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대한 단상-2
2002년 6월, 한∙일 월드컵 스페인과의 8강전. 온 가족이 모여 TV 앞에 앉아 마지막 승부차기 키커로 나선 홍명보 선수를 응원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성공만 시키면 4강이 확정되는 그 순간, 아마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마음 졸이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을 거라 생각한다. 이후 네 번의 월드컵을 경험할 만큼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2002년 대한민국은 승리를 염원하는 개개인의 간절함이 한데 모였고, 그 간절함이 한민족의 집단주의적 특수성과 결합하여 연대로 까지 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게다. 물론 그 연대가 수준 높은 시민의식과 질서가 반영되었으면 더 의미가 있었을 거라는 뒤늦은 생각을 해보지만 말이다.
토트넘의 손흥민보다 맨유의 박지성이 더 익숙한 나는 경기에 뛸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해버지’를 응원하기 위해 새벽잠을 깨워가며 열광했던 기억 또한 그 당시 내 또래의 축구팬들이 ‘지성팍’ 하나로 연대했던 기억으로 남는다. 프리미어리그 그라운드를 누비는 동양인 한 명이 골을 넣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과 함께 말이다. 한 팀의 승리만을 기원하는 그 당시의 맨유 팬들은 모두 뜻을 함께 모은, 사전적 의미로 목적이나 뜻이 서로 같은 동지(同志)였던 것이다.
쩜오(0.5) 단계가 자연스러워질 찰나에 핀셋 방역이 생활 속에 들어 왔다. 정부의 혼란스러운 기준을 비판할 기운도 없을 만큼 코로나-19는 남녀노소 구분없이 전 세계인들을 지치게 만들고 있다. 특별한 경험은 고사하고 가벼운 일상을 공유 하지도 못하는 현실이라 ‘철창 없는 감옥’이 따로 없다. 우리를 더 무섭게 하는 건 이 무시무시한 바이러스가 정녕 인간을 숙주로부터 언제 해방시켜줄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더 이상의 감염자 없이 코로나-19가 하루 빨리 종식되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2002년 월드컵의 승리보다 더한 전 지구인의 간절한 소망이리라. 경기 종료 휘슬이 불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던 그 간절함. 그래서 그 간절함이 경기가 끝난 뒤의 질서 의식, 응원 장소의 정리정돈까지 이어지지 못했던 아쉬움을 기억하며 코로나-19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2002년 월드컵과는 조금 달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토록 간절한 마음이 실천하는 연대의식으로 발전하며 답답하더라도 각 가정에서 가족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헬스장에서의 운동은 홈 트레이닝으로 바꾸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키는 걸 조심스레 추천한다. 가까운 미래에는 마스크 없이 반갑게 악수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극한의 고통 속에서 조차 우리는 모두 하나의 목적과 뜻을 가진 동지임을 잊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