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된 야망과 밝은 소망의 차이
흔히 일컫는 인생의 개척자는 항상 우리로 하여금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확고한 방향성으로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 위에 누구보다 자신감 있게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나 그들이 앞으로 나아가면서 마음속에 품은 것은 무엇인가? 그들의 야망일까? 아니면 계획인가? 야망을 가진 자와 계획이 확고한 자들의 모습은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이 둘의 차이가 있을까? 아니면 결국 계획 또한 그들이 꿈꾸는 길 위에서 자연스레 만들어진 지도 같은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야망과 계획이 무엇인지부터 질문해야겠다.
야망. 옥스퍼드 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야망은 두 가지의 뜻을 가진다. 하나는 큰 일을 이루고자 하는 소망이요 다른 하나는 그릇된 야심을 품은 욕망이다. 그렇다면 소망과 욕망의 차이는 무엇인가? 성경에 따르면 소망은 미래에 다가올 긍정적 기대로, 가장 좋은 일에 대한 기대다. 이러한 정의는 우리가 흔히 소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느끼는 감정적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소망. 우리가 흔히 꿈이라는 단어와 연결 짓는 개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미래에 대한 꿈은 대부분 긍정적인 모습을 그리기 마련이기 때문에 밝은 미래를 기대하는 우리의 꿈은 바로 소망이란 단어로 쓰일 수 있는 말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욕망은 무엇인가? 그릇된 야심에서 비롯된 욕망은 소망과 반대로 미래에 부정적 기대감일까?
무언가를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사전적 정의의 욕망이다. 이 중에서 내 관심을 끈 표현은 ‘탐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탐한다는 것은 내 것으로 가지기 위해 마음을 먹는 것에서 비롯된 심적 동요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내 것으로 가지기 위한 결심 그 이상의 느낌을 준다. 예를 들어 어떠한 음식을 먹으려는 마음은 우리가 ‘식욕’으로 부르지만 ‘식탐’이란 단어 또한 쓰인다. 이 둘의 차이는 분명히 확연하다. ‘식욕’은 우리가 음식을 먹고자 하는 생리적 욕구를 말하지만 식탐은 음식을 욕심 사납게 탐내는 심리적 욕구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탐낸다라고 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은 욕심에서 비롯된 욕망을 표현하는 것이다.
즉 그릇된 야심에서 피어난 욕망이란 단어는 부정적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아닌 정당하지 않은 미래를 가지려는 욕심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야망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 사파적인 인물들을 평가할 때 대부분 부정적인 야망을 가진 자들로 느끼는 이유를 바로 이러한 정의에서 밝혀낼 수 있겠다. 우리는 인생의 길 위에서 항상 우리가 가는 방향이 옳은 방향인지 질문하곤 한다. 나 스스로도 그러한 질문을 자주 한다. 나 또한 사람이기에 걱정과 여유로움 사이에서 나 자신의 위치를 찾고자 한다. 과연 내가 바라는 미래가 소망인지 야망인지 알고 싶은 마음에서 나오는 줄다리기 일 것이다.
어떠한 일을 끝까지 해나가기보다는 중간에서 멈춰버린 일들이 참 많은 사람으로서 지금 내가 미래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마음은 욕심에서 비롯된 부정적인 야망일 확률이 높다. 내가 원하는 미래는 안정적인 가정과 금전적으로 여유로운 삶, 영향력 있는 삶이지만 그러나 지금의 나로서 바랄 수 있는 것들은 아니다. 내가 가진 것은 무엇이 있을까? 현재 공부를 하는 내가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시기상 이르다. 그러나 내가 금전적으로 여유로울 만큼 현금 흐름을 만든 것도 아니기에 이 또한 내가 바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영향력이 있을까? 아니다. 지금 세상에 나라는 존재를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현재 내가 바라는 것은 욕심에 더 가깝다.
나는 하고 싶은 일들은 참 많은데 나만의 에고(ego)로 인하여 내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하기도 한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인가? 요즘 시대에 우리가 어린이들에게 해주는 흔해 빠진 말이 있다. 바로 ‘너는 커서 무엇이든 될 수 있어’라고 하는 문장이다. 자라나는 미래세대에게 거는 기대와 무한한 지지가 담긴 말이다. 나는 내 미래에 기대를 걸고 무한한 지지를 보내면 안 되나? 가능하다. 나는 우리 모두가 자신의 미래에 욕심을 가지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해야 한다고 본다. 어느 누구도 나 자신보다 나를 응원해 줄 수 있을 수 없고, 다른 사람들은 내 미래를 볼 수도 기대할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가진 것이 없다는 이유로 더 큰 것을 바라는 탐욕을 비판할 수 없다.
진보된 지식이 없는 과학자가 기존의 상식을 깨는 그 너머의 큰 지식을 탐하지 않는다면, 과학적 혁신 또한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 현재의 삶보다 과분한 미래를 바라는 것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오히려 이것은 우리가 앞에서 이야기했던 소망과 다르지 않다. 지금의 나에게 과분할지언정 밝은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야망이 그저 욕심에서 나온 탐욕의 미래가 아닌 밝은 미래가 되는 것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또는 밝은 미래를 꿈꾸던 소망이 그릇된 야욕으로 변하는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 나는 천천히 내 야망의 원천을 밝혀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