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의 서재] 거칠게 찢기고 구겨져도, 다시 돌아와 흉내
예전에 나는 집에 참 들어오기 싫었다.
괴롭히거나 매를 때리는 가족은 없고 집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학교가 끝나면 삼삼오오 마음 맞는 애들을 모아
최선을 다해 어딘가로 도망쳤고, 집에 최선을 다해 늦게 들어간다.
그 당시에 집에 늦게 들어가는 것은 대체로 친구들에게 멋있어 보이는 일이었다.
내 마음대로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과 보여짐,
그런 흉내 어른이 멋있어 보였다.
특히 집 밖의 긴 시간은 온갖 재미있는 것들과 다투는 시간이었고
대개 그런 것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유쾌했다.
하지만 어른을 흉내 내지 못하는 날이 왔을 때
집에 늦게 들어가는 어른의 감정은 별로 멋있지도, 유쾌하지도,
시간 가는 줄 모르지도 않았다.
별것 없고, 별일 없고, 별문제 없다는 핑계를 입에 가득 욱여넣으며
나는 강하고 무디고 잘하는 중이라는 자기 암시라던지
속상해서 만취했지만 힘들지 않다는 의지 같은 것들을
현관문 비밀번호와 굳게 다짐하고 나서야
아무렇지 않은 척 안간힘을 쓰고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었다.
그 집에서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가는 것도
흉내 어른에게는 너무나도 마음 아픈 일이었던 것 같다.
견디기 힘든 시간을 길게 버티고 온 하루,
입 밖을 터트리고 나올 법한 하소연과 한숨,
거칠게 찢긴 공감과, 그로 인한 환멸과 모멸을 겪고 난 진통 따위도
이 공간을 잠깐 쓰러 들어오기도 전에 꾹 삼켜버리고 들어오는 것이고.
결국 늦게 집에 들어서기 전의 시간들은
이 집의 어느 누구에게도 유쾌하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그 아픔과 상심이 목을 타고 삼켜져야 현관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한숨과 무거운 책임의 짐을 저 멀리 던져두고, 이 공간에서 오롯이 위로받고 싶기 때문에
누구나 온 힘을 다해 어른 흉내를 내며
뒤늦은 시간에 숨을 저 멀리 던지고 비밀번호를 누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관의 불을 켜고, 식탁을 차려먹고, 멍하니 텔레비전과 모니터를 노려보고,
잠에 드는 반복에도 어떤 이유나 근거 없이도 나를 위로해 주는 곳.
웃음도 유쾌함도 억지로 가지고 들어갈 필요는 없다.
못된 하루를 보내고 문 앞에서 고해할 필요도 없다.
여전히 나는 열심히 살고 있다고, 잘하고 있다고 칭찬할 필요도 없다.
부닥치고, 거친 바람에 찢겨 상처받을지라도
조금은 서운할 정도로 모른 체해주는 나의 집에 용기 내어 들어오기만 해도
어른 흉내가 아닌, 그제서야 비로소 어른이 되어간다.
상처를 부여잡고 아파하는 어른들,
적어도 나의 집에서는 누구나 위로받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