잠을 잤거든.
드문드문 떨구어 놓은 낙타똥이 말라가는 곳을 피해 낙타가 사람과 함께 싣고 다니던 담요를 깔고, 그 위에 저마다 가지고 간 침낭을 펴고 누웠을 때는 몇 년 동안 한 번도 빨지 않았을 것 같은 담요에서 풍기는 냄새가 오감(五感)을 건드리긴 했지만 곧 평정심을 찾았어.
또한 사막에서 태어나 사막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살짝 엿볼 수 있었던 것 같아 행운이라고 생각해. 물이 귀한 곳이라 모래로 설거지를 하는 모습은 언젠가 읽었던 책 [무탄트 메시지] 속 살람들을 떠올리게 했어. 모래로 목욕을 하고, 모래로 씻고 닦는 참사람 부족들 말야.
아쉬운 건 모래로 설거지를 해보질 않았다는 것이야. 그저, 그렇게 설거지를 한 그릇에 밥을 먹고 짜이를 마셨을 뿐이라는 거지.
모래가 지분거리는 밥이었지만 나쁘진 않았어. 설거지가 덜 된 것 아니냐고? 아니야, 모래 설거지는 스테인리스 그릇이나 컵이 반짝반짝 빛나도록 깨끗하게 하는데 밥을 푸고 반찬을 푸는 동안에 불어오는 바람에 모래가 들어가거든.
우리 지구촌에는 참으로 많은 삶이 펼쳐지고 있음을 내 눈으로 보고 느낀다는 게 좋기도 하고 미안해지기도 했어. 나만 누리고 있는 것 같아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특별한 인연들이 함께 하지 못함이 참으로 미안할 때가 많았지. 그래서 어디를 가나 가볍게 여기지 못하겠는지도 모르겠고, 함부로 살아서도 안 되겠다 여기는 건지도 모르겠어.
내 마음 밑바닥 깊숙한 곳에 새겨진 그 무엇은 늘 내게 말하곤 해. '함부로, 즐거움이나 재미를, 넘치는 행복 누림을 삼가라.'고. 그래서 그러려고 하는 편이야.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