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를 못하는 사회
최근 조진웅이라는 배우가 과거 폭력적인 행실이 드러나면서 은퇴를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사람이 출연했던 작품들을 재미있게 봤었다. 그래서인지 이 사람의 행실이 실망스럽긴 했지만 의아스러웠다. 꼭 배우로서 은퇴를 해야 하나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잘못은 반성하고 지금이라도 피해자들을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없었나?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당부를 전하는 역할을 할 수 없었을까?
나는 이 사람이 국기 앞에 서서 ‘자랑스런 대한민국’을 외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사람이 이뤄냈던 연기자의 업적마저 무너트려야 했을까? 피해자가 분노했던 이유는 이 남자가 당당하게 대한민국을 대표해 연설을 하고, 정의를 외치는 위선적인 모습에 분노했던 것이다. 그동안 이 분노를 눌러왔던 이유는 그나마 조진웅 나름대로 사회에 새롭게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고 있던 것은 아닐까? 피해자의 인내심에도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경우가 어찌 되었든 우리는 격렬하게 반응했고, 그는 은퇴했다. 재능 있는 연기자를 어이없게 떠나보낸 느낌이다. 그의 은퇴가 과거의 행적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피해자가 그렇다고 용서가 되는 것도 아닌데 굳이 은퇴를 했어야 했는지 묻고 싶다. 혹여 창피한 자신의 과거보다 타오르는 여론이 무서워 그저 도망친 것은 아닌가? 우리가 조금은 침착하게 반응했다면 그도 다른 선택을 했을까?
지금 우리가 분노하는 또 다른 연예인이 있다. 흔히 ‘삼진스’라고 불리는 뉴진스 멤버 민지, 하니, 다니엘이다. 이 세명의 멤버들은 지금 몇 년째 계속되는 소속사와의 분쟁에 핵심이었던 인물들로 보인다. 나는 이들이 기자회견을 하는 것을 보고 철없는 친구들이 욕심 많은 어른들에게 둘러싸여 세상을 우습게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계약은 이미 기재된 내용에 기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의적인 해석으로 관계를 파탄 냈다. 나는 이들의 행동을 보며 하루빨리 제정신이 박힌 어른이 한 마디라도 빨리 해주길 바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의 책임은 커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도어 소속사가 여전히 기다리고 있을 때 관계를 회복하길 바랐다.
내 바람과는 다르게 이들은 국정감사에 출석하고, 법정에 드나들며 아티스트의 활동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했다. 참으로 안타까웠다. 굉장히 잘 만들어진 팀이고, 실력이 출중한 인물들이기에 그랬던 것 같다. 지금 해외에 살고 있는 내가 친구들에게 케이팝 아티스트를 이야기하면 뉴진스를 모른다. 뉴진스는 아직 갈길이 멀다. 블랙핑크나 방탄소년단처럼 커지려면 훨씬 더 먼 길을 가야 한다. 하지만 본인들과는 상관없는 분쟁에 직접 끼어들며 스스로의 앞길을 막고 있다. 이들이 돌아오게 하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없을까?
조진웅, 뉴진스는 사건의 결이 다르다. 혈기 넘치는 시절의 폭력과 제멋대로 계약을 깰 수 있다고 믿는 어리석음의 차이다. 하지만 대중이 한때 사랑했던 인물들이고 지금은 뭇매를 맞고 있다는 점에서 결이 비슷하다. 어느샌가 사회가 얼굴을 바꿔 이들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마치 사회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듯이.
처음 뉴진스 이슈가 폭발적으로 반응을 불러일으킨 것은 민희진의 기자회견이었다. ‘걸크러쉬’, ‘사이다’ 그리고 ‘완판’. 이런 문구들이 터져 나오며 그녀의 행동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컸고 나아가 뉴진스를 피해자 화했다. 이들에게 여론전으로 이길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준 것은 우리 사회 아니었나? 그런데 이제 와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너도나도 민희진을 비판하는 언론의 태도도 역하다.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냄비근성’은 여전히 만성적인 증상이다. 그때그때 화낼 줄만 알지 식히는 법을 모른다. 그렇기에 이들은 더 큰 분노로 작은 분노를 잊으려 한다.
우리는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 그저 성인인 것처럼 아량이 넓어서가 아니다. 나 또한 부족함이 있고 창피함이 있어서이다. 우리 중 젊은 시절 멍청한 짓을 안 해본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나라고 타인의 아량 없이 냉정한 평가위에서 떳떳하게 살아왔나?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서로가 용서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 젊고 능력 있는 친구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우리 사회는 아량을 보여야 한다. 언젠가 그 너그러움에 내가 보살핌을 받을 수도 있다.
당신은 어떤 사회에 살고 싶나? 당신이 실수를 인정했을 때 분노의 철퇴를 내리는 정의로운 사회인가? 용서와 주의를 주는 침착한 사회인가? 나는 후자를 선택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