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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치 Mar 27. 2024

한반도의 지정학은 숙명인가

미·중의 대 한반도 지정학 인식      


누가·왜? 한반도를 갈라놓고 싸우게 했을까.

 

왜? 전쟁으로도 통일하지 못한 채 세계 유일 분단국으로 남아 있을까. 


이 의문을 해소할 수 있다면 우리가 전쟁 걱정 없이 평화롭게 잘 사는 한반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30여 년 통일 업무와 퇴직 이후 8년의 집중적인 미중관계 공부는 이 의문을 해소하고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 역사를 돌이켜볼 때, 한반도 식민지배와 분단·전쟁·분단고착이라는 비극의 원천은 국력의 취약성과 함께 한반도의 지정학에 있었다. 무지가 초래한 몽매의 결과이기도 했다.  

   

21세기에 무지·무력(無力)의 문제는 고칠 수 있다. 하지만 지정학은 쉽게 고칠 수 없다. 가까운 이웃은 바꿀 수 없고, 어떤 국가도 지리정치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동아시아 질서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지정학적 요충인 한반도는 매번 수난을 당했다. 지정학은 한민족의 역사 전개와 깊은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한반도의 지정학은 미중 간 패권전쟁과 그들의 정책결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는 요인이다. 한반도가 다시 위태로운 지정학적인 갈림길에 서있다. 지정학 문제가 지피지기 제1 순위이고, 때로 서술의 중복이 불가피한 까닭이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성격과 통일·분할()     


역사상 한반도의 전쟁과 통일·분단·분할(론)에도 지정학이 크게 작용했다.

 

한반도의 통일은 두 번 있었다. 신라의 통일(676년)과 고려의 후삼국 통일(935년)이 그것이다. 모두 중국 상황과 관련돼 있었다. 신라의 통일은 당의 백제·고구려 정벌에 따른 것이었다. 신라의 멸망과 후삼국(고려) 통일은 당의 쇠락과 멸망(918년)의 파장이 영향을 미쳤다.

      

1950년 10월, 유엔군의 북진으로 임박한 무력통일이 실패한 것은 중국의 전격적인 참전 때문이었다. 1950년 10월 13일, 소련은 막다른 위험에 놓인 북한을 구하지 않고 만주로의 망명을 지시했다. 10월 19일, 중국이 소련이 포기한 북한을 구하기 위해 참전한 것은 북한에 대한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지정학은 주변국들에 의해 가교·관문(교두보), 요충·완충 지대, 해머·단도라는 말로 중시되었다. 한반도는 주변 강대국이 패권국가가 되기 위해 반드시 점유해야 할 열쇠와 같은 곳이었다. 늘 쟁탈전의 대상이었다. 쟁탈전에서 힘의 우위에 선 강대국은 한반도를 침략, 복속을 취했다. 전세가 팽팽해 한반도 전체를 지배할 수 없거나 분쟁이 악화될 때는 아래와 같이 어김없이 일국 또는 제3국에 의해 분할론이 제기되었다.

     

- ①648년 당은 신라에게 고구려 평정 후 평양 이남의 백제 땅의 할양을 약속

- ②1592년 임진왜란 시 일본은 명나라에게 평양 이남 지역의 자국 귀속을 요구

- ③1593년 패퇴하던 일본은 명에게 강화의 조건으로 조선(南) 4도 할양을 제시

- ④1894년 청일전쟁 시 영국은 한반도의 청일 공동점령(안)을 제시, 일본이 거부

- ⑤1896년 러일 대결 시 수세였던 일본은 39도선 이남의 자국 할양을 제안

- ⑥1943년 태평양전쟁 패망에 몰린 일본은 한반도 남부지역의 자국 영유를 요구

- ⑦1945년 8월 미소는 미국이 제안한 한반도 38선 분할·점령(안)에 합의(분단)

- ⑧1953년 정전협상에서 미중 양국은 무력 대치선을 경계로 2차 분단에 합의

    

주목되는 사실은 아래 그림의 분할선들은 모두 한반도(특히 북부지역)에 대한 중국의 전략적 이해를 반영하거나 고려해 북위 39도선과 38도선 사이에서 움직였다는 것이다. 대륙세력이 강할 때는 38도선 또는 37도선까지 내려갔다. 반대로 해양세력이 강할 때는 39도선 또는 청천강선까지 올라가는 경우가 있었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두고 볼 때, 한반도 평화·통일에는 미중, 특히 한반도 문제에 가장 큰 이해를 가지고 있는 중국의 협력이 필수적임을 알 수 있다. 한반도 통일은 주변 강대국들의 역내 세력균형에 중대한 변화를 수반하게 되는 동아시아의 지각변동이다.

     

미국의 대 한반도 지정학적 인식·이해(利害)

   - 한국은 대 중·러 봉쇄전략의 전략적 요충 
    

미국의 대 한반도 지정학적 인식과 이해는 패권 장악 과정과 그 이후, 그리고 미중 패권전쟁에서 각기 다른 모습을 보였다.

     

1882년 조선과 통상조약을 체결한 첫 번째 서구 열강인 미국은 수교 2년 후부터 조선에 대한 관심을 공사급에서 총영사급으로 낮추었다. 기대와 달리 별 이득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중국과 일본, 러시아와 불가피한 마찰을 감수할 생각도 없었다.


미국은 한반도를 주변국들과의 협상에서 수단으로 활용한다. 미국은 먼저 한반도와 대만, 중국 동북부 지역에 대한 일본의 팽창정책을 용인했다. 대신 일본이 자국의 이익선에서 미국에 중요한 지역인 태평양과 필리핀을 제외토록 했다. 당시 미국은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것이 동아시아 전략에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2차 대전 이후 변화한 세력구도와 지정학적 요인들로 인해 증대되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는 특히 대소 봉쇄전략의 연장선에서 중시되었다. 그러나 한반도는 소련의 일본 공격 전진기지가 되지 않도록 하는 방파제 역할에 한정되었다. 미국이 1949년 한국에서 미군을 철수하고, 1950년 애치슨 선언에서 한국을 자국 방위선에서 제외한 이유였다.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지정학적 인식은 6.25 전쟁 발발 이후 크게 달라졌다. 미국은 북한의 남침을 소련의 군사적 팽창과 자국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했다.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는 일본의 공산화를 막는 완충지대에서 공산주의 확산을 저지하는 북방초소, 동북아의 전략적 요충으로 변했다.

     

냉전시대 이후 미국은 한반도 분단과 6.25 전쟁을 자국의 패권전략 유지·강화의 방편으로 적극 활용했다. 한반도는 20세기 초에는 일본과의 협상 수단, 20세기 중반 2차 세계대전과 전후 처리 과정에서는 소련과의 협상 수단 및 패권 강화 수단이었다.

     

21세기 현재 동아시아 전략상황은 변화가 거의 없다. 북핵문제, 대만문제와 함께 미중 패권전쟁이 악화되고 있다. 이런 실정에서 한반도는 미국에 전략적 린치핀이다. 위협·도전이 내재돼 있는 민감한 지역이자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핵심 전략적 요충인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의 심장부가 되고 있는 동북아는 자국의 패권 유지에 중요한 지역이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도 더 커졌다. 중국을 견제하는 데 있어 지정학이나 전략적으로 한국만큼 중요한 나라가 없다. 한반도는 대 중국 봉쇄정책의 전략적 교두보로서 ‘중국의 머리를 가격할 수 있는 망치’ 역할이 가능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한국의 지정학이 한국을 미국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로 만들고 있다. 미국은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CIA는 트럼프 행정부 때인 2017년 5월 한반도 문제 전담 조직인 ‘코리아 미션센터’를 신설했다. CIA가 특정 국가에 집중한 미션센터를 세운 건 이때가 처음이다. 미중 패권전쟁 이후에는 대중국 업무 집중을 위해 ‘차이나 미션센터’를 설립·운영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데 한반도의 지정학, 그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중국의 대 한반도 지정학적 인식·이해

  - 북한지역은 순망치한의 완충지대, 방파제·성곽  

   

19세기 청나라의 황준헌은 ‘조선책략’에서 “조선의 위치는 아시아의 요충으로 그 형세가 반드시 분쟁을 가져오게 돼있다. 조선이 위태로우면 동아시아 정세도 날로 위급해질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한반도 지정학에 대한 중국의 인식은 오랜 역사적 경험을 통해 형성되었다. 먼 옛날 중국에게 한반도는 지속적으로 반드시 확보해야 할 곳은 아니었다. 생산성이 높은 기름진 땅도 아니었다. 중국이 한반도를 직접 관리하거나 집중할 경우 중원지역이 피폐해지고, 북서지역 오랑캐들의 공세 등으로 진·한·수 등의 왕조가 멸망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중국은 한반도 국가와 화평을 강조하며 평화공존의 길을 모색했다. 한반도가 자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기미·조공관계로 관리한 것이다. 한국이 1,300년 동안 중국 한족 국가의 침략전쟁 없이 역사를 이어 온 것은 일면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중화제국의 쇠락 국면인 명·청나라 시대에 들어와서는 기존의 인식이 달라진다. 17세기 중반, 병자호란을 통해 조선을 복속시킨 만주족의 청은 조선을 병참기지로 활용, 명을 멸망시키고 중원의 주인이 된다. 300여 년 후 청은 일본에게 조선을 내줌으로써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19세기말, 중국의 몰락과 동아시아 질서의 해체를 가져온 청일전쟁의 도화선은 한반도였다. 전쟁터 또한 한반도였다. 중국과 일본, 러시아 간의 동아시아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조선에서 시작해 조선에서 끝났다.

      

예부터 한반도는 중국의 화이질서를 뒷받침하는 극동의 첨단에 위치하는 변방이었다. 중국의 동쪽을 방어하는 방파제 역할을 해온 군사적 요충지였다. 중국의 정치적 중심부에 대한 안전을 보장하는 입술과 같은 역할을 해온 지역이었다.

     

이렇듯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전통적인 지정학적 인식은 순망치한(脣亡齒寒)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런 인식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청일전쟁에서 더욱 확고해졌다. 중국의 6.25 전쟁 참전 이유이기도 했다. 미중 패권전쟁 과정에서 북한지역의 중요성을 더욱 커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에게 한반도 지정학의 핵심은 사실 북한지역이다.

    

북한지역에 대한 중국의 역사 인식

     

북한은 중국에 세계 유일의 동맹국이다. 중국의 대북정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북한지역에 대한 중국의 깊고 끈질긴 역사 인식과 지정학에서 비롯된 전략적 이해이다.

      

중국인들은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의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본다. '동북공정'은 북한 지역에서 건립된 모든 국가를 자국 동북지방의 소수 민족정권으로 여긴다. 그 연장선에서 중국은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의 영토였던 한반도의 청천강 또는 대동강과 원산을 잇는 선의 이북을 자국의 역사적 영토로 인식하고 있다.     


아래〈표>는 대동강-원산선 이북에 대한 중국인들의 인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史例)들이다.                

 같은 역사 인식은 현 시진핑 시대에도 유지되고 있다. 2017년 방미한 시진핑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과거에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했다. 중화질서 속에서 한국은 중국의 번속국이었다는 것이다.


북한지역에 대한 중국의 역사 인식과 함께 유의할 점은 북한이 자신들을 김일성을 시조로 하는 ‘태양민족’이라 하고, 남한과 다른 역사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린 시절, 중국에서 성장하고 중국공산당의 일원으로 활동한 김일성의 ‘민족과 민족주의’ 이론은 남한을 배제한다.


과거에 북한이 줄기차게 주장해 온  ‘민족공조’는 사실 미국을 대상으로 하는 정치적 수사였을 뿐이었다. 최근 북한이 남한과의 ‘동족’ 관계를 부정한 것을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1980년대 동서독 관계에서도 동독이 위기 상황에서  '2민족 2국가론'을 주장했었다. 서로 피와 씨는 물론 이념이 다른 동서독의 통일은 그 명분도, 필요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후 10년도 되지 않아 독일은 통일되었다. 최근 북한의 동족 부정은 위기에 처한 분단 열위국가의 '반통일론'인 것이다.

     

북한지역에 대한 전략적 이해     


이 같은 역사 인식과 함께 아래〈표〉에서 보는 바, 중국인들은 오랜 역사 경험을 통해 한반도, 특히 북한지역은 어떤 경우, 어떤 형식으로든 관여해야 할 땅, 적대세력을 저지해야 할 완충지대로 본다.                    

자고이래로 북한지역에 대한 중국의 관심과 전략적 이해는 ‘안정’과 ‘영향력’ 확보다. 먼 옛날 중국은 자국의 요구를 거부한 동방의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를 무력으로 정벌했다. 순응한 국가인 신라·조선은 기미(羈靡: 말이나 소의 고삐, 끈)로 느슨하게 관리·통제하며 오랫동안 평화관계를 유지했다. 북한지역이 경쟁국인 일본·미국 등에 의해 위기에 처할 때는 군사적으로 직접 개입하거나 외교적으로 간섭했다.

     

북한지역에 대한 중국의 순망치한의 지정학적 이해는 조선이 병자호란으로 만주족의 청에 복속된 후 명나라가 멸망하자 크게 강화되었다. 특히 청일전쟁에서 청이 일본에 패배해 중화질서가 붕괴하면서 중국인들은 한반도의 안정·안전이 곧 자국의 안전임을 자각하게 된다.

      

두 사건은 중국인들에게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과 치명성을 각인시켰다. 이후 중국은 자국의 안전을 위해 한반도 북부지역을 자국의 영향권 아래 두고자 했다. 이 인식은 역대 중국 지도부의 상이성이나 국내정치 상황과 관계없이 일관된 것이었다. 시대 상황을 막론하고 북한지역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불확실성을 통제하려는 중국의 의지는 확고부동했다.


신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의 대가인 왈츠는 이 같은 중국의 인식·행동 패턴을 “어떤 중국정부라도 압록강으로 접근해 오는 강대국을 목도한다면, 능력이 있는 한 거의 확실하게 군사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정리했다.

 

실제로 중국은 임진왜란(抗倭援朝)과 청일전쟁, 6.25 전쟁(抗美援朝), 수차례의 북핵위기 시 경쟁 세력에 의해 북한지역이 위기에 처할 때 북한을 적극 보호하는 정책을 취했다. 군사적으로 직접 개입·간섭하는 패턴을 반복했다.

    

시대·상황을 넘는 위 4개 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북한지역이 위기에 처할 때 중국의 안보위협 인식과 대응은 대동소이했다. 개입의 궁극적인 목적도 동일했다. 중국의 목적은 조선을 구하거나 북한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전쟁 또는 사건 발발 그 자체나 지리적 인접성 때문만도 아니었다. 중국의 실질적인 전략 의도는 북한지역의 위기로 초래될 수 있는 자국민의 안위와 자국의 안보, 즉 보가위국이었다.

     

그 과정에서 중국의 주된 관심은 북한지역이라는 ‘땅’의 확보, 즉 조선왕조나 북한정권이 아니라 ‘완충지역’의 보존과 안정이었다. 이 같은 중국의 대북한 인식과 정책 패턴은 현 시진핑 정부의 북중관계에서도 유지되고 있다. 중국에 완충 역할을 하는 북한이 미국의 영향권으로 들어갈 경우 심각한 안보위협이다. 2018년부터 시작된 미중 패권전쟁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중국의 전략적 이해는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반도 지정학의 중요성·치명성

  - 한반도는 동아시아 변동의 진원지  

   

전 세계에서 가장 지정학적 요충인 나라는 한국과 폴란드, 터키(튀르키에) 일 것이다. 3국은 비슷한 역사를 갖고 있다. 한국과 폴란드는 나라가 없어진 적이 있고, 튀르키에도 한국처럼 식민지배를 당한 적이 있다.   


어떤 국가가 전략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은 곧 그만큼 치명적인 위치에 있다는 뜻이다. 역사적으로 한반도의 운명은 강대국들 간 세력관계가 핵심 변수로 작용했다. 반대로 한반도는 강대국 관계와 강대국의 흥망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등 '동아시아 변동의 진원지'였다.

     

한반도 문제를 둘러싸고 한반도에서 발발한 1894년 청일전쟁과 1905년 러일전쟁 후, 1910년 일제의 조선 합병은 곧바로 1912년 2,000년 역사의 중화제국 멸망을 가져왔다. 러시아제국은 1917년에 레닌이 주도한 볼셰비키혁명으로 멸망(소련정권 수립)했다.

      

한반도를 교두보 삼아 중국 만주와 대륙으로 진출한 일본은 30여 년 동안 동아시아 패권국이었다. 1946년~1947년 중국 국공내전의 승패를 가른 동북전쟁에서 중국공산당 군의 승리에는 중공의 후방기지가 되어 준 북한의 지원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중국의 동북전쟁 승리는 북한의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1950년, 중국 총리 저우언라이 말) 1972년 중국의 마오쩌둥은 김일성의 60세 생일 축하전문에서 "중국인민들은 우리들에게 보배와 같은 (북한의) 귀한 지원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라고 썼다.    


6.25 전쟁도 마찬가지다. 냉전의 시작과 미국의 패권 기반 구축 등 한국전쟁의 여파는 세계질서 변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전쟁 이후 동아시아 질서 또한 그 이전과 확연히 구별되었다. 미중 적대, 중국 분단, 일본 부흥, 미일·한미 동맹 결성 등이 그것이다. 한국의 역할이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와  평화·안정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 지정학의 중요성과 치명성을 익히 알고 있다. 한반도를 차지한 나라가 동아시아를 차지하고, 동아시아를 차지한 나라가 태평양 시대의 패권국가가 된다는 것이다. 5년 전 미국과 중국은 패권전쟁을 시작하면서 21세기 판 총성 없는 '제2의 6.25 전쟁'을 치렀다.

      

미국은 2018년과 2019년 북한과의 두 차례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문제 해결이 아닌 북한의 미국으로의 전향 가능성을 탐색했다. 중국은 5회의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을 자국 품에 단단히 결박시켰다. 과는 다시 무승부!


미중 패권전쟁의 대결장인 한반도에서 전쟁은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미국과 중국은 세력전이 과정에서 한반도 지정학의 중요성과 치명성을 십분 이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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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구조적 변화 과정에서 식민과 분단, 전쟁을 겪었던 한반도가 21세기 초, 다시 지정학적 갈림길에 서있다. 주변국들의 대 한반도 지정학적 인식·이해는 변함 없다. 남북한은 여전히 한반도의 ‘지정학적 숙명’에 매몰돼 있다.

      

다행히 21세기의 한국은 19세기 말이나 20세기의 한국이 아니다. 한국·한반도는 이제 능히 동아시아와 세계 변동의 긍정적인 진원지가 될 수 있다. 통일된 한국은 그리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등 과거 유럽의 반도 국가처럼 문명대국이 될 수 있다. 동서 문화를 융합시켜 독특한 문화와 가치를 창조하는 ‘K-문명국’ 은 동아시아 지중해의 강력한 중심, 교량과 융합의 허브가 될 것이다.

     

1929년 암울한 일제 식민통치 시기,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는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대에 빛나는 등불이었던 코리아, 그 등불 다시 켜지는 날 너는 동방의 밝은 등불이 되리라”고 했다. 타고르가 우리에게 주는 용기와 희망적 예언을 실현한다면 통일한국·K-문명국은 동방은 물론 세계를 리드하는 등불이 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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