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 명과 암, 앞과 뒤가 있듯이 도시 개발도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 6백 년 고도를 자랑하는 서울도 그 개발 역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울고 웃었다. 그래도 도시는 성장과정에서 개발이라는 과제를 필연적으로, 순환적으로 겪게 된다. 개발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보는 쪽으로 흐름이 잡히곤 한다. 물론 이 같은 선택에서 피해를 보는 쪽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언론 기자 시절부터 도시 개발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또 한 때는 그 개발 계획을 수립하는 기획 단계부터 참여하여 추후 이를 현장에서 지원하는 업무까지 겪었다. 도시 재개발, 재건축의 확장 사업이라 할 수 있는 뉴타운 사업이 그 현장이다.
민간 중심의 합동 재개발(조합+건설사)과 행정 당국이 구역 지정 및 계획에 일정 참여한 뉴타운 사업 방식은 박원순 시장과 민주당 정부에서 도시 재생사업+가로주택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 사업으로 다양화된다. 물론 다양성이 현장 맞춤형이라면 더 효과적이고 환영할만하다. 그러나 민간의 활력과 시장을 억누르려는 측면에서 현장 상황을 왜곡하는 것이라면 사정은 다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 주민에게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만리동 고개 인근 아현동 699 일대에 아현 1구역이 있다.
현재 재개발 구역지정을 앞두고 있다. 포털 사이트에서 아현 1구역을 검색하니 다음과 같이 소개된다.
"구역지정 앞두고 있지만 아현 1구역은 사업성이 없어요. 사업성 없어 공공 재개발도 보류니(탈락이나 마찬가지) 현재 시위 중. 아파트 건축 예정 가구수보다 조합원 수가 더 많고 공유주택 문제로 일반 재개발은 더 불가능할 듯. 주민갈등 심함. 조합 설립 쉽지 않을 거예요. 위치야 좋지만 위와 같은 상황 설명은 없고 복덕방 감언이설 심함. 매도 호가 엄청 뻥 튀겨 나오네요."
한 달 전 '아현 1구역 재개발 투쟁위원회'에서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서울시가 공공 재개발 사업 대상에서 아현 1구역을 보류 지역으로 분류하자 이에 대해 응원을 부탁하는 이유일 것이다. 오래지 않아 민간 재개발을 오랫동안 추진해왔던 주민들로부터도 연락이 왔다.
망설여졌다. 카페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사업성, 주민갈등, 향후 여러 과정에서의 갈등 등을 감안할 때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관망하는 자세가 현명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곧바로 내 마음을 바로 잡았다. 갈등이 있으면 풀어줘야 하고 사업성이 없으면 이를 보완해 주는 것이 행정이고 정치일 것이다. 그분들의 부름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현 1 재개발투쟁위원회 사무실을 방문했다. 세 분의 위원회 대표들과 두 차례 만나 현황과 대안을 따져본다.
2018년 9월 마포구청이 주민들을 상대로 정비 구역 지정을 위한 설명회를 가졌다. 용적률 283.8%에 3,327세대(분양 2,601, 임대 726)의 신규 주택 건립 계획이 골자이다.
그러나 2020년 12월 말에 발표된 재정비 계획에서 아현 1구역은 용적률 245.6%에 건립 세대수도 2,583세대(분양 2,160, 임대 423)로 개발 규모가 크게 줄었다. 구릉지로 2종 일반주거지역의 개발 한계 등을 감안한 결과이다. 실제 토지 여건이 비슷한 주변지역의 재개발 용적률은 마래푸 259%, 공덕자이 230%, 서센자 234%, 신촌 푸르지오 244%, 신촌 그랑 자이 253%, 마포 프레스티 자이 250% 등이다.
아현 1구역의 소유주는 2,680명이다. 더욱이 소유 형태도 다양하고 복잡해서 분양 자격을 갖춘 주택 조합원 자격을 특정하는 것도 여의치 않다. 카페에서 지적한 것처럼 신규 건립 주택이 이들 구 소유자를 초과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정부가 공공 재개발을 들고 나온다. 용적률을 300%+알파로 상향하여 그동안 재개발 사업성 개선이 어려웠던 구릉지역 등을 우선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아현 1구역 주민 27%는 공공 재개발 사업 동의서를 받아 사업 후보지로 신청한다. 현재는 공공 재개발 동의 소유주가 1,476명(55%)으로 늘었다.
지난 3월 29일 국토부 서울시 합동 공공 재개발 후보지 선정위원회는 아현 1구역을 '보류'지로 발표했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공공 재개발에 대해 찬반 민원 의견을 수렴할 필요가 있고, 둘째 구릉지역의 높이 관리 방안이 필요하고 셋째 인접지 중구 중림동 재개발 정비계획과 통합적 건축 가이드라인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이에 대해 재투위 주민들은 반발하고 있다. 마포구, 서울시, 국토부가 재개발 정비 사업 단계마다 주민 불편을 해소하려는 노력보다 행정 편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이에 항의하기 위해 서울시청과 마포구청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주민 간의 갈등 관계도 짚어보자. 아현 1구역의 경우 마포구청 주도로 구역 지정에 필요한 70% 동의를 받는 과정에서 오랫동안 민간 재개발을 추진해온 두 갈래의 주민 그룹이 있다.
이들 중 한 그룹을 만났다. 이분들의 걱정은 이렇다. 공공 재개발이 만능이 아니라는 것이다.
LH 사태 등으로 공공 재개발의 주체 세력이 신뢰를 크게 잃은 데다 명품 아파트가 아닌 저 품질 아파트 단지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이다. 또 임대아파트가 많아질 것도 우려한다. 무리하게 조합원 세대수를 맞추려다가 소형 평형만 늘어난다는 우려도 크다.
여평선 대표 등은 국토교통부가 오세훈 서울시장과 함께 지난 6월 9일 부동산 투기 방지 차원에서 정비사업 조합원의 지위 취득 제한 시기를 신규 지정 구역에 대해 조기 도입키로 합의한 만큼, 아현 1구역 주민들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오는 9월로 예정되는 관련 법 규정 개정 때까지 아현 1구역의 정비구역 지정이 지연되면 토지 또는 건물을 거래해도 조합원 지위가 승계되지 않아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지 않겠느냐는 우려이다.(여평선 대표의 인터뷰는 지난 6월 13일 진행)
그러나 정부가 6월 24일 이에 대한 세부 방안을 발표하면서 이 같은 우려는 크게 줄었다. 조합원 지위 취득 제한을 법 개정 후 모든 신규 구역으로 확대하지 않고 시도지사가 지정하는 투기 우려지역으로 한정한다. 또 시행시기도 법 개정 후 시도지사가 투기 우려지역에 한해 기준일을 별도 정하도록 하고 있어 대부분 재정비 구역에서 정상적인 거래의 조합원 지위는 보장받는다. 투기 우려지역의 기준일 지정 이후 거래에 대해서도 예외규정을 두어 질병치료, 상속, 해외이주, 1가구 1 주택 장기보유, 장기간 사업 정체 등에 대해서는 조합원 지위 취득을 허용한다.
오세훈 시장으로 서울의 수장이 바뀐 이후 서울시 주택정책도 변화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5월 26일 △주거정비 지수제 폐지 △공공기획 전면 도입 △주민동의율 민주적 절차 강화와 확인 간소화 △재개발 해제구역 노후도 심각 지역은 신규 구역 지정 △2종 7층 높이 제한 적용 지역 완화 △재개발구역 지정 공모 추진 등을 골자로 한 6대 재개발 규제완화 방안을 발표했다.
특히 7층 높이 제한 규제를 받던 2종 일반주거지역에서 소규모 재건축을 추진할 경우, 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용도지역 상향 시 '의무 공공기여 조건'을 없애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법적 상한선인 최고 25층 높이의 아파트를 지을 수 있게 된다.
이제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지역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여 맞춤형 재개발/재건축 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아현 1구역의 경우 공공이든 민간 재개발이든 현재 조합원을 모두 재개발에 참여시킬 수 있도록 종 상향이나 인센티브 대책이 필요하다.
또 법률상 300%까지 허용된 주거지역 용적률이 서울시에서는 조례로 250%로 제한되어 있는데 강북지역 등에 한해 이에 대한 재검토도 필요하다. 오 시장도 강남·북 균형발전 프로젝트를 총괄해 실행할 컨트롤 타워 조직으로 균형발전본부(2급)도 신설할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를 해본다.
마포구도 지역의 주택 정비 방안에 대해 주민들에게 명확하게 비전과 추진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아현 1구역의 경우 일반 재개발과 공공 재개발이 가져올 수 있는 비전과 향후 과제들을 주민들에게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사업기간 단축, 사업비 저리 융자, 주민대표와 LH, SH역할 관계, 조합원 분담금 문제, 시공사 선정, 임대아파트 문제 등에 대해 비교 설명하여 주민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행정의 의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