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일기장] 이 세상의 주인인 척하는, 가엽고 뻔뻔한 동물
그런 말이 있습니다. 지구는 잠시 빌려 쓰는 공간, 우리는 잠시 머무는 손님.
이 파랗고 넓은 대양과 자갈, 모래와 바람 한 줌, 흙먼지 한 톨도 우리는 잠시 빌려 쓴다는 말입니다.
이 공간을 빌어먹고 간신히 살아가는 초라한 생명들은 짧게는 몇 날, 길게는 고작
한두 세기에 존재하다가, 때가 되면 숨이 끊어지고 썩어 없어집니다.
강한 것들이 살아남는 과정에서 약한 것들이 먹이가 되기도 합니다.
빌려 쓰는 이 세상의 섭리이자, 질서입니다.
신기한 것은 무려 46억 년이나 대여를 해주고 있는 이 공간에
고작 몇십 만 년 삶을 이어온, 인간이라는 자들이 나타나
약한 것과 강한 것을 가리지 않고 마구 해하기 시작합니다.
질서나 규율이 붕괴되면 혼란이 일어납니다. 해변을 잔잔히 지키던 파도가 그 규칙을 깨면 수많은 생명을 예고도 없이 휩쓸어 가고, 육지의 예고되지 않은 떨림이 여러 생명과 구조물을 하찮게 바닥에 짓이겨버리는 것처럼요.
혼란 속의 인간은 생각하고, 도구를 쓰고, 말을 짓고, 편을 가르고, 죽이고, 패거리를
잔뜩 모으며 마침내 언어라는 오만한 무기를 들게 되었고, 그들의 생각대로
겁 없이 다른 동물들을 휘젓게 됩니다.
주먹을 쥐거나 매를 들어 피멍을 젖게 하고 내장이 쏟아지기 전까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동물에게 분풀이를 합니다.
재미를 위해 관자놀이에 총알을 쏘아 박으면서 스포츠라는 제목을 붙이고요.
전기충격으로 기절시켜 살점을 먹으면서도, 쇠 막대로 뇌를 빠르게 찔러 넣으면서도
인(人)도적이라는 그럴싸한 면죄부를 붙이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요.
무엇을 잡아먹는 것은 숭고하고 무엇을 잡아먹는 것은 미개하다고 각각의 언어로 힐난하는 코미디도 꽤 볼만합니다.
연구하고, 실험도 해 봅니다. 같은 언어를 쓰기도 하는가,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가.
더 나아가 같은 생각을 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
이 와중에 동의 없이 머리를 젖혀 열어보기도 하고요. 애석하게도 그 생명들은 뇌와 몸뚱이에 칩을 박고 전기 신호가 흘러 실수로 죽임을 당하기 전에도 단 한마디를 인간이 이해하도록 항변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라는 초라한 생명도 다른 생명의 언어를 단 몇 초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꼬리를 살랑거리고, 머리를 치켜들고, 울음을 몇 번 짓는 것에 대한 나름의 해석조차도
인간의 기준이요, 인간의 해석이고, 인간의 감정선이 대입되어 있을 뿐입니다.
생명의 가치와 대하는 방식을 마음대로 정해버린 인간에게 딱히 죄는 묻지 못합니다.
생명을 해하여 받는 ‘죄’나‘벌’따위도 사실 인간들의 상상이 만든 규범이고요.
대자연의 섭리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들 나름대로의 최선책이었겠지요.
하지만 그들은, 무엇 하나 자신들의 힘으로 창조하지 못해
빌려 쓰는 이 공간에서 두 손발을 싹싹 빌어먹으며 사는 나약한 존재인 주제에
언어라는 무기를 특권이라 생각하며
오만한 강자의 치장을 하고 다른 생명을 고통에 빠뜨리며 살아갑니다.
창피하기 그지없는 조야한 규범들을 내세우고
이 세계의 주인은 자신들이라고 정당화까지 하면서요.
빌려 쓰는 행위의 가장 모순되는 것 중 하나는
마치 원래 주인인 양 행동한다는 점입니다.
나조차도 혼란한 인간의 삶과 언어의 오만함을 비판하지만,
당장 내일 아침이 되면 다른 동물의 죽음을 맛보며 식탁 의자를 밀어 앉고
잠시의 눈시울마저 붉히지 않습니다.
손님으로 온 주제에, 주인인 양 행동하는 초라한 동물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