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일기장] 총과 칼보다 무서운, 선의 무게
세상에는 수많은 선이 있습니다.
그리고 선은 많은 것을 나누기 위해서도 존재합니다.
이름과 수를 구분하기도 하고, 영역을 나누기도 하고요.
하지만 인간의 어떤 선들은 가난과 부유의 끝을 구분짓기 위해,
그리고 사상이나 이념이 서로 붙어있지 않기 위해 존재합니다.
세상의 평면을 기준으로
수평으로 선을 그으면 층이 생기고,
수직으로 선을 그으면 편이 생깁니다.
수평의 선은 층위의 구분처럼 보입니다.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에서 말합니다.
인간 사회의 단계는 총 4단계.
다리를 힘껏 뻗어도 대엿은 노닐 수 있는 집에서 여가를 보내며 비행기 여행이 가능하다면 4단계.
더러운 물조차도 겨우 마셔야 살아남을 수 있는 빈곤의 끝은 1단계.
수직의 선은 다름을 구분할 때 발생하곤 합니다.
파벌, 세력, 아군과 적 따위입니다.
한 데 모여 사이좋게 어울리면 좋겠지요.
하지만 총과 칼, 언성이 날카로운 단면을 가릅니다.
각개의 선은 훌륭하게 쓰이기도 합니다.
분명한 가로 층위는 불평등에게 보내는 강력한 경고 신호로,
수직선을 넘나드는 생각의 충돌은 우리가 놓치고 있던 사유의 확장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보통 선을 훌륭하게 사용하지 못합니다.
저마다의 기준을 가로 세로로 죽죽 그어대고
저 끝으로 달려가 진리에 다다른 마냥 비명을 질러댑니다.
“간극”의 본능입니다. 그것이 더 편하고요. 그것이 더 이해하기 쉽지요.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데 이만한 방법도 없습니다.
매스 미디어에서 즐겨 사용하는 전략입니다.
그러기에 대부분은 망각하고 살아갑니다.
볼펜을 집어들고 무책임하게 선을 휘두르는 행위는
사람을 살리고 해하는 것보다 더 무거운 책임감이 있다는 사실.
나의 기준이 항상 맞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상당히 우수한 능력입니다.
다만 나의 기준이 어떻게, 어떤 선에서 비롯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대부분 모른 채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그 선을 합리적으로,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옳게, 책임감 있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한 획일지라도 허투루 긋지 않도록 손에 힘을 주고, 주변을 넓게 듣고, 넓게 바라보며
선이 내지르는 비명과 경고를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