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튀어나온 무착거사무착거사 무착 하자꾸나!
곰곰 생각한 끝에 아주 이별을 하기로 결론을 내리고, 보험만기일까지는 어떻게든 함께하자는 생각에 조심조심 함께하던 즈음, 봉평에서 이름난 효석문화제를 시작하는 날(토요일)에 무착이는 눈(?)을 다치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20회 넘게 축제라는 이름으로 또는 문화제라는 이름으로 잔치를 열어왔지만, 시작하는 날 가본 적은 없는데 가보고 싶다는 이가 있어 미리 약속을 하고 나갔다.
마을이긴 하지만 해질 무렵이라 걸어서 가기엔 무리겠다 싶어 무착거사와 나갔다. 면 들머리 찻길 한쪽은 이미 주차장이 되어 있었고, 교통경찰은 차나 사람이 안전하게 오갈 수 있도록 안내를 하고 있었다.
휴는 면내 길을 조금은 아는지라 잔치 무대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곳에 무착거사를 세워두고 지인과 만나 느긋하게 잔치 마당 이곳저곳을 돌아보았다.
온 나라 곳곳에서 철마다 이런저런 주인공(?)을 내세워 여는 잔치를 열고, 잔치가 열리는 동안엔 볼거리는 물론 먹을거리 쓸거리 놀거리 들을 거리가 잔치를 더 잔치답게 한다.
<효석문화제>는 잔치(문화제 축제) 가운데는 평이 좋은 편이라 그런지 평소에는 볼 수 없는 물건이나 먹을거리들이 즐비했다.
지인과 휴는 골목골목을 들러보다가 각설이 공연, 또는 지역 노래자랑 무대를 잠깐씩 둘러보다 보니 한 시간 남짓이 금방 지나갔지만 더 이상의 매력은 느끼질 못해 그만 구경하기로 하고 헤어지려는데 전화가 울린다. 가까운 곳에 있는 지구대(파출소)라고 뜬다.
"000쪽에 차 세워 두셨나요?"
"예."
"얼른 가보셔야겠는데요? 사고가 났대요."
서둘러 무착거사를 세워둔 곳으로 가보니 세상에나, 무착거사의 왼쪽 눈이 튀어나와 있다.
그 뒤에는 사고의 또 다른 주인공 소나타가 서있었고 그 차를 몰고 온 젊은이 한 쌍이 겁을 먹은 목소리로 어디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파출소 순경이 신원을 확인하며 한 쌍의 젊은이와 휴에게 이것저것을 묻는다. 휴는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한다. 문화제 시작날이라 무대와 다리가 있는 쪽 길은 이미 주차장이 돼 있어서 차가 없는 이곳에 일부러 세워두었노라고.
소나타 주인은 학생이라는데 사실은 아버지의 차를 남자친구가 운전해 왔다고 했다.
둘은 '잔치 구경을 한 뒤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서울로 돌아가려고 나왔을 테고, 차가 별로 없는 곳이니 속도를 냈고, 그 상태에서 우회전을 했는데 거리 가늠을 잘 못했는지 그만 무착거사는 눈을 튀어나오게 하고, 소나타는 옆구리가 푹 찌그러지게 한 것'으로 보였다.
어쨌든 차 주인은 따로 있는 데다가 주말 휴일이라 보험회사든 정비소든 모두 영업이 끝났다. 차 주인은 휴에게 '월요일에 정비소에 가서 견적을 내보라, 만약 20만 원이 넘으면 보험 처리하고 안 넘으면 현금으로' 주겠단다.
휴는 알겠다 하고 놀래서 겁을 먹을 젊은이들을 집으로 데리고 가 따뜻한 차를 우려 내주며 마시게 하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줬다. 그리고 갈 때엔 가지고 있던 보온병에 따뜻한 차를 우려 담아 주었다. 가는 동안에도 진정하고 잘 가라고.
월요일에 가까운 정비소로 무착거사를 데리고 가니 찬찬히 살펴보던 전문가는 "67만 원입니다."
"얘는 곧 폐차하려고 하는데요. 그러니 큰돈 들이지 말고 눈만 바로 끼어주면 안 될까요?"
"어차피 보험회사에서 해줄 건데 뭘 그런 걸 신경 써요? 이것 범퍼 갈아야 돼요."
그러면서 큰돈 들이지 말자는 나의 의견에 단호히 안 된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소나타 차주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대로 말하니 보험 처리하란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은 주차장에 세우지 않은 과실도 있으니 20% 정도는 각오해야 할 거란다. 휴는 알겠다고 했다.
그러나 사고 지점 위치나 사고 상태를 본 보험회사 판단은 달랐다. 100% 상대방 과실로 결론이 났다.
어쨌든, 무착거사는 한쪽은 흐릿하고 한쪽은 반짝이는 짝눈이 되었고, 보험만기일이 되었다.
인터넷으로 가까운 폐차장을 알아보는데 누군가 "굴러만 가면 삽니다"하는 곳을 알아보라고 한다. 검색을 해보니 여러 군데가 있었다. 그 가운데 마음에 와닿는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일요일인데 전화를 받으려나?' 하면서 걸었는데 전화를 받는다.
"인터넷 보고 전화 드렸어요."
"몇 년 식이죠?"
"2022년요."
"옵션은 있나요?"
"옵션이라 하면..., "
"선루프 있나요?"
"없습니다."
"에어컨은 돌리는 건가요? 누르는 건가요?"
"돌리는 건 하나도 없고 모두 버튼식입니다."
"색깔은요?"
"은회색입니다."
"사고는요?"
"큰 사고는 없었고요, 스크래치와 조금 눌린 곳은 있습니다."
"45만 원 드릴게요."
"저, 돈이 중요한 게 아니고 소리가 좀 요란한데 그래도 받는가요?"
"어떤 소리요?"
"오토바이 소리요."
"그럼, 35만 원 밖에 못 드리겠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탁송기사 알아보고 전화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
.
.
"여보세요? 저, 지방이라 탁송료가 많이 나가서 5만 원 더 깎아야겠는데요...?"
"예, 알겠습니다."
무착거사,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에 보내려고 했는데 휴의 마음대로 날짜를 정하면 안 될 듯해 서둘러 이별여행을 하기로 했다.
집을 나서 윗동네로 가서 면 한복판을 지나고 즐겨가던 자작나무숲길도 갔다. 돌아 나오면서 흥정계곡길도 가고, 무이예술관 옆을 지나 장평 나가는 길을 신나게 달려보기도 했다.
그 사이 딜러에게 전화가 왔다. 탁송기사가 무착이를 데리러 오지 않겠다 했단다. 까닭은 소음이 심하고, 장거리를 안 간지 몇 달 됐고, 편도 한 시간 거리는 며칠 전에도 다녀왔다는 휴의 말이었다.
딜러는 지방이라 기사 알아보는 게 어려우니 다른 기사에게 전화가 가면 너무 자세히 말하지 말라고 한다. 휴는 알겠다고 했다.
낯선 번호가 뜨면서 전화벨이 울린다.
"여기 강릉 터미널인데 가까운 터미널로 가면 나와주실 수 있는가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무착거사가 떠났다. 낯선 사람이 이끄는 대로.
잘 가라는 말도 못 했고 그동안 고마웠다는 말도 제대로 못 했으며 무탈히 잘 가라는 말도 못 했다.
그저, 가는 뒷모습만 담아 두었다.
그렇게 떠나보냈는데 이상하게도 가슴이 두근거리며 진정이 되질 않았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여보세요? 조금 전 차 가지고 간 사람인데요. 차가 시동이 안 걸려요."
"네? 거기가 어딘데요...?"
"예, 여기는 여주 휴게소인데 지금까지는 잘 왔어요. 그런데 기름 넣고 시동을 거는데 시동이 안 걸리네요. 아무 소리가 나질 않아요."
"아, 예..., 제가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어놓겠습니다."
"예, 그렇게 해주시겠어요? 딜러에게는 말 안 했어요. 괜히 젊은 사람한테 안 좋은 소리 들을까 봐요."
"네..., 고맙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ARS에서 시키는 대로 번호를 누르고 상담원 연결까지 한다.
견인차를 보내겠단다. 50킬로까지는 무료고 그 이상은 1킬로당 2000원 비용이 나온단다.
"예, 알겠습니다. 지금 있는 곳은 인천방향으로 가는 여주휴게소인데 보내주세요~"
"운전자 본인이신가요? 이 번호로 걸면 되겠습니까?"
"아..., 저..., 사실은 제가 차를 중고차매매소로 보내느라, 탁송기사님이 운전을 하고 계셔요."
"아, 예..."
"제가 그분 전화번호를 드릴 테니 그분께 전화를 걸어주시면 안 될까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여전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무착거사, 가기 싫었던 거니? 어째 그동안 한 번도 없었던 일이 지금 일어나는 거니?'
별의별 생각을 다하면서 목적지까지 견인차를 통해 무탈히 잘 가기만을 바라고 또 바랐다.
밤 9시 45분쯤 전화를 건다.
"잘 가고 계신가 전화드렸습니다."
"아, 예. 보험회사에서 왔는데 배터리 문데인 것 같다고 충전 좀 해보자네요. 10시까지 해보고 안 되면 견인차로 가야죠. 그나저나 50킬로까지만 무료고 나머지는 1킬로당 2000원 이라던데요? 부천까지 가려면 한 100킬로 남았을 텐데..., 비용 내려면 속상하실 텐데..., "
"할 수 없죠, 뭐. 그래도 안전하게 가시는 게 더 중요하지요. 그나저나 기사님이 너무 늦어져 어쩌면 좋을까요?"
"괜찮아요, 왜 늦었냐고 물으면 휴게소에서 쉬다가 왔다고 하죠, 뭐."
"아유..., 고맙습니다."
"10시까지 해보고 안 되면 전화드릴게요."
다행히 배터리 문제였나 보다. 충전을 마치고 가는 중이란다. 가슴 두근거림도 없어졌다. 휴는 그렇게 무착거사와 이별을 했다.
무착거사, 잘 가자~~ 우리 무착 하자~~
며칠 뒤, 무착거사의 등록 말소 소식을 받았다.
말소 이유는 '동남아 수출'로 되어있었다. 사망선고가 아니니 동남아 어디엔가 있을 무착이 좋은 사람을 인연 했기를 바라며 추억의 책갈피를 하나 더 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