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기차를 타보고 싶다던 벗에게 - 4
인도 기차를 타보고 싶다던 벗에게 - 4
지금은 바라나시의 사르나트에 있는 '녹야원(이시빠타나)' 근처 한국절에서 잠시 쉬면서 이 글을 쓰고 있어.
사슴 동산(鹿野苑)이라 일컫는 이곳은 붓다께서 처음으로 당신이 발견한 진리 다르마(법, 法)를 설(設)하신 곳이기에 많은 불자(佛者)들의 발길을 이끄는 곳이야.
엊그제 밤, 우리는 인도의 설산 '마날리'에서 열흘 동안 머물다가 다시 델리로 오는 버스를 탔어.
'마날리'는 인도에서 눈을 볼 수 있는 곳이기에 설산이라고 한대. 그곳에서 우리나라에서도 가본 적 없던 썰매장을 갔었어. 한때 우리나라도 그랬던 듯한데 마날리 썰매장도 인도의 부자들만 오는 듯 보였어. 옷차림은 스키복이었고 모두가 자동차를 몰고 왔더군. 우리는 택시를 타고 갔는데 눈이 그렇게 많지도 않았고 너무 더운 낮이라 조금만 걸어도 땀이 나는 거야.
우리나라 봄눈처럼 사박거리는 썰매장에는 모터 썰매와 고무 튜브 썰매가 있는데 타는 사람 그리 많지 않아 보였어. 우리도 썰매는 타지 않고, 멀지 않은 곳에 얼음 기둥으로 유명한 곰빠(사원)가 있다기에 그곳엘 갔어. 그곳은 티벳 불자들이 제법 있었고, 힌두 신앙을 가진 인도 사람들도 많이 오는 곳으로 보였어. 일부러 만든 듯한 얼음 기둥이 우리에게는 신비하거나 신기한 게 아니었지만 더운 나라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그렇게 보일만하다 생각하면서 금방 돌아 나왔어. 그것 말고는 별게 없었거든.
델리로 돌아오는 버스는 우리나라 고속버스처럼 컸는데 나는 멀미 기운이 너무 심해서 눈을 뜨고 있는 것조차 힘든 거야. 그래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어. 버스 안의 TV에서는 인도 영화가, 내 머리에서는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는 셈인데 어떤 세상을 폈는지 아니? 나는 이번 순례 여행에서 '나'를 좀 더 객관으로, 좀 더 날카롭게 보려고 하는데 자꾸만 무디어지곤 해.
그래도 틈만 나면 마주하려(直面)고 하는데 지금이 그런 시간이지.
나는, 스스로 느끼면서도 쉽게 끊어지지 않는 질긴 무언가에 대한 사유(思惟)였어. 그러면서도 감히 '붓다 또한 그렇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어. 무슨 말이냐고?
가끔, 아주 가끔 썩어 문드러지지 않은 내 욕망의 뿌리가 미세하게 꿈틀대는 걸 느껴. 그런 느낌이 일어날 때면 썩 좋은 기분은 아니야.
쉽게 탁 끊어지지도 않고 탁 놓아지지도 않는 욕망, 늘 그것에게 놀아나느라 망상의 바다에 빠지곤 한다는 사실에 흠칫 도리질하는 한편, '붓다 또한 그러셨을 것이다. 그랬기에 마왕 파순의 세 딸 이야기가 나온 것 아니겠어!'라는 생각이 맴맴, 향긋한 과일에 꼬이는 초파리처럼 알짱거린다는 사실이야.
파순의 세 딸은 참 곱고 아름답고 매력 있는 여인들로 그려졌는데, (고따마 싯다르타는) 그 여인들의 유혹을 먼지 티끌만큼의 걸림도 없이 끝내 물리쳤을 때 비로소 붓다가 될 수 있었던 거잖아. 참 의미심장한 이야기 아니니?
난, (객관으로 보고 생각해 봐도) 여느 사람들처럼 예쁘고 멋있는 옷이나 가방 액세서리를 탐내지는 않아. 음식을 탐내어 즐기는 것도 아니고, 명품이라고 일컫는 브랜드 물건을 갖고 싶어 한다거나 집이나 차를 탐내지도 않는 편이지. 그렇다고 어느 스님들처럼 차나 차도구, 글씨나 불상(佛像), 탑이나 절에도 마음을 빼앗기지는 않아. 그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받아들이는 편이고 오히려 어떨 때는 너무 잘 입고 잘 먹는 걸 견지디 못하는 편이기도 해.
그런데 가끔 아주 가끔, 가늘고 미세하게 그러나 강하게 꿈틀대는 번뇌는 쉽게 떨쳐지질 않아. 만약 고따마 싯다르타 수행자가 만난 마라의 세 딸처럼 그렇게 멋진, 그 반대의 세 아들을 만난다면 틀림없이 무너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순례 여행 동안 과제를 풀듯이, 화두를 깨듯이 그런 나를 좀 더 파헤쳐 보고 들쑤셔보려고 해.
(그때 다짐한 노력 덕분일까! 그 뒤로는 몇 번 실험(?) 했지만 그때와 같은 번뇌는 일어나질 않는다. 다행히도.)
우리는 사르나트에서 다음 갈 곳을 위해 잠시 몸과 마음의 기운을 충전하고 있어.
다음 갈 곳은 네팔 카트만두야. 솔직히 다음 여정은 두 가지 이유로 빠지고 싶어.
첫째는 수진 너의 (인도를 향한) 꿈을 들은 뒤 나 또한 꿈을 꾸었나 봐. '언젠가 인도를 가면 갠지스 언저리를 맴돌아 볼 테다'라는.
많은 사람들의 꿈이나 글들이 그렇게 하고 싶도록 부추긴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냥 그러고 싶었어.) 지금은 조금 더 뚜렷한 이유로 갠지스 언저리를 맴돌고 싶거든. 갠지스라는 거울이 나를 제대로 비추어 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야. 이왕이면 화장터 가까이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내 안의 번뇌 망상도 제대로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와 함께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은 거지.
이번 순례 여행, 참 좋은 시간이지만 '함께 한다는 것'이 마냥 편하지는 않아.
아마도 나만의 시간이 거의 없기 때문일 거야. 고요히 사유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을 때가 많거든. 그래서 기회라 여겼고 마침 돈도 다 떨어져 가고 내 형편에 맞는 여행을 하고 싶더라. 한편으로는 건강도 자신 없었어. 지금도 눈과 허리, 다리와 팔에 수상한 기운이 돌고 있거든. 이런저런 까닭을 모아 판단하고 결정하기를 '나는 바라나시 갠지스로 다른 이들은 네팔로 가면 된다.' 였지.
그런데..., 그러질 못하게 됐어.
나만 생각해서는 안 될 여행이었던 거지. 한국에서부터 함께 왔고, 나의 형편도 알고 있는 일행은 나의 결정을 환영하질 않았고 끝까지 함께 하자는 거야. 이번 순례 여행을 이끄는 스님께서도 나 혼자 다른 길로 가는 걸 막으셨어.
음..., 함께 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불편해지는 걸 나 또한 원치 않아. 그래서 바라나시 갠지스의 꿈은 다음 기회로 미루었어.
수진, 우리는 열여덟 철 모르는 나이에 만나 십 년 남짓 참 편한 벗으로 지낸 것 같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너처럼 편한 벗은 없었던 것 같아. 너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너만큼 편하고 좋은 벗은 없었어.
나의 그런 네가, 지금 살아가는 내 삶을 결정했을 때 크게 실망했겠다 싶어. 변명 같은 건 안 할게. 그때의 나는 그랬어. 모두를 위한 결정이라고 여겼거든.
아주 긴 시간이 흐른 뒤에야 어리석은 결정이었다는 걸 알았어, (지금이라면 그런 결정을 하지 않았겠지.) 그렇다고 후회는 하지 않아. 다만 어리석었음을 깨닫고 돌아가기엔 너무 많이 멀어졌고 가는 길도 잊었어.
대신 '인연 닿는 만큼 (과거 전생의) 나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이 생겨나지 않도록 하는 일이 나의 일'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더 정성스럽게 살려고 해. 이해할 수 있겠니?
수진, 너도 이제는 중년의 아저씨가 되었겠다? 겉모습은 중년의 아저씨일지라도 마음은 변함없이, 이슬이 스며들 수 있을 정도로 맑음 그대로면 좋겠다. 나의 바람이야.
너는 내게 '방해하지 않을 테니 하루빨리 외계인의 암호 같은 붓다의 말씀을 풀라'고 그랬지.
그런데 붓다의 말씀, 그건 비밀스럽지도 않고 외계인의 암호 같은 것도 아니었어. 그저 그대로 순수하게 들으면 쉽게 들리고 보이고 알 수 있는 것이었어. 다만, 비밀스럽게 여기는 이들에게 여전히 비밀스러이 여겨지기에 어려운 것은 아닐까 싶어.
네가 궁금해 묻는다면, 그래서 내가 설명한다면 너는 금방 알아들을 거라 믿어.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