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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치 Jul 25. 2024

국제질서 패러다임의 전환

Paradigm 전환은 역사 발전  


철학자 토머스 쿤이 그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소개한 패러다임(paradigm)은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보편적 사고의 틀이나 인식의 체계를 말한다. 그는 과학의 발전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 즉 ‘패러다임의 전환(shift)'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2020년대 세계는 미국 시대가 저물면서 역사가 이동하는 대전환기다. 세기적인 패러다임의 전환 모습이 확연하다. 전환기는 변화·혁신의 기회일 수 있다. 새로운 시대에 보호주의와 탈세계화, 디커플링, 각자도생 등 국제질서 변화에 따른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이해는 필수다.

    

여기서는 각 분야의 여러 패러다임들이 아직 태동 중에 있거나 전환 중에 있고, 중첩되는 개념들이 많아 대략적인 개념과 흐름만 펴보기로 한다.    

 

1. 국제질서 패러다임의 전환요인     


먼저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지고 있는 배경과 원인들이다.  

   

구조적 원인은 미국의 쇠락과 중국의 굴기라는 세력판도의 변화다. 근본적으로는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주의, 탈세계화, 반중국 노선이 국제질서를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중 패권전쟁 이후 발발한 3개 대사건은 대전환을 가속시켰다. 코로나19 팬더믹과 미군의 아프간 철수, 우크라이나 전쟁이 그것이다. 국제사회는 세계질서의 붕괴와 구미 선진국들의 민망함, 강대국 정치의 냉점함을 보았다. 지구촌 사람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은 코로나19 팬더믹을 계기로 크게 달라졌다. 대전환의 추세를 확인하고 가속했다.

    

미중 패권전쟁은 양국 간의 디커플링과 신냉전 시대의 도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양국의 국익 우선주의와 공세적인 대외정책은 글로벌 가치사슬(GVC)을 축소시키고, 국제협력을 약화시키며, 강대국 관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국제사회의 구심점이 약화되자 각 지역에서는  권위주의 리더십이 발흥하고 있다.

      

이렇듯 미국과 미국 패권질서의 변화는 세계를 흔들면서 아래와 같은 국제정치경제 관계의 구조적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2. 국제질서의 패러다임 전환     


세계화 탈세계화     


국제정치적으로는 다극적 세계화 추세     


정치 면에서 가장 두드러진 전환은 지난 50년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가 끝나고 있는 것이다. 자본과 무역 자유화로 대변되는 세계화를 이끈 선진국의 태도와 관점이 변했다. 탈세계화는 다극적 세계화와 블록화, 지역화를 특징으로 한다. 이는 정치·경제적 필요성과 신기술이 추동하고 있다.

     

탈세계화의 가장 큰 원인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불평등의 심화다. 그로 인해 미국과 미국의 패권, 미국식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흔들리면서 세계화가 끝나고 있는 것이다. 국가주의와 지정학의 귀환도 국가들 간의 갈등을 심화시켜고 탈세계화를 증대시킨다.   

  

미중 패권전쟁으로 국제질서가 무너진 2020년 이후 각 지역에서는 특색 있는  다극형의 세계체제가 형성되고 있다. 중·러를 중심으로 하는 BRICS 국가들의 외교정책과 담론도 다극적 세계화를 촉진하고 있다. 다극체제, 다자주의, 주권, 내정 불간섭을 강조하는 BRICS의 주장은 중동과 중남미 국가들에게 매력으로 작용, BRICS의 몸집이 커지고 있다.

     

관련해 미국 국제관계 전문가인 파라그 카나는 그의 저서 『아시아가 바꿀 미래』(2021)에서 독특한 의견을 냈다. "21세기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대륙과 지역이 자주적 권리로 독립적 권력의 깃발을 내거는 시기다.” "복잡다단해진 세계에선 그 어떤 강대국도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자신의 독단적 의지를 관철시킬 수 없다.”“앞으로의 세계화는 특정국이 아닌 대륙별로 통합된 세계화가 될 전망이다.”라고...

     

경제적으로는 보호무역, 지역화·블록화 추세    


‘세계화’ 시대의 종말, 탈세계화의 신호는 세계 경제에서 요란하다. 가장 싼 곳에서 물건을 생산해 가장 비싼 곳에서 팔고, 가장 세율이 낮은 곳에서 세금을 내던 시대가 끝나고 있다. 비교우위 의 자유 시장경제 법칙이 들리고 있다.


주요 산업별 글로벌 공급망도 탈세계화와 블록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동일한 경제질서, 가치, 규범을 공유하는 국가들끼리 뭉치는 글로벌 가치사슬(GVC) 시대로 재편 중이다. GVC는 적대 국가를 가치사슬에서 배제해 산업 경쟁력을 잃게 만드는 ‘편 가르기’다.


4차 산업혁명의 첨단기술도 ‘탈세계화’를 하고 있다. 특히 신재생 에너지와 AI로봇 등 첨단과학기술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이전과 같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오프쇼어링 필요성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자국 내 생산·제조가 보다 용이해져  ‘온·니어쇼어링’ 유인이 커지고 있다.      


자유주의 보호주의, 신중상주의, 경제안보시대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는 신자유주의의 종말과 함께 ‘신중상주의(neo-mercantilism)’로의 이동을 재촉하고 있다. 자유로운 무역과 시장보다 공적부문을 통한 부국강병책인 신중상주의와 보호무역 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자유무역의 수호자였던 미국의 역할이 끝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망가진 국내의 ‘더 나은 재건’과 중국과의 패권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기존 체제·이념을 수정하고 있다. 각종 정책과 입법, 보조금 등을 통해 기업들을 유치·보호하고 있다. 자국 및 외국 기업들에게 공장의 미국 이전도 요구하는 등 중국 모델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스스로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면 전환하고 있으니 지구촌은 바쁘다. 공존·협력보다 자국 이익을 우선하며 ‘각자도생’한다. 보호주의, 국가주의가  대세다. 무역전쟁과 진영 간의 지정학적 위험이 고조되면서 ‘신냉전’의 기운도 감돈다. 세계화와 자유무역이 위협받고, 탈세계화와 경제블록화가 진행 중인 가운데 ‘경제안보시대’로 가고 다.

    

디커플링/디리스킹, 신냉전

     

미국은 패권전쟁을 시작할 때부터 반도체, 전기차, 바이오 등 첨단기술 분야는 물론 중국을 약화시킬 수 있는 가능한 정책들을 동원했다. 협력보다 담을 쌓는 디커플링이 대표적인 것이다.

 

미국 등 서방은 중·러와의 전쟁을 ‘민주진영 대 권위주의 행위자들의 대결’로 정의한다. 그들이 주도하는 ‘규칙에 기반을 둔 국제질서’의 인정·준수 여부도 하나의 구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신냉전’ 공세와 기술 디커플링, 프렌드쇼어링 등은 자국 주도의 세계체제에서 중국을 몰아내기 위한 ‘탈중국화’다. 미국은 이를 통해 중국이 자국 주도의 세계체제에서 이뤄온 부상·굴기를 저지해 역사의 대전환을 역전시키려는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날이 신냉전 시대라고 하기어렵다. 미중은 현대식 패권전쟁 중이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열전 중이다. 탈냉전 시대가 끝났으나 지구촌이 두 진영으로 갈라지지 않았다. 다양한 이해관계로 갈라질 수 없다. 무엇보다 미중 모두 세계를 양분할 역량이 없다. 어느 한 진영에 서지 않는 수많은 ‘여타 국가들(the Rest)’도 있다. 다시 냉전시대로 가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경제적 탈중국화인 디커플링 (탈동조화: decoupling) 노력도 소기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명칭을 디리스킹 (위험 완화: derisking)으로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보다 더 손실이 크고, 국내 기업들은 물론 동맹국들의 반발을 무마할 수 없으며, 국제사회의 시선도 따가웠기 때문이다.

     

경제안보시대, 공급망 재편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가 원자재를 레버리지로 벌이고 있는 서방과의 경제전쟁이기도 다. 전쟁 발발 직후 발생한 세계적인 식량·에너지, 원자재 난은 경제안보가 전통안보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렸다.     


얼마나 싸게 공급하느냐는 가격 경쟁력이 아니라 얼마나 신뢰를 얻고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느냐가 중요해진 것이다. 경제안보는 미중 패권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과 같은 지정학적 이슈와 연계되고 있다. 무역질서는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고려해 중·러 중심의 권위주의 국가와 미·유럽 중심의 민주주의 국가로 구분되는 양상이다.

    

민주주의 위기 포퓰리즘, 신국가주의


미국식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실패와 위기는 사실상 이데올로기 종언이다. 각국은 자국 이익 중심의 신중상주의와 신국가자본주의로 가고 있다.

    

미국은 서구 최초의 자유민주주의 국가지만 지금은 세계 본보기가 아니다. 탐욕이 지배하는 자본과 시장(돈)이 정치를 지배하면서 민주주의가 부패하고 타락해 기능부전 상태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는 미국식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효율적이지도 안정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합리적 제도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현재 민주주의는 곳곳에서 위기에 처해 있다. 미국과 한국의 정치를 보노라면 플라톤과 처칠, 네루가 왜 민주주의를 최악의 정치체제로 봤는지 알 것 같다. '중년의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에는 국민이 없고, 하는 일도 없다.


3. 자본주의 위기와 변화의 역설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주기적 변동을 수반한다. 이의 패러다임 전환은 40여 년을 주기로 지속돼 왔다. 2020년대는 1930년대와 1970년대와 같은 경제 패러다임의 대전환기다.

    

현재 각국은 보호주의, 탈세계화, 큰 정부·반시장 추세 속에서 시장의 실패를 정부가 어떻게 조정하고 보완하느냐는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전환의 방향은 정부의 주도적인 역할과 시장 개입을 강조하는 신케인주의 적인 국가자본주의화다.


미국과 중국은 물론 많은 나라들은 위기 속에서 많은 예산을 경제 살리기에 투입하고 있다. 가상경제의 금융자본주의에서 나아가 제조업 중심의 실물경제를 강화하는 산업자본주의화의 움직임도 한 추세다.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재수정 필요성은 역사의 반복과 시대 변화의 역설이다. 이제 국익에 앞서는 체제·이념은 없다. 미국도 자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며 신중상주의·신국가자본주의와 같은 사회주의 외투를 입는다. 중국과 똑같이 기업에 대한 엄청난 보조금 지급에도 앞장선다.  

    

중국도 자유주의 질서와 평화의 수호자 역할을 자처하며 유엔 기반의 새로운 세계질서를 추구한다. 기존의 국가자본주의도 보다 좌쪽으로 가고 있다. 전쟁 중에 상대방을 공격하면서도 상대방을 따라 배우는 오늘날은 ‘역설의 시대’다. 미중 양국이 자국 고유의 체제와 이념을 잊은 채  물불을 가리지 않고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위기 상황에서 대안은 미중 패권전쟁의 결과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어느 나라 정치가 더 안정적이고 건강하며, 경제성장과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내부 정치·경제 시스템의 성과와 경쟁력이 세계 패권과 패러다임을 가르게 될 것인바, 전쟁 승자의 것이 선이 되고 표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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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변곡점에 선 지구촌는 아시아 국가들이 더 부자이고, 기후변화가 더 이상 묵과할 없는 상황이며, AI정보화가 인간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미중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진영화가 가속화되고, 동서 문명충돌 양상이 구체화되고 있는 것도 주목할 일이다.  

   

사실 국제질서 패러다임 전환 문제는 미국이 흔들릴 때부터 제기돼 온 것이다. 아직 보편이나 정상이 되지 못한 상태로 더 지켜볼 개념들이 대부분이다.


어떻든, 격변기의 혼란은 불가피하나 패러다임의 전환은 역사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이뤄진다. 16세기 코페르니쿠스의 천체의 회전에 관한 '지동설'과 같이... 지구촌의 한  일원으로서 현명한 대처를 위한 이해와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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